어릴 적 기억에 남아있는 동네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다릅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만난 정육점 사장님은 부모님의 안부를 묻고, 공놀이가 한창인 골목길을 지나 옆집 친구네 집에 들러 간식을 얻어먹곤 했습니다.
낮은 빌라와 작은 가게들은 큰 아파트 단지와 프랜차이즈 상점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동네에서 살고 있다’는 감각을 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자주 가는 카페의 사장님과 주고받는 인사에 한두마디가 더해지는 일, 아이들이 커가면서 쓰지 않는 장난감을 나누는 일, 다른 곳에는 없는 보물 같은 가게를 발견하는 일 말입니다.
이런 순간들은 어디에 살든 경험하게 되는 보편성을 가집니다. 다시 말해 여러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가치와 확장성을 갖게 되고, 이러한 이유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지역과 연계된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IKEA와 H&M이 공동으로 전개하는 지역 프로젝트‘아틀리에 100(Atelier100)’을 소개합니다.
2022년에 런던에 처음 선보인 아틀리에100(Atelier100)은 ‘by Londoners, for Londoners (런던 시민에 의한, 런던 시민을 위한)’을 모토로 소매업의 새로운 지속가능성을 탐구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런던 중심부로부터 반경 100km 안에서 디자인과 제조, 유통과 판매가 모두 이루어지는 ‘초지역적(Hyper-local)’ 방식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요. 일련의 과정을 통해 100km 이내에 거주하는 디자이너와 창작자, 생산 및 제작자와 가공 업자를 선정하고, H&M과 IKEA가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멘토링과 자금을 지원합니다.
그렇다면 왜 두 거대 기업이 이런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을까요?
H&M과 IKEA 모두 스웨덴에서 시작한 기업입니다. 주력하는 분야는 다르지만, 글로벌 SPA 브랜드와 세계 최대 가구 업체라는 그들의 명성은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기능적인 디자인의 보편성과 대량 생산을 통한 합리성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생산부터 소비까지 모두 한정된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아틀리에100 프로젝트는 그동안 두 기업이 추구해온 방향과는 완전히 다른 지점에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케아의 지주 회사인 잉카 그룹(Ingka Group)의 최고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인 마커스 엥만(Marcus Engmann)은 아틀리에100에 대해, 두 소매업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의 사업은 우리와 함께 일하는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티브에 달려 있다”
H&M의 글로벌 브랜드 매니저 카밀라 헨릭슨(Camilla Henriksson)은 이케아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지속가능한 생산을 실험하고, 새로운 재료를 찾고, 소비자가 직면한 적이 없는 종류의 것들을 탐구하기 위해 몇 가지 일을 함께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서로의 경쟁자이거나 경쟁할 회사인 것처럼 생각하는 대신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면 함께 도전할만한 중립적인 지점들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서로를 후원하는 것은 매우 영향력이 있을 수 있고 꽤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다른 누군가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에 직접 변화를 만드는 것의 일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아틀리에100)이 정말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틀리에100에는 몇 가지 유의미한 원칙들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완성된 제품이 리빙, 문화, 패션, 라이프스타일의 4가지 범주 안에 있어야 하며 소매 가격은 500파운드(한화 약 84만원)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기업이 아틀리에100의 창작물을 다분히 제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터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작품’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의 역할로서, 소비자의 관점에서 익숙한 분류와 가격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창작자와 제작자 입장에서 고민하는 관점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제품의 원료가 얼마나 친환경적인지에서 그치지 않고, 반환경적인 재료를 사용한 기존의 제품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재료의 가공 방식부터 마진과 마케팅까지를 통합적으로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런던 중심부의 트라팔가 광장으로부터 반경 100km 안에서 디자인과 제조, 유통과 판매가 모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틀리에100은 이것을 ‘초지역적(Hyper-local)’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틀리에100은 매년 ‘코홀트(Cohort)’ 라고 부르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을 선정하는데, 이들은 모두 반경 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코홀트의 아이디어를 구현할 제조업체와 제작자들 또한 100km 내에 소재하고 있어야 합니다. 프로젝트의 거점 역할을 하는 아틀리에100의 매장 역시 반경 내에 위치하고 있어, 한정된 지역 안에서 생산부터 소비까지 제품의 모든 생애 주기가 돌아가는 셈입니다.
세 번째는 아틀리에100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지속가능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년 선정된 코홀트는 ‘드랍(Drop)’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제품 컬렉션을 공개하고 있는데요.
모든 제품은 유해한 화학 물질 없이 생산된 재료를 조달하고, 동물 복지 뿐만 아니라 행성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품의 자연 수명 주기가 끝나게 되면, 제품의 재사용과 재활용 또는 용도 변경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틀리에100의 크리에이티브가 모여 교류하고, 그들이 직접 만든 제품을 사고 팔 수 있는 아틀리에100의 매장인 파일럿 스토어(Pilot Store) 역시 지속가능성의 관점에서 만들어졌습니다. 새로 건물을 짓거나 기존의 건물을 파괴하지 않는 임시 매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매장은 이케아의 지주 회사인 잉카 그룹이 운영하는 리바트(Livat)의 해머스미스(Hammersmith)지점에, 두 번째 매장은 2023년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달스턴(Dalston) 지역에 문을 열었습니다. 공간을 맡은 플래이드(Plaid)는 폐점한 H&M 매장에 사용된 조명과 선반, 마감재를 재활용한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아틀리에100을 관통하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드는 역할은 비블리오테크(Bibliothèque)가 맡았습니다. 그들은 아틀리에100의 확장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누구나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도 아틀리에100을 만들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아 런던 전역에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변화를 위한 행동을 촉구하는 ‘Call to Action’이라는 문구를 내세워, 아틀리에100에 참여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적힌 포스터를 런던의 거리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배포했습니다.
포스터는 크리에이티브의 제품의 이미지와 컬러를 배경으로 글씨가 배치되는 단순한 형태입니다. 이것은 런던이 아닌 세계 각지의 도시에 제2, 제3의 아틀리에100이 생겨났을 때에도 적용할 수 있는 일종의 광범위한 가이드라인의 개념으로 디자인한 것입니다.
아틀리에100은 지역에 숨겨진 창작자와 제작자를 발굴하여 그들의 아이디어가 현실로 구현되도록 기업이 수십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나누고 돕는 일에 기꺼이 나섰습니다. 지역의 크리에이티브에게는 꿈을 펼칠 좋은 기회가, 두 거대 기업에게는 새로운 비즈니스를 포착하기 위한 테스트베드가 되는 셈인데요. 몸담고 있는 업계의 새로운 시장을 지역과 함께 개척하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생이자 문화 운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같이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서울의, 부산의, 제주의,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나만의 아틀리에100은 어떤 모습일지 말입니다.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