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고쳐가는 일

우리는 여전히 물건을 끊임없이 만들고, 사고, 버리고, 다시 소비합니다. 소비사회의 안티테제로 무인양품이 등장한 지도 수십 년이 흘렀지만, 그 철학은 여전히 일상의 관성에 가로막혀 있는 듯 보입니다. 디자이너 바바 고시는 니시무라 요시야키의 책 『자기만의 일』에서 “지금 사회는 모두가 남의 것으로 남의 일을 하고 있고, 그 결과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는 사람이 하루에 걸을 수 있는 반경 안에서 필요한 것을 손에 넣고, 그 안에서 순환하는 삶을 문화라고 정의했습니다.

거대한 자본주의 생태계를 벗어나긴 어렵지만, 각자가 생활인으로서 주변을 돌보고, 고치고, 유지하는 일에 참여하는 아주 오래된 태도가 다시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번 주에는 지속가능한 유지관리 사회 시스템을 제안하는 프로젝트 ‘유지보수를 위한 개방(Open for Maintenance – Wegen Umbau geöffnet)’ 을 소개합니다.

Open for Maintenance ⓒArch+, Summacumfemmer, Büro Juliane Greb

‘Open for Maintenance(이하 OFM)’는 2023년 제18회 베니스 국제건축비엔날레에서 독일관이 선보인 특별 프로젝트로,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행동 프레임워크를 표방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말 그대로 독일관 전체를 2022년 미술 비엔날에서 사용된 40여 개 국가관과 전시가 끝나고 나온 폐자재와 작품의 잔해, 재료들을 모아두는 거대한 창고로 만들었는데요. 이것들을 활용해서 비엔날레 뿐만 아니라 베니스 지역에 필요로 하는 다양한 활동들을 지원하는 거점으로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ARCH+ 편집팀과 건축 그룹 Summacumfemmer와 Büro Juliane Greb이 공동 기획하였으며, 안-린 응오(Anh-Linh Ngo), 안네 페머(Anne Femmer), 줄리아네 그레브(Juliane Greb) 등 건축가·이론가들이 큐레이터로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OFM을 통해 건축 및 전시 분야에서 만연한 자원과 인간 착취 기반의 관행을 넘어, 유지관리(Care & Maintenance)를 새로운 문화의 핵심으로 제시하는 것을 비전으로 삼았습니다. 

 

독일관의 입구 ⓒArch+, Summacumfemmer, Büro Juliane Greb

비엔날레나 엑스포 같은 국제 전시는 원래 국가의 위상과 기술력을 세계에 알리고, 인류의 진보를 공유하자는 이상에서 출발했습니다. 1851년 런던에서 열린 최초의 ‘만국박람회 (Great Exhibition)’를 시작으로, 산업혁명기의 과학기술과 문명 성취를 보여주는 무대로 자리잡았죠. 하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정보가 전지구적으로 실시간 공유되는 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전시 형식은 자원의 낭비, 낮은 지리적 접근성, 일회성 중심의 주제 설정 등 여러 비판의 시험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식민주의 시기의 문화 우월주의적 전시 문법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도 여전합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독일관은 OFM 프로젝트를 통해 국가관 전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인스탄트베자리움(Instandbesetzung)’이라 불리는 1980년대 베를린 점거운동의 개념을 재해석하여, 독일관을 있는 그대로 차지한 채 손보고 개선하는 방식을 채택했는데요. 전시관을 새로 디자인하고 번쩍이는 신작으로 채우기보다는, 기존 공간을 점거하고 유지보수하는 과정 자체를 전시하는 것입니다. ‘과시적인 대표성(representation)’보다 ‘실질적 실천(practice)’을 강조한 이 방식은 비엔날레가 흔히 갖는 일회성 마케팅의 장을 넘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의미한 실험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시도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마리아 아이히혼의 작품을 배경으로 하는 워크샵 공간 ⓒArch+, Summacumfemmer, Büro Juliane Greb
독일관 입구에 새로 설치된 경사로 ⓒArch+, Summacumfemmer, Büro Juliane Greb

그렇기 때문에 이번 전시는 독일관 건축물 자체를 ‘있는 그대로(as found)’ 점거하고 유지보수하는 형태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2022년에 독일관에서 전시했던 마리아 아이히혼(Maria Eichhorn)의 작품 「구조 이전(Relocating a Structure)」에서 건물 일부를 드러낸 상태 그대로 철거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요. 이를 통해 베니스 미술 비엔날레와 건축 비엔날레를 공간적, 개념적으로 최초로 연결함으로써 서로 다른 시점에 열린 전시 사이의 연속성을 만들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라는 대원칙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최소한의 보수 공사는 2022년 미술 비엔날레에서 남은 자재를 사용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변경된 부분들은 철저히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 계획되었는데요. 예컨대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독일관 건물의 장애인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입구에 경사로를 설치했습니다. 경사로에 더해 재활용 카페트로 만든 간이 의자를 설치하여, 독일관 입구를 관람객이나 주민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일종의 작은 광장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했는데요. 이러한 입구 공간의 변화는 독일관을 권위적인 국가 상징물에서 일상적 활동의 장으로 탈바꿈시키는 의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입구 뿐만 아니라 독일관 내부의 화장실을 모든 성별이 사용 가능한 성중립 화장실(Gender Neutral Toilet)로 개조하고, 주방과 모임 공간을 마련한 것 역시 독일관을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와 방문객들이 어우러지는 생활 공간으로 만드는 과정입니다. 

이런 전략은 2023년 건축 비엔날레의 주제였던 ‘미래의 실험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에 비추어 생각해볼 때, 독일관을 국가 대표 건축을 뽐내는 전시실이 아니라 공동 작업과 학습의 실험실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전시에서 거주로(From Exhibition to Habitation)’ 나아가야 한다는 현지 활동가 마르코 바라발레(Marco Baravalle)의 슬로건을 실현한 것입니다. 

Open for Maintenance ⓒArch+, Summacumfemmer, Büro Juliane Greb
Maintenance 1:1 프로그램의 5주차 워크샵 ⓒSUMMACUMFEMMER
Maintenance 1:1 프로그램의 18주차 워크샵 ⓒSUMMACUMFEMMER
Maintenance 1:1 프로그램의 23주차 워크샵 ⓒSUMMACUMFEMMER

독일관 내부 전시 구성의 핵심적인 컨셉은 ‘재료 저장소(The Material Repository)’ 입니다. 전시장 중앙에는 2022년 비엔날레에서 사용한 각국의 전시 폐자재—대리석 타일, 목재 상자, 환기구, 파이프 등—가 종류별로 쌓여 있는데요. 이 자재들은 비엔날레 전시 폐자재의 재사용을 돕는 현지 단체인 Rebiennale/R3B의 협력으로 수집된 것입니다. 관람객들은 이 낡은 자재 더미를 직접 둘러보며 새로운 용도를 상상해볼 수 있고, 디지털 카탈로그를 통해 해당 자재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간은 비엔날레 기간 내에 진행된 워크숍 참여자들에게 자원으로 제공되어, 필요한 곳에 재활용되도록 설계되었는데요. ‘Maintenance 1:1’이라 명명된 현장 워크숍 프로그램이 비엔날레 기간 내내 운영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전 세계 32개 대학에서 온 건축·디자인 학생들, 독일 11개 직업학교에서 온 기술 견습생, 베네치아 현지의 17개 시민단체 등이 주축이 되어 총 29회의 주간 워크숍과 써머스쿨을 진행했습니다. 워크숍 참가자들은 독일관에서 수집한 자재를 활용해 베네치아 도시 곳곳의 사회 인프라(커뮤니티 공간, 공공주택 단지 등)를 수리하고 개선하는 프로젝트들을 수행하였고, 그 과정에서 현지 시민단체의 실질적 활동을 지원하면서 전시와 도시 생활을 연결시키는 실험을 펼쳤습니다. 

Open for Maintenance ⓒArch+, Summacumfemmer, Büro Juliane Greb

무엇보다도 독일관이라는 물리적인 범위를 벗어나는 이러한 워크샵이 의미하는 사회정치적 맥락의 핵심은 베네치아 지역의 도시 문제입니다. 베네치아는 관광과 각종 국제 이벤트로 인해 지역 주민의 주거권과 일상 생활 기반이 잠식되고 있는 도시입니다. 실제로 화려한 관광지의 이면에는 수백 채에 달하는 공공임대주택이 빈집으로 방치되어 있고, 젊은 층이나 노동자들이 도심에서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도 진행 중입니다.

OFM은 이러한 맥락에서 관광 산업으로 인한 도시 공간의 상품화를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대신 공공선(common welfare)을 위한 유지관리 네트워크 복원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지역의 활동가들과 협력하여 실제로 빈민가의 시설을 수리하거나 공동체 공간을 개선하는 워크숍들은 단순히 일회성 체험 활동을 넘어, ‘도시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주민 주도의 도시 재생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베니스 지역의 주거권, 사회통합 같은 이슈가 건축 비엔날레라는 국제적인 무대의 수면으로 올라올 수 있는 일종의 지역 유산(Legacy)을 남겼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Maintenance Art ⓒMierle Laderman Ukeles, Ronald Feldman Gallery

이 프로젝트에서 인상적인 것은 돌봄과 포용이라는 사회적 감각을 이야기한다는 것입니다. 전시 제목에 쓰인 ‘유지보수(Maintenance)’라는 단어 자체가 암시하듯, 그동안 많은 분야에서 주변에 머물렀던 청소, 수리, 관리의 노동의 가치가 전면으로 드러나기 때문인데요. 페미니스트 예술가 미얼 래더맨 우켈리스(Mierle Laderman Ukeles)‘Maintenance Art’를 통해 돌봄의 가치를 예술로 환기했던 것처럼, 독일관은 눈에 띄지 않던 존재들—건축 관리인, 기술자, 청소원, 활동가들에게 관심의 방향을 전환함과 동시에 전시의 주체로 끌어냈습니다. 그들은 이번 전시에서 단지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매일 실천하고 사회의 구조를 유지하는 동시대의 살아있는 인프라(Living Infrastructure)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우리 주변에서 고치고, 닦고, 돌볼 수 있는 무언가에 천천히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요?


EVERY WEEK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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