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삶을 찍는 예술이 아니라, 예술과 삶 사이의 무언가다”
– 장 뤽 고다르(Jean-Luc Godard)
우리는 종종 영화를 보며 현실을 꿈꾸고, 현실 속에서 영화를 떠올립니다. 스크린 속 세계는 때때로 우리가 겪는 하루보다 더 선명하고, 더 아름다워 보이지만, 영화는 결국 끝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반면에 현실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죠. 만약 우리가 사는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극장, 혹은 영화가 만들어지는 스튜디오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됩니다.
이번 주에는 매일 새로운 시나리오의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 ‘대화 극장(Dialogue Theater)’을 소개합니다.
‘대화 극장 – 생명의 증표 (Dialogue Theater – Sign of Life)’는 영화감독 카와세 나오미(Kawase Naomi)가 기획·프로듀스한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의 시그니처 파빌리온 중 하나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대화’를 예술적 매개로 세계 곳곳의 분쟁과 분열을 조명하고 치유를 모색하는 실험의 장을 목표로 하는데요. 매일 엑스포 현장에서 서로 처음 만나는 두 사람이 하나의 주제를 놓고 10분간 즉흥 대화를 나누고, 이를 관람객들이 마치 영화를 보듯 지켜보는 참여형 공연-전시입니다. 이 파빌리온은 ‘인류 역사상 매일 처음 맞이하는 대화’라는 콘셉트로 기획되어, 인종·종교·문화 등의 차이로 인한 분단을 대화의 힘으로 극복해보려는 시도를 담고 있습니다.
대화 극장의 공연 형식은 영화 상영과 토론회를 결합한 독특한 형태입니다. 하루 10회씩, 엑스포 전시 기간인 184일동안 총 1,840회의 대화 세션이 계획되어 있으며, 매 회마다 주제가 달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각 세션의 진행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관객 참가자 선정
파빌리온에 입장한 관람객들에게는 그날의 질문이 적힌 대화 카드가 주어지며, 무작위로 한 명이 대화자로 선정됩니다. 선정된 관람객은 안내에 따라 준비된 무대로 이동합니다.
1대1 대화 퍼포먼스
무대에 오른 관람객 대화자는 스크린을 통해 등장하는 또 다른 대화자와 마주합니다. 이 두 사람은 사전에 정해진 하나의 질문 또는 주제에 대해 약 10분간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화면 속 상대는 사전에 모집·훈련된 전 세계 참가자 중 한 명으로, 국적·문화적 배경이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이 즉흥 대화에는 어떠한 각본도 없으며, 그 자체로 한 편의 즉흥 영화처럼 전개됩니다. 관객들은 어둡게 조성된 객석에 앉아 두 사람의 생생한 대화를 영화 관람하듯 지켜보며, 자신의 생각과 비교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엔딩 영상 상영
10분간의 대화가 끝나면 곧바로 엔딩 무비가 상영됩니다. 이는 카와세 나오미 총감독과 세계 6개국의 감독들이 특별 제작한 6편의 단편 영상 중 하나로, 방금 무대에서 벌어진 대화의 의미를 관객이 되새겨볼 수 있도록 구성된 작품입니다. 엔딩 영상은 매회 무작위 한 편이 재생되며, 관객들은 이를 감상하며 자신이 목격한 대화의 내용을 곱씹어 보게 됩니다.
사색과 소통
상영이 모두 끝나면 관객들은 극장을 나서 ‘숲 속 집회소’ 공간으로 이동합니다. 이곳은 통유리로 된 개방적 휴게 공간으로, 자연 채광을 받으며 방금 본 대화에 대한 느낀 점을 서로 이야기하거나 혼자 사색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관객들은 자유롭게 머물며 타인과 의견을 나누거나 조용히 자신의 내면과 대화함으로써, 이번 체험을 통해 얻은 영감을 현실 세계의 자신에게 연결짓는 시간을 갖습니다.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1,840편의 즉석 드라마를 통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이해와 공감을 형성해 가는지 현장 예술의 형태로 보여주는 시도라고 이래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 감독은 대화극장을 통해 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단정짓는가, 왜 적과 아군으로 나뉘어야만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현대 사회에 만연한 분열과 대립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이에 대한 해법으로 ‘대화’라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에 주목했습니다.
“전쟁이나 분단을 힘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알고 나의 안에 그들을 존재하게 함으로써 비로소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는 곧 상대를 이해하고 내면에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만 진정한 공존과 생명 존중이 가능하다는 그녀의 철학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대화극장의 대화 세션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데요. 그녀는 매일 주어지는 하나의 질문이 낯선 두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특히 매일 무작위로 주어지는 질문들의 내용이 인상적인데요.
‘최근에 당신은 어떤 색깔입니까?(最近、あなたは何色ですか?)’
‘해도 되는 거짓말과 해서는 안 되는 거짓말의 경계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ついていい嘘とついてはいけない嘘の境目はどこにあると思いますか?)’
대화극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카와세 나오미가 감독을 맡은 영화의 세계관과 연출 스타일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카와세 나오미는 데뷔 이래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나라현 지역을 기반으로 현실의 인간 경험을 깊이 있게 포착하는 영화를 만들어온 것으로 유명한데요. 숲의 소리(萌の朱雀, 1997), 애도의 숲(殯の森, 2007), 두 번째 창문(2つ目の窓, 2014), 앙: 단팥 인생 이야기(あん, 2015), 비전(Vision,2018) 등 그녀의 대표작은 공통적으로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 세대와 세대 간의 교감 등 ‘생명’의 주제를 일관되게 탐구하는 작품들입니다.
특히 현실에 뿌리내린 인물과 풍경, 즉흥적인 순간을 포착하는 다큐멘터리적 기법과 서정적 연출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데요. 이러한 그녀의 영화적 성향은 대화극장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특히 대본 없이 진행되는 1대1의 즉흥 대화의 형식은 ‘뜰에 나가다’와 같은 자전적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그녀가 즐겨 활용하는 ‘날 것의 현실 담아내기’ 방식을 연상시키는데요.
기술적인 면에서도 영화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대화극장의 공간은 계단식 극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시네마를 보는 듯한 경험을 줍니다. 실제로 대화 세션 후에 엔딩 크레딧 대신 특별 제작 영상을 상영하는 연출은 영화 관람의 형식을 차용한 것인데요. 이에 대해 카와세 나오미 감독은 자신의 파빌리온을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듯한 대화 체험’으로 구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야말로 대화극장은 엑스포라는 형식을 빌려 그녀가 현실이라는 무대 위에 연출한 하나의 거대한 라이브 영화이며,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테마와 미학이 새로운 형태로 구현된 작품인 것입니다.
나오미 감독은 대화극장을 기획하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대화극장의 로고에도 대화를 상징하는 말풍선과 조명을 표현한 스포트라이트 아이콘을 조합하여 ‘대화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내면에 빛을 비춘다’는 개념을 담았고, 실제 공간에서도 무대 위의 한 사람을 조명으로 강조하는 연출을 했는데요.
이 로고를 활용해서, 텍스타일 브랜드 미나 페르호넨(minä perhonen)의 설립자 미나가와 아키라(Akira Minagawa)가 디자인한 유니폼도 눈에 띄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 미나가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는 가네코 미스즈(金子みすゞ)의 시집 『모두 다르고, 모두 괜찮아(みんな違って、みんないい)』를 정말 좋아합니다. 그런 따뜻한 기운이 카와세 나오미 감독의 파빌리온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피어날 수 있다면 참 멋질 것 같아요. 유니폼 디자인은 테마를 상징하는 말풍선 아이콘이 테마 컬러인 노란색 하늘 위를 떠다니는 아주 단순한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대화라는 건 얼핏 쉬워 보이지만, 실은 아주 어렵고, 그렇기에 또 아주 즐거운 일이기도 합니다.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방식도 다르고, 그것 역시 다 괜찮습니다. 저는 이 ‘실험의 장’이 조금이라도 더 즐겁고 열린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유니폼을 디자인했습니다.”
유니폼 뿐만 아니라, 대화극장의 또 다른 파트너인 시세이도는 미나 페르호넨의 디자인과 어울리는 헤어와 메이크업 ‘대화의 아름다움(Dialogue Beauty)’을 개발했습니다. 이에 대해 시세이도의 수석 헤어 메이크업 디렉터 케라 히로후미(KERA Hirofumi)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지금 같은 시대이기 때문에, 창업 정신인 ‘만물자생(万物資生)’으로 다시 돌아가서,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자연과 사회를 아름다움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싶다는 바람을 담아, 시세이도 내에서도 특히 새로운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탐구해온 뷰티 크리에이션 센터가 ‘Dialogue Beauty’를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대화극장은 무엇보다도 엑스포라는 가장 세계적인 행사에서 가장 지역적인 가치를 다층적으로 드러내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화극장의 건축에 일본 지역사회의 실제 유산을 가져와 활용했다는 것입니다.
이 전시관은 나라현 도츠카와무라(奈良県 十津川村)에 있던 구 오리타테 중학교와 교토부 후쿠치야마시(京都府 福知山市) 미와정의 구 호소미 초등학교 나카데 분교라는 두 개의 목조 폐교 건물을 해체하여 이전한 뒤, 엑스포 회장에 결합·재건축한 것인데요. 단순히 외형만 본뜬 것이 아니라 실제 건물 자재와 구조물을 옮겨와 현장에서 다시 조립했기 때문에, 파빌리온 곳곳에는 과거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남긴 낙서나 흔적까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심지어 옛 교정에 서 있던 수령 100년, 높이 12.5m에 달하는 은행나무 한 그루도 통째로 이식하여 파빌리온의 상징적 중심에 심었는데, 이 나무는 원래 이전 과정에서 벌목될 예정이었으나 카와세 나오미 감독의 꿈에 나타나 ‘날 자르지 말아달라’는 계시를 준 덕분에 살아남아 옮겨졌다는 일화가 있는데요. 이외에도 나라나 교토에 자생하는 식물, 폐교사의 벽에 붙어서 자라던 우거진 아이비 등을 이식해서 정원을 대화극장의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대화가 꼭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간단한 안부 인사, 메신저의 한 줄, 눈을 맞추며 건네는 한마디도 대화라고 할 수 있어요. 대화극장이 보여주는 건 언어의 완성도가 아니라, 관계가 생겨나는 가능성입니다. 어쩌면 이 극장은 하나의 영화라기보다, 매일 조금씩 써내려가는 삶의 시나리오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그 안에서 날마다 다른 역할로 등장하고, 매일 다른 문장을 대화를 통해 함께 완성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영화’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