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의 각본은 과연 누가 쓴 것일까요?
어떤 집에 살고 싶으세요?
생각보다 자주 접하는 질문입니다. 아파트 청약 게시판에서, 부동산 광고에서, 휴가를 보낼 숙소를 고르는 순간에도 이 질문은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반복됩니다. ‘집처럼 편안한 호텔’, ‘호텔 같은 집’, ‘누구나 꿈꾸는 집’, ‘가장 핫한 분양권’… ‘집’은 거주공간이자 경험이고, 욕망이자 투자 상품이며, 때로는 누군가의 성취를 증명하는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볼 수는 없을까요? 집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일상이 작동하는 기반이자 이야기의 토양입니다. 도시와 지역의 가장 작은 단위이며, 개인적으로는 존재의 중심을 이루는 장소이기도 하죠. ‘어떤 집을 가질 것인가’보다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라는 물음이 더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이번 주에는 집을 무대로 하는 퍼포먼스 전시 ‘홈 스테이지(Home Stage)’ 를 소개합니다.
2023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에스토니아 파빌리온 ‘홈 스테이지(Home Stage)’는 집을 생활의 공간인 동시에 교환 가치로 보는 이중적 관점을 탐구하는 퍼포먼스형 전시입니다. 베니스의 살리자다 스트레타(Salizada Streta) 96번지에 마련된 에스토니아 파빌리온은 실제 주거용 아파트를 전시장으로 활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인데요. 큐레이터 팀은 평범한 집을 독창적인 설치미술 무대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주거 공간이 단순한 주거를 넘어 투자 상품이 되는 현대 사회의 모순을 다루며, 집과 부동산 사이의 괴리, 꿈과 현실, 세입자와 소유주, 거주자와 방문자 간의 대비를 드러내고자 했는데요. 쉽게 말해 주거 공간의 상품화가 불러온 문제에 주목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에스토니아의 주택 위기(Housing Crisis)라는 지역적 이슈를 전지구적 사회 문제로 확대하여 조명하려는 시도입니다. 전시는 관람자에게 ‘과연 우리의 집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집을 짓는 행위는 사람을 위한 것인가, 자본을 위한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만드는데요. 이러한 주제 의식은 2023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전체 주제인 ‘미래의 실험실(Laboratory of the Future)’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홈 스테이지 프로젝트는 에스토니아의 건축 스튜디오 b210 소속 건축가인 아에트 아더(Aet Ader), 아르비 앤더슨(Arvi Anderson), 마리 멜드레(Mari Möldre)가 큐레이터 겸 기획자로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에스토니아 건축계에서 일상적 공간의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들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아에트 아더는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당시베니스의 심각한 주거 문제와 치솟는 임대료는 에스토니아 탈린을 포함한 세계 여러 도시들의 현실을 반영한다면서, 세계적 무대에서 에스토니아의 주거 이슈를 공유하려는 전시 의도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홈 스테이지 프로젝트는 건축가 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는데요. 에스토니아의 공연 예술가들이 퍼포머로 참여하여 실제로 베니스의 임대 아파트에서 한 달씩 거주하고 공연을 펼쳤습니다. 특히 주요 퍼포머로 참여한 리사 사레매엘(Liisa Saaremäel), 키이스티 쿠우스푸(Keithy Kuuspu)는 퍼포먼스 연출자(Director)로서도 이름을 올려, 일상의 동작들을 예술적 장면으로 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에스토니아의 작가 얀 카우스(Jan Kaus)가 극작가로 참여하여 전시의 내러티브와 대사 등 스토리 요소를 맡았고, 무대미술가 카이리 맨들라(Kairi Mändla), 음향 디자이너 마르쿠스 로밤(Markus Robam) 등이 팀에 합류하여 완성도 높은 퍼포먼스형 전시를 완성했습니다.
이처럼 건축, 문학, 공연예술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한 이유는 실제로 사는 사람의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큐레이터 팀은 ‘건축가는 건물이 완공된 후에 그곳에서 사람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볼 기회가 없는데, 집은 결국 사람의 몸과 이야기로 채워지는 공간’이라며 실제 거주 행위를 전시에 포함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러한 다학제적 협업 덕분에 홈 스테이지는 건축적 실험이자 일종의 사회극(social performance)으로 기획되었으며, 이를 통해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독특한 형태의 전시를 구현했습니다.
집 안 거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선반입니다. 이 선반에는 다양한 소품과 서류 상자들이 진열되어 있는데요. 상자에는 다음과 같이 집의 이상과 현실을 암시하는 단어들이 적혀 있습니다.
꿈(Dreams)
자가 주택(Own house)
청구서(Bills)
대출(Mortgage)
유지관리(Maintenance)
그 외에도 기묘한 부엌 도구들과 에스토니아 주거 환경을 담은 사진 엽서, 화분 등이 뒤섞여 전시하고 있는데요. 이러한 오브제들은 집에 얽힌 이상향과 경제적 현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침실 천장에 설치된 거울은 관객이 방에 들어선 자신과 공간을 색다르게 인식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로, 사적인 공간이 마치 전시품처럼 관찰되는 대상으로 느껴지도록 연출한 것입니다. 침대에는 아홉 명의 퍼포머 이름이 새겨진 흰 침대 시트가 놓여 있는데, 이는 이 공간이 한 사람의 집이면서 동시에 여러 사람이 거쳐 가는 무대임을 상징합니다.
화장실에는 이 전시의 백미로 꼽히는 ‘싱크대 분수’가 있습니다. 두 개의 세면대와 변기, 욕조로 구성된 욕실에서 갑자기 물줄기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장면은 관람객에게 신선한 충격과 유머를 선사합니다.
이처럼 집 안 곳곳의 평범한 가구와 설비를 변주한 설치미술 요소들—예컨대 거실의 먼지더미와 진공청소기, 주방 식탁 위에 놓인 이색적인 생활 소품들—은 관객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분위기를 자아내어 집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홈 스테이지의 공간 디자인은 공연(퍼포먼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퍼포머들은 전시장인 아파트에서 실제 생활 행동들을 연기하며, 관람객은 방문자 혹은 구경꾼의 신분으로 그 장면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퍼포머는 일정 시간마다 청소기 돌리기, 침대 시트 정리, 다림질, 식사 준비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집안일을 수행하는데, 그 모습이 관객에게는 하나의 공연으로 비쳐집니다. 동시에 예기치 못한 극적인 상황, 이를테면 집들이 파티에서의 연설, 부동산과의 계약과 같은 장면이 대본에 따라서 때로는 즉흥적으로 펼쳐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퍼포먼스는 매일 약 1시간 30분 간격으로 집의 각 공간에서 반복 상연되는데요.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관객들은 거실, 부엌, 침실, 욕실 등을 자유롭게 돌며 마치 한 편의 연극 무대에 직접 참여하는 경험하게 됩니다.
홈 스테이지는 에스토니아의 지역적 사회 문제를 국제 무대에 효과적으로 펼쳐 보인 중요한 사례 중 하나입니다. 에스토니아 큐레이터 팀은 자국의 주거 현실을 프로젝트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에스토니아는 과거 소련 시절 대규모 아파트 블록이 조성되어 대다수 국민의 주거지로 사용되었고, 1990년대 독립 이후 갑작스러운 사유화와 부동산 시장화가 진행된 특수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요. 에스토니아는 소련 붕괴 후 민간 소유권이 재확립되고, 이전 체제에서 국가가 소유했던 주택이 개인에게 돌아가거나 외국 자본에 매각되는 등 동유럽 전반에서 공통으로 겪은 주거 구조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전환 속에서 공동주택에 대한 반감과 개인 주택 소유에 대한 열망이 90년대에 폭발했는데, 이는 소련 시기의 집단 주거에 대한 반작용이었습니다. 큐레이터인 마리 멜드레는 “오늘날 에스토니아의 주거 공간 역시 세계적 경향과 마찬가지로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에스토니아 도시의 부동산은 해외 연기금 등 투자자본이 대거 소유하게 되었고,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임대주택을 지을 토지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실정이어서 주거 불안정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집은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라기보다 똑같이 생긴 상품화된 아파트로 전락하고 있으며, ‘에스토니아의 많은 새 아파트 내부는 어디에 있어도 다 똑같은 이케아식 인테리어를 하고 있어서, 세계 어느 도시에 가도 똑같은 쇼룸 같은 집에 살게 된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러한 에스토니아의 주택 시장 문제와 주거 문화 변화에 대한 문제의식이 바로 홈 스테이지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큐레이터들은 이처럼 에스토니아의 특수한 맥락에서 제기된 문제를 보편적 의제로 확장하기 위해 베니스를 무대로 선택했습니다. 베니스는 세계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동시에, 비엔날레 기간에 임대료 폭등과 지역 주민 주거 위기가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도시입니다. 큐레이터 아에트 아더는 “베니스의 주거 문제는 전 세계 도시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보여준다. 탈린을 비롯한 에스토니아도 예외가 아니다”라며, 베니스의 현실과 에스토니아의 현실이 맞닿아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파빌리온이 차려진 카스텔로 지역의 임대 아파트는, 평소라면 현지인이 거주했을 공간이 비엔날레 기간에 전시공간(즉 상업적 용도)으로 전용된 사례이기도 합니다. 이는 곧 거주민이 사라진 도심의 모습을 반영하며, 에스토니아뿐 아니라 전 세계 관광도시가 겪는 딜레마를 드러냅니다. 홈 스테이지는 이 공간에 에스토니아 퍼포머들을 실제 거주자로 참여시킴으로써, ‘집은 결국 사람이 있어야 집’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람객들은 베니스 한복판에서 에스토니아인들의 생활-퍼포먼스를 지켜보며, 특정 지역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주거 문제로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큐레이터인 아에트 아더는 홈 스테이지 프로젝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전시에서 직접적인 주택 문제 해법을 내놓지는 않는다. 주거 문제 해결책은 각 지역의 특수성에 맞춰져야 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방식을 다른 곳에 복사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집에 살면서도 집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순간은 많지 않습니다. 어떤 구조와 몇 평형인지, 얼마에 사거나 언제쯤 팔 수 있을지, 혹은 누군가의 집과 나의 집을 비교하는 일은 익숙하지만, 정작 집이 나에게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는 종종 잊어버리곤 합니다.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