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라는 우산

우리가 ‘동네’라고 부를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집 앞 편의점까지, 매일 걷는 공원과 카페까지, 아니면 지하철 두세 정거장 떨어진 친구의 집까지도 포함될까요. 누군가에게는 모퉁이를 돌면 바로 펼쳐지는 거리 풍경이 전부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오가며 쌓인 기억의 반경이 동네의 경계가 됩니다. 흥미로운 건, 이 경계가 늘 고정된 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관계, 기분, 이동 수단에 따라 그 범위는 유연하게 바뀌죠. 비 오는 날에는 발걸음이 짧아지고, 맑은 날엔 조금 먼 길도 즐겁게 걸어가는 것처럼 말이죠. 

이번 주에는 동네의 개념을 바꾸는 우산 공유 서비스 ‘아이카사(アイカサ, iKasa)’ 소개합니다.

아이카사 ⓒiKASA

아이카사(iKasa)는 일본 최초의 우산 공유 서비스로, 비 오는 날 우산을 빌려 쓰고 원하는 장소에 반납할 수 있도록 해주는 플랫폼입니다. 2018년 12월 도쿄에서 서비스를 시작했으며, ‘우산이 없는 사회’를 목표로 일본 전역에 약 1,600여 곳의 대여 스팟과 약 6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 플랫폼으로 성장했습니다. 

아이카사를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스마트폰으로 아이카사 앱 또는 일본의 메신저 앱 라인(Line)에서 회원 등록과 결제한 후, 우산 스탠드에 부착된 QR 코드를 스캔하면 잠금이 해제되어 우산을 빌릴 수 있습니다. 우산 사용 후에는 최초에 우산을 대여한 장소로 돌아갈 필요 없이, 가까운 아이카사 스팟에 반납할 수 있어 아주 편리한데요. 이러한 서비스를 통해 아이카사는 ‘젖지 않는 생활’을 제안하며, 급작스러운 비에도 우산을 구매하거나 휴대할 필요가 없는 새로운 생활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아이카사의 개념 ⓒiKASA

일본에서 매년 소비되는 약 1억 2천만 개의 우산 중에서 60%에 해당하는 약 8천만 개가 일회용 비닐 우산일 정도로 일본은 세계 최대의 우산 소비국 중 하나인데요. 아이카사는 버려지는 일회용 우산 문제에서 출발했습니다. 창업자인 마루카와 쇼지(丸川照司)는 말레이시아 유학 시절에 우버(Uber)나 그랩(Grab) 같은 차량 공유 서비스를 비롯한 현지의 다양한 공유경제 사업을 직접 경험하면서, ‘아직 아무도 손대지 않은 분야를 해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특히 당시에 일본에서는 자전거 공유 등이 시작되던 시기였는데, 매년 수천만 개씩 버려지는 우산 문제를 보고 이를 비즈니스의 힘으로 해결하기로 결심, 2018년에 두 명의 친구와 함께 Nature Innovation Group 회사를 설립하고 아이카사를 런칭했습니다. 마루카와 쇼지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비닐우산은 누구나 한 번쯤 사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대부분 갑작스러운 수요 때문에 구매하게 되죠. 우산을 안 가지고 나왔는데 비가 내리고 있고, 이미 집에는 여러 개의 비닐우산이 있는데도 어쩔 수 없이 또 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원하는 건 비닐우산 자체가 아니라 ‘비에 젖지 않는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경찰청의 분실물 상위 목록에도 우산이 포함되어 있는데, 흥미로운 건 찾으러 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아이카사 스팟 ⓒiKASA

아이카사의 사업 구조는 공유 플랫폼 모델을 따르고 있는데, 주로 이용자 요금과 파트너십 수익으로 이루어집니다. 기본 요금은 24시간당 140엔으로 책정되어 있어 하루 내에 반납하면 동일 요금만 부과되고, 자주 이용하는 고객을 위해 월 280엔의 정액 이용권(구독형)을 제공하여 한 달간 횟수 제한 없이 우산을 빌릴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아이카사의 수익 모델은 기본적으로 이용자가 지불하는 대여 요금이 중심이지만, 동시에 B2B 제휴를 통해서 부가적인 수익 창출 뿐만아니라 브랜드를 확장하는 방식이 흥미로운데요. 2022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2030년 일회용 우산 제로 프로젝트’는 서비스가 제공되는 공간의 범위에 따라 ‘For Building(건물 단위)’, ‘For City(도쿄 도내 지역구, 도시 단위)’, ‘For Local(지방 자치 구역 단위)’ 로 구분하여 파트너십을 맺고 확장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이카사는 기획 단계부터 일본의 주요 철도사업자와 협업하여 우산 스팟을 철도역에 설치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요. JR동일본은 아이카사에 투자까지 진행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그 결과 도쿄 수도권의 주요 JR 역들을 중심으로 아이카사 거치대가 속속 들어섰습니다. 나아가 아이카사는 2024년까지 도쿄도와 인근 3개 현의 모든 역(약 1000개역)에 아이카사 우산 스팟을 설치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철도회사들과 협력 중인데요. 이 프로젝트에는 JR 그룹뿐 아니라 일본의 10대 철도사업자 모두가 참여하여 역사 공간을 공유 우산 인프라로 만드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현재 도쿄 메트로 지하철역, 오사카 메트로 및 한큐·한신 철도역, JR서일본·JR큐슈 등의 역사 내에도 아이카사 대여소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통망과의 연계는 ‘비가 와도 이동에 불편함이 없는 도시’를 만드는 아이카사의 비전에 필수적인 요소로, 각 철도사는 탄소중립과 ESG 경영의 일환으로 이 움직임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이카사 x 날씨의 아이 협업 우산 ⓒiKASA

우산을 광고 매체로 활용하는 사업 모델도 인상적입니다. 전통적인 디스플레이나 옥외 광고와는 다른 방식의 광고 매체를 원하는 광고주들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된 셈인데요. 기업의 로고나 메시지를 우산 표면에 인쇄하여 홍보하는 것 외에도, 유명 캐릭터나 아티스트와 협업한 한정 우산을 제작해 화제를 모으곤 했습니다. 인기 애니메이션 영화 ‘굴뚝마을의 푸펠’이나 ‘날씨의 아이’와 협업하여 해당 테마 디자인 우산을 아이카사로 빌려주는 이벤트를 열었고, 이는 젊은 층의 큰 호응을 얻어 서비스 인지도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사가현의 사례처럼 지방 캠페인과 연계한 디자인 우산, IT기업 HENNGE처럼 자사 로고를 활용한 공동 디자인 우산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참여 기업 입장에서도 새로운 브랜드 홍보 수단으로 아이카사를 활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요. 

편의점 로손(Lawson)은 일찍이 아이카사와 제휴하여 다수 지점에 우산 스탠드를 설치했고, 경쟁 편의점인 세븐일레븐과 패밀리마트 등도 추후 이 서비스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형 쇼핑몰 운영사나 호텔 체인 등도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아이카사와 파트너십을 체결하여, 자사 건물 내에 우산 대여소를 제공하거나 고객에게 무료 우산 대여 혜택을 부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아이카사 우산의 구조 ⓒiKASA, Ca el la

일반적인 투명 비닐우산은 구조상 쉽게 부러지고 한두 번 쓰고 버려질 때가 많지만 아이카사의 우산은 특수한 구조로 만든 견고한 살대를 사용해 내구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사에라(Ca et la)에서 개발한 구조는 우산 뼈대 일부가 손상되더라도 부품만 교체하여 수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하나의 우산을 여러 해에 걸쳐 지속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아이카사 우산 하나의 평균 수명은 약 5년, 그 동안 약 500회 대여가 가능하다고 하는데요. 이는 우산 한 개로 수백 개의 일회용 우산을 대체한다는 의미이며, 아이카사 서비스 전체적으로도 막대한 자원 절약 효과를 가져옵니다. 실제로 아이카사는 이러한 지속가능성 가치를 인정받아 2023년 도쿄 금융 어워드(Tokyo Financial Award)에서 ESG 부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아이카사 ⓒiKASA

아이카사를 소개하는 글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습니다.

” 아이카사는 「우산」에서 현대의 사회를 바꾸어, 미래에 태어나는 아이들이 쾌적해지는 사회나 지구 환경을 만들어 갑니다. 
몇 년 후에는 ‘옛날 사람들은 우산을 사고 있었구나’라는 대화가 태어날 정도로 우산을 공유한다는 개념이 당연하다는 사회를 만들어 냅니다.” 

우산을 공유한다는 개념은 그 자체로 개인의 도시 공간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평소 비 예보가 있으면 집 근처에 머무르거나 이동을 꺼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우산을 안 들고도 빈손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요. 언제 어디서 갑자기 비가 내려도 가까운 곳에서 우산을 빌릴 수 있고, 비가 그치면 가장 가까운 스팟에 반납하면 되니까요. 덕분에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활동 반경을 넓힐 수 있게 되고, 개인이 느끼는 ‘내 동네’의 범위도 확장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우산을 빌려 이동할 수 있는 거리’로 생활권의 단위를 재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카사 ⓒiKASA, Recycle Tsushin

현대의 도시계획에서는 거시적인 인프라뿐 아니라 일상의 디테일을 촘촘히 설계하는 움직임이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우산 공유 서비스처럼 개인과 도시의 정서적 관계에도 영향을 주는 공공적 성격의 요소들을 마이크로 인프라(Micro Infrastructure)라고 하는데요 .도시의 ‘살기 좋음(livability)‘은 거창한 건축물이나 개발사업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일상생활의 세밀한 부분—깨끗한 공중화장실, 편리한 벤치, 적절한 그늘막, 그리고 우산 같은 작은 편의까지—에서 나온다는 이론입니다. 어쩌면 그저 우산 하나 빌려주는 작은 서비스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도시민의 이동 습관을 바꾸고 생활권 범위를 재정의하며, 지역에 대한 애착과 공동체 의식까지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아이카사를 통해 조금이나마 동네의 세심한 배려를 느끼고, 그만큼 동네를 신뢰하며 사랑하게 된다는 것 말입니다.

어쩌면 ‘도시 설계’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비 오는 날 작은 우산 하나로 누군가 미소 지을 수 있게 하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요?


EVERY WEEK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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