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도로 발달된 도시에서는 공간을 소유하는 것과 점유하는 것의 가치의 간극이 크게 벌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아파트를 사서 몇 십년이 지난 후에 다시 팔 때까지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거나, 알 필요도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편 고가도로의 밑을 활용해 공공 체육시설을 만들고, 버려진 공장을 미술관이나 카페로 만드는 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도시의 문화와 수요는 빠르게 변하고, 동시에 자산으로서 도시의 역할도 영향을 받기 때문인데요.
최근에는 공간을 소유하거나 점유하는 것을 넘어, 공간을 직접 소비하고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도시를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운영이나 콘텐츠라는 단어가 공간이라는 단어와 점점 더 많이 함께 사용되는 것도 이러한 현상의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도시 공간을 만드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DVLN 파크(DVLN Park)를 소개합니다.
DVLN 파크를 이해하려면 이 프로젝트의 기획과 디자인, 설계와 운영까지 맡은 중국의 건축 스튜디오 데볼루션(Devolution)의 철학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볼루션의 중국어 이름은 열화건물(退化建筑)입니다. 직역하자면 ‘퇴화된 건물’이라는 뜻인데요. 다소 모순적인 이름의 뒤에는 스스로를 건축이나 디자인이 아닌 ‘해프닝 회사’라고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신념이 담겨 있습니다.
” DEVOLUTION은 해프닝 회사입니다.
우리는 :
A. 해프닝을 만듭니다.
B. 해프닝이 만들어지거나 발생하는 공간을 만듭니다.
C. 실제 해프닝을 계속 관찰합니다.
이러한 사항은 다음에 해당합니다.
A. DEVOLUTION의 창의적 방향
B. DEVOLUTION이 전문으로 하는 상업 프로젝트 분야
C. DEVOLUTION의 개념적 기원 및 가치”
데볼루션은 건물의 형태와 디자인보다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를 통해 관습과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의문점을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고 실제로 그것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점인데요.
일하는 사무실이 미술관이 될 수 없을까?
아파트는 꼭 사적인 공간으로만 사용해야 할까?
…
데볼루션은 가상의 회사와 사무실을 실제로 만들어서 예술 사진이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 전시될 때의 새로운 맥락에 대해 보여주거나, 비어있는 아파트를 작은 공원으로 만들어서 하나의 건물에 모여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웃과 고립된 실상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2024년에 완성된 DVLN 파크는 데볼루션이 지난 몇년간 지속해온 이러한 시도의 연장선에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다만 팝업 스토어처럼 일정 기간만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이전의 공간들과 달리, DVLN 파크는 데볼루션이 직접 기획부터 운영까지 도맡은 첫 번째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DVLN 파크는 중국 푸젠성 샤먼 지역에 있는 상가 건물인 ‘샹허 플라자’의 옥상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입니다. “지역의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정신적 마을”을 컨셉으로, 6층 높이 1,500평 크기의 옥상에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원과 함께 다양한 상점이 어우러져 있는 독특한 공간입니다. DVLN 파크를 기획한 데볼루션 팀은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시가 편안하고, 친절하고, 즐겁기를 바라며, 주변 커뮤니티에 새로운 요소를 가져다주고, 주제별 목적지, 커뮤니티 허브, 콘텐츠 생성기로 이루어진 활기찬 소우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공원 내에는 루프루트(RoofRoot)라는 지역 특산품 매장에서 수시로 자연 교육 및 예술 체험 활동을 운영하고, 하퍼스 플라워 샵(HARPER’s Flower Shop)은 샤먼 지역의 꽃 시장으로 유명한 시안 로드(Xi’an Road)에서 영감 받은 꽃을 큐레이션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극장에 자리 잡은 작은 선술집 춘화 극장(春花戏院)에서는 연극을 보면서 차와 와인을 즐길 수 있고, 캐주얼한 브런치 레스토랑 임프로비제이셔널 다이닝(Improvisational Dining)에서는 샤먼 시내를 내려다보며 근사한 식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독특한 점은 데볼루션이 공간 전체를 기획하고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사무실도 DVLN 파크로 옮겨서 공원의 관리와 운영 과정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실 뿐만 아니라 직접 다실을 운영하면서 지역의 젊은 사람들과 계속해서 교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출근길에 골목길을 걷거나, 옛 이웃에게 인사하거나, 도시에서 여행하고 일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보는 것과 같이, 직장에서 삶의 요소를 더 많이 느끼기를 바랍니다. 효율적인 교통 흐름만 있는 지루한 근무 환경이 아니라요.”
멋진 공간을 디자인하고, 입지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임차인을 찾아서 상권을 만드는 일은 전문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네 구석구석 잠재력이 있는 빈틈을 집요하게 찾아내고, 누구도 쉬이 엄두를 낼 수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선두에 서서 그것을 지휘하고 관리하고 지속하는 일이야말로 지역과 도시에 대해 애정과 신념이 없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변화란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먼저 움직일 용기를 낼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길이 열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DVLN 파크의 사례에서처럼, 그런 종류의 일은 한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시도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보다 어떻게 앞서나갈까 하는 경쟁 의식보다는, ‘나’라는 맥락에서 ‘스스로에게 있어서의 최초’를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