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에서 일하고 가정을 꾸리고 그 집단의 일원으로 살아가더라도 문득 여전히 이어져 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재외동포 투표 제도도 그렇습니다. 먼 곳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가도 선거철이 되면 다시 고향과 연결되는 거죠. 투표소 앞에 줄을 서는 순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나라의 정치와 일상이 내 손끝의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게 새삼 흥미롭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이게 누군가의 예외적인 행동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합의된 권리라는 점이에요. 멀리서도 가까운, 그 묘한 감각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주에는 음료수를 통해 지역의 저항 정신을 발신하는 ‘가자 콜라(Gaza Cola)’를 소개합니다.
가자 콜라(Gaza Cola)는 팔레스타인 출신 디아스포라 활동가 오사마 카슈(Osama Qashoo)가 2023년 말 영국 런던에서 출시한 콜라 브랜드입니다. 카슈는 2000년대부터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운동 -이스라엘에 대한 보이콧 , 투자 철회 , 경제 제재를 장려하는 비폭력적인 팔레스타인 주도 운동-에 앞장선 인물인데요. 2023년 10월 시작된 가자 전쟁 이후 ‘보이콧은 쉽지만,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 없다’는 데에서 착안해 가자 콜라를 만들었는데요. 2024년 8월부터 런던의 팔레스타인 하우스(Palestine House)라는 팔레스타인 문화공간 산하 사업으로 영국 내 판매, 운영되고 있습니다. 생산은 폴란드의 음료 공장에서 OEM 형태로 생산되어 영국으로 수입해 유통합니다. 2024년 말까지 벌써 50만 개 이상의 캔이 판매될 정도로 영국 내에서 상업적, 문화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이러한 성공의 뒤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지역에서 일어난 코카 콜라 불매운동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19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집트가 주도하는 아랍연맹의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기업’ 보이콧 리스트에 코카콜라가 포함되면서 시장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는데요. 이듬해인 1967년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 직후, 이스라엘 내 독점 보틀러 CBC(Central Bottling Company, 코카콜라 이스라엘)가 프랜차이즈 영업을 시작하고, 1998년에 코카콜라 시스템 산하의 독립 보틀러인 NBC(National Beverage Company)가 팔레스타인에서 가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논란이 시작되었는데요.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인권단체 조사에 의해 CBC가 점령된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물류 센터을 운영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제법상 불법인 산업 정착촌에서 사업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에게 토지와 물의 접근을 제한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에 따라 팔레스타인 해방을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2023년 격화된 가자지구 분쟁과 그로 인한 인도주의적 위기는 가자 콜라를 탄생시킨 방아쇠가 되었는데요. 2023년 11월 가자전쟁 상황에서 카슈는 다국적 탄산음료 기업들이 이스라엘의 군사행위를 간접 지원하고 있다는 문제의식 아래, 이에 불매로 대응할 대안 제품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특히 코카콜라가 이스라엘이 점령한 동예루살렘 등지에 시설을 두고 영업한다는 논란이 일자, 카슈는 무고한 생명을 죽이는 자금을 차단하기 위해 직접 새로운 콜라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카슈는 가자 콜라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습니다.
“탐욕은 끝이 없지만, 필요는 한정적입니다. 사람들이 익숙한 공식, 맛, 유사성을 갖춘 놀라운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 사람들이 보이콧에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안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보이콧은 최전선에 설 수는 없지만 변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도구입니다. “
이러한 취지로 가자 콜라는 2024년 8월 런던 현지에서 첫선을 보였으며, 판매를 통한 모든 이익금을 가자 북부에 있던 알카라마 병원(Al-Karama Hospital)의 재건 프로젝트에 투입하고 있는데요. ‘학살에 가담하는 자본에 맞서 삶을 옹호하는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제노사이드-프리 (Genocide-Free) 콜라로 불리고 있습니다.
챗 콜라(Chat Cola), 팔레스타인 콜라(Palestine Cola)와 더불어 가자 콜라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아 기획된 콜라의 대체 제품 중에서,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Palestine Diaspora)가 주도하여 탄생시킨 로컬 브랜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가자 콜라의 창업자인 오사마 카슈(Osama Qashoo)가 있었는데요.
팔레스타인 활동가이자 영화감독인 카슈는 1981년 팔레스타인 서안 나블루스(Nablus) 인근에서 태어나, 2000년대 초반 제2인티파다 기간-이스라엘의 점령지에 대항한 팔레스타인인의 대규모 봉기- 동안 팔레스타인 공학을 공부했습니다. 당시 그는 빈 고물 VHS 카메라를 활용해 조작된 영상을 찍어 이스라엘 봉쇄 상황을 우회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는데요. 2001년에는 비폭력 저항 운동 그룹 ISM(International Solidarity Movement)을 공동 창립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2003년, 그는 서안지구의 분리 장벽(apartheid wall) 반대 평화 시위를 주도한 것으로 인해 체포 위협을 받아 영국으로 망명했는데요. 영국에서 그는 국립 영화텔레비전학교(National Film and Television School, NFTS)를 다니며 필름 작업에 매진하면서, 2006년에 발표한 ‘A Palestinian Journey’는 알자지라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Al Jazeera International Documentary Film Festival)에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그는 가자 자유 선단 (Gaza Freedom Flotilla)에도 참여했는데, 이 과정에서 카메라는 압수되고 그는 체포되고 고문을 당했습니다. 이후 터키로 추방되었지만, 가족의 단식 투쟁으로 안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런던에서 생계 문제에 부딪치면서 2012년 가족의 레시피로 만든 팔레스타인 레스토랑 히바 익스프레스(Hiba Express)를 시작했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뿌리를 비즈니스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요. 2024년에는 비로소 가자 콜라의 런칭과 함께 복합문화공간 팔레스타인 하우스(Palestine House)를 오픈하면서 디아스포라 활동가로서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런던 중심부에 있던 학교 건물을 리모델한 팔레스타인 하우스는 팔레스타인의 생활과 예술을 전파하는 ‘문화 대사관(Cultural Embassy)’를 컨셉으로 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가문이 100% 소유하고 있는 건물의 내부는 타일의 무늬와 목재 구조 등팔레스타인의 전통 건축 양식을 모티브로 디자인 되었는데요. 추방된 팔레스타인의 상징인 거대한 나무 열쇠가 걸려 있는 중심 공간에서는 영화 상영, 강연, 낭독회, 전시, 콘서트 등 문화 프로그램이 열립니다. 런던의 팔레스타인 커뮤니티가 모이는 공유 오피스와 카슈가 창업한 팔레스타인 음식점 히바 익스프레스가 고향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팔레스타인 하우스는 가자 콜라의 생산과 유통 거점이기도 합니다.
영국 런던을 중심으로 시작된 가자 콜라는 초창기 히바 익스프레스와 인근의 팔레스타인 요리 전문점들을 통해 지역 한정으로 판매되었습니다. 출시 후 입소문을 타면서 영국 내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와 무슬림 사회에서 큰 호응을 얻었고, 창립자는 지인들이 운영하는 다른 팔레스타인 식당들에도 입점을 추진하여 런던 일대의 음식점에서 가자 콜라를 취급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정치적 배경으로 인해 대형 슈퍼마켓이나 주류 유통망과의 거래는 쉽지 않았습니다. 카슈에 따르면 여러 유통 파트너들이 제품명이나 디자인 때문에 협업을 꺼리거나 정치적 부담을 느껴 난색을 표했기 때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자 콜라는 풀뿌리 유통 전략으로 꾸준히 판매망을 넓혀갔습니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에 있는 무슬림 운영 상점 알 아크사(Al Aqsa)에서도 가자 콜라를 입고해 판매했는데, 한때 재고가 동날 정도로 지역사회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2024년 8월부터 연말까지 영국 내에서만 50만 캔 이상이 판매되며 초기 목표를 훨씬 넘겼는데요. 이러한 성공을 바탕으로 온라인 채널을 통한 주문도 대폭 증가했습니다. 스페인,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쿠웨이트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연대 소비자들도 가자 콜라를 구매하기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나 서안지구의 소비자들은 이스라엘의 봉쇄와 물류 제한으로 인해 정작 가자 콜라를 먹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팔레스타인의 저항 정신에서 탄생한 브랜드인 만큼 시각적인 요소에서도 브랜드의 정체성이 직관적으로 드러납니다. 디자인 단계부터 정치적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웠는데요. 창립자인 카슈는 제품 개발 과정에서 상표명과 디자인을 완화하자는 제안을 여러 번 받았지만 가자(Gaza)라는 이름과, 깃발, 색상도 붉은색 그대로 사용하기로 고집했습니다. 그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데 타협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켰고, 결국 가자 콜라의 브랜드는 직설적인 메시지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빨간색 바탕의 캔은 유명 콜라 브랜드를 연상시키면서도 동시에 다른 인상을 주는데요. 캔 상단이나 하단 가장자리에는 팔레스타인 전통 머플러 ‘케피예(keffiyeh)’의 패턴 띠를 넣어 팔레스타인의 고유한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강조했습니다. 이와 같은 과감한 디자인 덕분에 가자 콜라는 단번에 시선을 끌며, ‘팔레스타인 해방’이라는 브랜드 정신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케팅 전략 또한 제품의 태생적 이야기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습니다. 먼저 2024년 하반기 런던에서의 소프트 런칭 당시, 카슈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런던 시내 가자지지 시위 현장을 돌며 무료 시음캔과 전단지를 배포하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하우스 건물 외벽에는 거대한 가자 콜라 광고 배너를 내걸고, SNS 채널을 통해 ‘자유의 맛(Taste of Freedom)’이라는 슬로건을 발신하고 있는데요.가자 콜라를 구매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만족감과 의미를 강조하는 스토리텔링이 마케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자 콜라는 디아스포라 지역성의 힘을 드러낸 상징적 사례이자, 소비자가 윤리적 선택을 통해 국제 문제에 개입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공적인 모델입니다. 특히 지역이라는 물리적인 범위를 벗어나, 소비를 통해 연대를 실천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닙니다. 전통적으로 정치적 연대는 시위나 성명, 기부 형태로 이루어지는 반면에, 가자 콜라는 일상적인 소비 행위를 연대의 수단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시민들은 코카콜라 대신 가자 콜라를 집어드는 작은 선택만으로도 ‘팔레스타인 편에 서는’ 의사 표시를 할 수 있고, 실제로 그 소비가 가자의 병원 건설로 이어지는 물적 지원이 된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끼게 되는 건데요.
이처럼 윤리적 소비가 주는 만족감은 가자 콜라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입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 코카콜라·펩시 등의 보이콧에 힘입어 현지 대체 브랜드들이 급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요르단의 매트릭스 콜라(Matrix Cola)나 이집트의 스피로 스파티스(Spiro Spathis)처럼 일찍이 등장한 지역 콜라 브랜드들도 최근 불매운동을 계기로 판매량이 큰 폭으로 늘었습니다. 이처럼 지역적 자본으로 운영되는 대안 브랜드들이 각지에서 탄생하고 성장한다는 것은, 글로벌 소비시장의 흐름이 단순한 자본 논리를 넘어 정치-사회적 가치에 반응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런던에서 시작되어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의 이슈를 다루는 가자 콜라는 런던의 로컬 브랜드일까요, 팔레스타인의 로컬 브랜드일까요.
멀리 바다에 띄워 보낸 작은 병은 누군가에게 닿을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마음입니다. 가자 콜라의 메시지도 다르지 않습니다.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가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여기에 함께 있다’는 신호를 전하고, 동시에 스스로에게 다짐을 확인하는 매개가 됩니다. 한 캔의 음료에 담긴 메시지는 거대한 기업에 맞서는 저항일 수도 있고, 지역을 다시 세우려는 작은 희망일 수도 있습니다.
멀리 런던에서 만들어진 콜라가 팔레스타인의 삶과 기억을 가깝게 불러오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적인 선택 역시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한 번쯤은 멀리서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