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다 보면 사회나 미래, 대의나 집단 같은 말들은 쉽게 공허해지고 당장 눈앞의 일과 개인의 영리 바깥을 상상하기는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일상을 살다 보면 문득 허무하거나 이유 없는 우울감에 잠길 때도 있죠. 그럴 때마다 저마다 빠져나오는 방법이 하나쯤은 있을 텐데요. 개인적으로는 경기장에 가서 스포츠 경기를 보거나 전시장의 그림 앞에 서 있을 때, 인류애 같은 감정이 슬며시 되살아나곤 합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순간에는 막연한 기대나 희망, 혹은 무언가를 다시 해보고 싶다는 용기가 불쑥 고개를 들곤 하는데요.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친구와 가족, 더 나아가 내가 속한 업계나 사회에 조금은 도움이 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말입니다. 모두가 팍팍해진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이렇게 순수한 긍정과 희망을 말하는 일은 점점 더 드물어지고, 그래서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주에는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오슬로 미래 도서관(Oslo Future Library)’을 소개합니다.
2014년에 시작된 오슬로 미래 도서관(Oslo Future Library)은 영국 출신의 스코틀랜드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Katie Paterson)이 구상한, 100년에 걸쳐 진행되는 공공 예술 작품입니다. 패터슨은 나무의 나이테와 책의 장(章)을 연결 짓는 생각에서 출발해, 오슬로 외곽 숲에 1000그루의 나무를 심고 한 세기 뒤 그 나무로 책을 만들겠다는 파격적인 상상을 제안했어요. 그녀는 이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책에 나이테를 그리다가 문득 원과 이야기 속 장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발견했어요. 각각의 장은 시간이 흐르며 성장하는 세계로 가득 차 있었죠. 그러다 보니 서서히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100명의 작가의 목소리로 100년 동안 자라날 숲을 만드는 작품 말이에요.”
패터슨의 이전 작업 가운데 특히 인상적인 작품은 수중 마이크를 통해 아이슬란드의 빙하에 전화선을 연결하고, 누구나 전화를 걸어 빙하가 녹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던 ‘바트나이외쿨(Vatnajökull, 2007)’입니다. 멀리 있어 체감하기 어려운, 그래서 쉽게 지엽적인 문제로 치부되는 자연의 변화를 감각적으로 체험하게 만드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오슬로 미래 도서관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 개인의 작업 범위를 훌쩍 넘어 1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실제 공간에서 작동할 수 있는 구조와 시스템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큽니다. 미래 도서관 트러스트(Future Library Trust)의 이사장인 안네 베아테 호빈(Anne Beate Hovind)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세상은 자연 대 인간이라는 이분법으로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100년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서는 시간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죠. 이 프로젝트는 나 자신의 시간 감각과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이 일이 8년짜리 프로젝트였다면, 아무도 이토록 주목하지 않았을 거예요.”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젝트가 오슬로 시뿐만 아니라, 오슬로 도심 개발 회사인 비외르비카 우트비클링(Bjørvika Utvikling)의 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1,000그루의 나무가 심긴 숲은 이 프로젝트 덕분에 향후 100년 동안 개발이 불가능한 보호 구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개발을 통해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 도시 개발 회사가 왜 이런 프로젝트를 후원했을까요?
비외르비카 우트비클링은 오슬로 항만 재개발의 핵심 구역인 비외르비카를 장기간에 걸쳐 개발하는 회사로, 단순한 부동산 공급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을 만드는 플레이스메이킹(Place-making)을 중요한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 도시 개발 회사가 일부 땅을 100년간 개발하지 않겠다는 역설적인 선언을 통해 “지금 잘 팔리는 도시”가 아니라 “100년 뒤에도 이야기될 도시”를 기업의 강력한 스토리로 끌어들이는 전략으로 볼 수 있어요. 부동산 가치가 아니라 도시의 서사, 다시 말해 내러티브 자산(Narrative Asset)에 투자하는 방식인 셈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비외르비카 우트비클링은 ‘슬로우 스페이스(Slow Space)’라는 공공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오슬로 미래 도서관 역시 이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어요. 어쩌면 이들은 땅을 개발하는 대신에 시간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2014년 여름, 케이티 패터슨이 오슬로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구상이 구체화되었고, 당시 공공 예술 책임자였던 안네 베아테 호빈이 커미셔너이자 프로듀서로 참여해 이를 현실로 만들었죠. 이후 오슬로 시와 협력하여 미래 도서관 트러스트(Future Library Trust)를 설립하고, 숲과 도서관 공간에 대한 장기 보호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이 프로젝트가 실제로 100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 행정적·물리적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작가들에게 생전에 읽히지 않을 책을 쓰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안네 베아테 호빈은 아주 담담하게 이야기합니다.
“어떻게 하냐고요? 그냥 물어보면 됩니다. 정말 흥미로운 일이에요. 이 프로젝트는 자금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거창하게 포장된 것도 아닙니다. 작지만 단단한 기반 위에서 천천히 이어지고 있죠. 그래서 오히려 더 개인적으로 느껴지고, 잘난 척하지 않아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에요.
사람들이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는 이유도 바로 그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의미와 진정성 있는 내용, 그리고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죠.”
미래 도서관은 앞으로 100년 동안, 매년 한 명의 작가가 새로운 원고를 기증하고 이를 보관하는 독특한 구조로 운영됩니다. 이 프로젝트는 오슬로 미래 도서관 트러스트를 통해 관리되며, 케이티 패터슨과 안네 베아테 호빈을 포함한 7명의 이사진이 이를 책임지고 있어요. 위원회에는 노르웨이와 영국의 출판인, 미국의 미술관장 등이 참여하고 있고, 매년 가을 새로운 작가를 선정합니다. 기준은 단순합니다. 이 작가가 지금 세대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상상력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을 쓸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선정된 작가는 이듬해 초여름, 오슬로 외곽 노르드마르카 숲에서 열리는 공개 원고 봉헌식에 참여합니다. 작가가 직접 숲을 걸어 들어와 자신의 원고를 밀봉해 전달하는 이 의식은 해마다 반복되는데,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누군가의 글이 아직 읽히지 않은 채로 숲과 함께 긴 시간을 견디기 시작하는 흥미로운 순간이죠. 타임캡슐처럼요.
지금까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2014년 — 마거릿 애트우드 (Margaret Atwood)
2015년 — 데이비드 미첼 (David Mitchell)
2016년 — 쇼온 (Sjón)
2017년 — 엘리프 샤팍 (Elif Shafak)
2018년 — 한강 (Han Kang)
2019년 —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Karl Ove Knausgård)
2020년 — 오션 부옹 (Ocean Vuong)
2021년 — 치치 단가렘브가 (Tsitsi Dangarembga)
2022년 — 유디트 샬란스키 (Judith Schalansky)
2023년 — 발레리아 루이셀리 (Valeria Luiselli)
2024년 — 토미 오렌지 (Tommy Orange)
2025년 — 아미타브 고쉬 (Amitav Ghosh)
미래 도서관은 노르웨이 오슬로라는 지역적 특성과 아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케이티 패터슨은 오슬로가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숲이라는 존재가 사람들의 무의식 깊숙이 자리한 도시’이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를 펼치기에 더없이 적합한 장소였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2014년, 프로젝트 팀이 오슬로 외곽 노르드마르카(Nordmarka) 숲에 1,000그루의 노르웨이산 가문비나무 묘목을 심을 당시에, 오슬로시 환경국의 임업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숲 조성이 지역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세심하게 검토했습니다. 노르드마르카는 오래전부터 오슬로 시민들의 휴식처였고, 도시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기 위해 100년 넘게 개발이 제한되어 온 보호 지역이기도 한데요. 그런 점에서 미래 도서관은 오슬로의 녹지 보존 정책과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는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죠.
동시에 기탁된 원고들은 오슬로 시의 신축 중앙도서관인 다이히만 비요르비카(Deichman Bjørvika) 안에 마련된 침묵의 방(Silent Room)에 보관됩니다. 이 공간은 케이티 패터슨이 도서관 건축가들과 함께 설계한 곳으로, 내부 벽면이 나무의 나이테처럼 100겹으로 쌓여 있는 독특한 구조의 공간이에요. 이 목재들은 모두 2014년 숲을 조성하며 간벌된 나무들로 만들어졌고, 각 층마다 해당 연도의 원고가 들어갈 유리 서랍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방은 2022년에 일반에 공개되었지만, 그 안의 원고 상자들은 2114년까지 열람할 수 없어요. 오슬로 시는 이 숲과 도서관 보관실을 100년 동안 보호하기 위한 공식 협약을 체결했고, 이를 뒷받침할 행정적·법적 장치도 이미 마련해 두었기 때문인데요.
지역 문화 생활의 중심인 도서관과 지역 자연 환경의 중심인 숲을 이렇게 하나의 서사로 연결하는 방식이 이 프로젝트가 지역성을 바라보는 태도의 핵심이라고 느껴집니다. 단순한 복지나 공공 서비스의 차원을 넘어, 문학이라는 예술적 성취와 자연의 보존, 그리고 현재 세대가 힘을 모아 만들어낸 메시지를 100년 뒤 누군지도 모를 독자에게 전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인데요. 동시에 그 메시지는 지역에서 시작되어 다시 지역으로 이어지고, 또 지역에서 세계로 계속 발신되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오슬로 미래 도서관에 첫 번째 원고를 기고한 마거릿 애트우드는 자신의 글이 100년 뒤에 읽히게 될 바로 그 순간을 이렇게 상상합니다.
“내 목소리가 — 그때쯤이면 오래도록 침묵해 있겠지만 — 100년 만에 갑자기 깨어난다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손이 그것을 상자에서 꺼내 첫 페이지를 펼칠 때 과연 무엇이라 말하게 될까요?”
늘 휴대폰을 통해 세계의 거의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고, 콘텐츠와 재화를 즉각적으로 소비하는 데 익숙한 우리에게 100년 뒤의 이름 모를 누군가를 떠올리는 이 프로젝트는 낯설게 느껴집니다. 특히 ‘미래’라는 단어와 ‘도서관’이라는 단어가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여 있다는 사실도 그렇죠. 요즘 우리가 이야기하는 ‘미래’는 대개 디스토피아적 허무주의이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낙관적인 유토피아이거나, 혹은 몇 년 뒤의 윤택한 삶을 위해 미래를 소모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관한 것이니까요.
안네 베아테 호빈은 스티븐 호킹이 말한 ‘대성당 사고(Cathedral Thinking)’를 인용하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의심이라기보다는, 어려운 과제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요즘에는 대성당을 염두에 두고 구상하는 프로젝트가 많지 않거든요. 기념물이나 건물조차 100년 동안 완공되지 않는 경우는 드물고, 예술 작품은 더더욱 그렇죠. 그렇다면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100년이 결코 길지 않다는 걸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요?
하지만 지금까지 정말 환상적인 여정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이 일에 참여하게 되어 감사하고, 무엇보다 이 프로젝트는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신의 오늘, 그리고 100년 뒤 누군가의 오늘을 바꿀 수 있는 일.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