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지혜의 힘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해결책은 늘 새로운 것에 있다고 믿게 된 것 같습니다. 첨단 기술, 정교한 이론, 복잡한 데이터 속에서만 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요. 문제를 마주할 때 우리는 검색부터 시작합니다. 아마 더 빠르고, 더 정확하고, 더 똑똑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일겁니다. 마치 삶의 모든 문제는 인간의 지능이 업데이트되기만 하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요.

하지만 이따금 삶의 가장 막막한 순간에는 오히려 그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 힌트를 던지곤 합니다. 그러고보면 지혜란 반드시 새롭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시 발견하는 능력인지도 모릅니다. 땅과 바다, 그리고 사람의 삶 속에서 느리게 오래 축적되어 온 방식들. 바쁜 시대는 그것을 ‘낡았다’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들은 시간을 통과해 살아남은 해답이기도 하니까요.

미래의 해결책은 언제나 앞에만 있을까요? 어쩌면 아주 오래되고 단순한 방식들 속에 우리는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번 주에는 친환경 식품 브랜드 파타고니아 프로비전(Patagonia Provisions)을 소개합니다.

파타고니아 프로비전 ⓒPatagoina Provisions

파타고니아 프로비전(Patagonia Provisions)은 패션을 통한 환경 보호를 실천해온 파타고니아(Patagonia)가 식품을 통해 지구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자회사입니다. 2012년,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는 ‘사람들은 재킷은 몇 년에 한 번 사지만 음식은 하루에도 몇 번 먹는다. 지구를 구하려면 음식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버지트 카메론(Birgit Cameron)과 함께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을 설립했는데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포획한 연어 제품을 시작으로, 텐트나 아웃도어 활동에 어울리는 통조림 생선, 버팔로 육포, 캠핑용 스낵뿐 아니라 맥주, 사케, 유아식, 파스타 등으로 제품군을 폭넓게 확장하고 있는데요.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은 경쟁사와 차별화하기 위해 단순히 친환경 제품을 만들거나 매출의 일부를 환경 단체에 기부하는 방식과는 달리, 처음부터 ‘식품이라는 영역 안에서 환경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중심에 두고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020년, 이본 쉬나드는 ‘왜 음식인가?(Why Food?)’라는 에세이를 통해 파타고니아에서 식품 사업을 시작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파타고니아가 왜 음식을 만들고 판매하느냐고요? 내게 진짜 질문은 이겁니다 —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확신하고 있어요. 성공하는 사업과 잘 살아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조건은 결국 같다는 것을요. 흔히 말하는 세 가지 가치 기준요?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 음식, 물, 그리고 사랑.”

 

와일드 핑크 훈제 연어 통조림 ⓒPatagonia Provisions
오래된 어획 방식인 리프넷(Reef Net) ⓒPatagonia Provisions

흥미로운 점은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이 제품을 기획하는 두 가지 방식입니다. 첫째는 시장성이나 판매 가능성보다 이 제품이 어떤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를 먼저 고민한다는 점. 둘째는 유전자 조작이나 대량 생산 같은 첨단 기술보다 오랫동안 자연과 공존하며 축적된 지역의 방식을 신뢰한다는 점이에요. 이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제품이 바로 와일드 연어 패킷이죠. 매장에서 보면 그저 작고 단정한 주황색 박스 하나일 뿐이지만, 이 작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파타고니아는 어업의 역사, 지역 공동체, 과학자와 환경단체, 그리고 바다의 미래까지 모두 끌어와 엮는 작업을 했습니다.

2010년대 초, 파타고니아는 ‘우리가 양심의 가책 없이 먹을 수 있는 생선이 과연 남아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제품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연어 양식 산업은 급격히 성장하고 있었지만, 그 이면에는 가두리 양식장이 배출하는 폐수와 항생제, 기생충과 화학물질, 그리고 바다 생태계의 교란이라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회색빛 연어 살을 인공 색소와 사료로 붉게 만들고, 병들지 않도록 약품을 투여하는 방식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본 쉬나드와 버지트 카메론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체 상품을 개발하는 대신, ‘어떤 방식으로 잡힌 연어라면, 우리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을까?’를 먼저 정의하기 시작했는데요. 과학자, 보전 단체, NGO와 함께 자체적인 ‘연어 소싱 기준’을 만들었고, 혼획(잡지 않아도 될 다른 물고기나 어린 연어까지 같이 걸려버리는 일)을 최소화하면서도 장기적으로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는지 검증된 소규모 지역 어업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최종적으로 선택된 곳 중 하나가 워싱턴주 러미 섬(Lummi Island) 인근 해역입니다. 이곳의 어부들은 리프넷(Reef Net) 이라는 매우 오래된 방식으로 연어를 잡는데요. 두 척의 배를 나란히 띄우고 그 사이에 넓은 그물을 수면 아래 펼쳐 둔 뒤, 해저에는 풀과 그물로 만든 인공 암초를 설치해요. 바다를 거슬러 오는 연어 떼는 이 작은 암초를 따라 수면 가까이로 올라오고, 어부들은 배 위 관측대에서 직접 연어의 움직임을 눈으로 확인한 뒤, 그물이 부드럽게 수면 위로 떠오르도록 들어 올리죠. 잡히는 즉시 손으로 선별해, 어린 연어나 다른 종, 보호가 필요한 개체는 상처 없이 다시 바다로 돌려보냅니다.

러미 아일랜드 와일드 어업 협동조합(Lummi Island Wild)라일리 스타크스(Riley Starks)는 이 방식을 연어와 바다에 가장 예의를 갖춘 어업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리프넷이 첨단 장비가 아니라, 연어의 이동 경로와 바닷물의 흐름, 지형을 오랜 시간 관찰해온 토착민들의 지혜에서 비롯된 방식임을 강조하고 있어요. 지금은 태양광으로 그물을 움직이고 최소한의 연료로 조업하기 때문에 혼획률은 사실상 0에 가깝습니다. 파타고니아가 이 방식을 선택한 이유는 어업이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아니라 생태계를 회복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제품은 ‘맛있는 연어를 더 많이 먹기 위해’가 아니라, ‘연어를 먹는다면 연어가 어떤 방식으로 포획되는지 관심을 갖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획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켄자 맥주 ⓒPatagonia Provisions
땅 속 깊이 뿌리내리는 컨자 ⓒPatagonia Provisions

연어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돌보면서 인간의 먹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의 대표적인 제품 중 하나가 바로 밀 대신 컨자(Kernza)로 만든 맥주입니다. 이 평범해 보이는 맥주는 사실 단순한 대체 곡물 실험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는 곧 농업의 미래이며, 농업이 직면한 핵심 문제는 생산량이 아니라 토양의 시간, 땅의 회복력, 생태의 지속성’이라는 통찰에서 시작되었어요. 컨자라는 이름부터 생소한 이 작물은 오늘날 농업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리는 중요한 해법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대부분의 맥주는 1년만 자라고 뿌리를 뽑아버리는 1년생 곡물로 만들어집니다. 밀, 보리, 호밀 등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요. 매년 경작과 수확을 반복하며 땅은 쉬지 못하고, 토양은 점점 얇아지며, 미생물과 영양분은 사라집니다. 산업형 농업은 땅을 ‘잠시 빌려 쓰는 방식’이 아니라, 땅의 시간을 빼앗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파타고니아는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습니다. 만약 곡물을 매년 뽑지 않고 몇 해 동안 그대로 두고 키울 수만 있다면 땅은 어떻게 달라질까?

그 질문의 답으로 등장한 작물이 바로 컨자(Kernza)입니다. 미국 토양 연구소(The Land Institute)에서 개발한 컨자는 다년생 밀의 한 종류로, 뿌리를 3m 이상 깊숙이 토양 속으로 내리는 게 특징인데요. 뿌리가 뽑히지 않으니 농부는 매년 경작 기계를 동원해 땅을 갈 필요가 없고, 토양이 압박되거나 유실되는 일도 줄어듭니다. 그 결과 땅은 스스로 회복할 시간을 갖게 되고, 토양 유기물의 양이 눈에 띄게 증가하며, 탄소를 땅속 깊숙이 저장하게 됩니다. 컨자는 스스로 토양을 붙잡아 침식을 막고 비료 없이도 자라면서도 주변 식생을 회복시키는 능력까지 갖고 있어요. 

미국 토양 연구소(The Land Institute)의 창립자이자 식물학자인 웨스 잭슨(Wes Jackson)은 컨자 개발을 이끈 인물인데요. 그는 컨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농업의 진짜 혁신은 새로운 기계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땅과 오래 함께 지낼 수 있는 식물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컨자를 개발하면서 던진 첫 질문은 ‘이 땅에는 원래 어떤 식물이 있었을까?’ 였어요. 켄자스에는 원래 초원이 있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 초원의 방식을 농사로 가져오기로 한 거죠. 농사는 풀을 자르는 일이 아니라, 풀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입니다.”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은 컨자를 단순히 새로운 식재료로 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컨자를 키우는 방식, 그리고 그 방식을 고수하는 농부의 태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는데요. 그래서 이 작물을 키우는 농부들을 찾아 캔자스, 미네소타, 몬태나, 워싱턴주 등을 직접 찾아 나섰고, 그들의 토양을 읽는 방식, 해마다 땅을 갈지 않는 농사, 비료 없이 키우는 농사, 생태계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관찰하면서 제품을 기획했습니다.

결국 파타고니아는 이 작물을 맥주와 연결했습니다. 맥주라는 가장 일상적인 식품 안에 토양과 기후, 농업과 생태 회복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충분히 강력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켄자 골든 에일(Kernza Golden Ale)’입니다. 

“음, 우선, 저희는 맛있는 맥주를 정말 좋아해요. 맥주는 결국 농산물이잖아요.”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의 제품들 ⓒLogan Watts and Joel Caldwell

버팔로 육포와 렌틸 파스타도 마찬가지로, 초원을 되살리는 방목 방식과 토양을 회복시키는 작물이라는 특성을 넘어 음식을 통해 생태가 스스로 회복될 수 있는 시스템을 지지한다는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 제품들이에요. 이 제품들은 서로 다른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는가?’ 라는 질문을 넘어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갈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요.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이 말하는 ‘지속가능한 식품’은 단지 환경친화적인 소비재를 만드는 기술이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각 지역이 오랫동안 지켜온 방식을 존중하면서, 농업과 어업, 축산업을 통해 사람과 땅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하나의 ‘로컬 생태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아마도 누군가는 소규모 농어촌에 대기업이 들어와 큰 규모로 생산하면 지역 경제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연구 결과는 이 관점에 쉽게 동의하지 않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모와 효율 중심의 접근 방식이 아니라, 땅이 회복될 수 있는 속도, 지역이 유지될 수 있는 시간, 삶이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다시 생각해보는 일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이상적인 목표를 세우는 데에 그치지 않고, 글로벌한 유통망과 비즈니스의 언어로 연결해 그 지역이 그 방식으로 다음 세대까지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한 실천적인 해결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합니다. 이것이 파타고니아가 생각하는 진짜 혁신이며, 사업의 역할이라고 믿고 있어요.

 

파타고니아와 함께하는 캠핑 ⓒLogan Watts and Joel Caldwell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것은, 파타고니아의 식품이 단지 ‘착해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굳건한 지지층을 가진 파타고니아라는 브랜드처럼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의 음식은 맛있고, 간편하고, 멋있고, 쿨합니다. 캠핑에서, 트레일에서, 사무실 책상 위에서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친근한 매력을 갖고 있어요.

웹사이트의 랜딩 페이지에는 각 식품의 원산지와 생산 방식, 그리고 그 제품이 해결하고자 하는 생태적 문제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습니다. 제품 상자에는 살아 있던 연어의 선화가 그려져 있어, 우리가 ‘살아 있었던 생명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환기시켜주고요. 패키지 안쪽에는 물고기, 땅, 사람, 소비가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작은 지도가 들어 있습니다.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의 공동 창업자이자 디렉터인 버지트 캐머런(Birgit Cameron)은 회사의 목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본이 내게 던진 질문은 ‘파타고니아다운 식품회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였어요. 우리는 사람들이 음식을 재배하고 만드는 방식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식품 비즈니스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의 목표는 기후를 우선시하면서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파타고니아 프로비전의 통조림 ⓒMike Falco

80대의 식물학자 웨스 잭슨은 파타고니아 프로비전 맥주에 들어가는 컨자 품종을 개발해온 과정을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만약 당신이 평생 안에 끝낼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너무 작은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 문장을 곱씹으며, 우리는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미래의 해결책은 과연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눈부신 첨단 기술들 역시 한순간에 발명된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경험과 관찰, 실패와 실험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현재형 미래 시제’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어떤 문제에 가장 적합한 해법은 많은 분야에 두루 쓰일 수 있는 거대한 기술이 아니라, 특정한 땅 위에서 사람과 자연이 오래 함께 지내며 단련해온 지역의 방식과 오래된 지혜의 힘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지혜를 가진 사람과 지역을, 그 지혜가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연결해주는 능력 — 바로 그 힘이야말로, 어쩌면 AI의 기술을 빌려서라도 다음 세대와 우리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큐레이션의 기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EVERY WEEK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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