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라는 단어는 본래의 의미와는 달리, 한때 비즈니스에서 유행처럼 번지면서 소비냐 공유냐를 가르는 이분법 속에서 소모되곤 했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과도기를 지나 공유라는 것이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생활을 위한 삶의 방식의 하나로 인식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넷플릭스 계정을 나누어 쓰는 것처럼, 머지않아 우리는 이웃들과 가정용 인공지능 로봇을 함께 쓰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거창한 기부나 봉사활동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물건과 공간, 시간을 주고받으면서 ‘나누는 감각’을 다듬어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나눔의 대상을 가족과 친구들을 넘어서 함께 살아가야 할 환경- 자연과 도시로 확장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동네도 조금은 다른 풍경으로 바뀌게 되지 않을까요?
이번 주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공유의 가치를 제안하는 벨기에의 복합공간 ‘델파브리크(Deelfabriek)’를 소개합니다.
벨기에 플란데런 지역 코트레이크(Kortrijk)시에 위치한 델파브리크(Deelfabriek)는 1940년에 건설된 옛 소방서 건물을 리노베이션해서 탄생한 커뮤니티 센터입니다. 2023년에 문을 연 델파브리크는 네덜란드어로 ‘공유 공장’이라는 뜻인데요. 이름에 걸맞게 시민들이 물품을 교환, 대여, 수리, 재분배하며 서로 교류할 수 있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복합 공간입니다.
무언가를 나누기 위해서는 우선 모여야하겠죠! 그래서 델파브리크의 핵심 기획 의도는 ‘한 곳에 모두 모은다’로 요약됩니다.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거나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공유·나눔 사업에 관련된 시민 이니셔티브들을 한 공간에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내고, 공간이 부족해서 참여하지 못했던 프로젝트까지 수용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공유 플랫폼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로써 시민들은 한 장소에서 다각적인 서비스를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참여 단체들은 서로 협력하며 서로의 역량을 강화할 수 있게 됩니다. 말 그대로 연대·자립·지속가능성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는 공장’인 셈인데요. 이에 대해 부시장인 필립 드 코엔(Philippe De Coene)은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델파브리크는 그 어느 때보다 가난한 사람부터 부유한 사람까지 다양한 관심사와 전문 분야를 가진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델파브리크는 지역 사회와 도시의 모습을 반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배우고, 교류하고, 공유하는 공간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든, 재활용을 믿기 때문이든 말입니다.”
델파브리크의 출발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코트레이크 시는 도시 차원에서 빈곤 문제 해결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추구하기 위해, 인근 지역에에 작은 공간을 마련하여 시민 공유경제 프로젝트를 시범 운영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바로 델파브리크의 전신으로, 취약계층 가정을 지원하기 위해서 몇몇 자발적 시민 모임들이 모여 옷과 물품을 교환하거나 수리해주는 활동으로 시작되었는데요. ‘필요한 물품은 빌리고 나누며, 그냥 버려지는 자원을 활용하여 모두에게 이득이 되게 하자’라는, 공유와 나눔을 소유의 대안으로 삼는 철학 아래에서 운영되었습니다.
운영 초기부터 이 공유센터는 큰 호응을 얻어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2년차인 2019년에 이미 등록 회원 1,500명, 누적 방문자 5,500명 이상을 기록면서 기존에 사용하던 공간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는데요. 참여를 원하는 시민 단체와 이웃들이 늘어나고, 제공되는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보다 큰 공간과 체계적인 지원의 필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도심에 오래도록 방치되어 온 옛 소방서 건물을 재활용할 기회가 생기면서, 이 역사적 건물을 공유경제의 거점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델파브리크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입니다.
델파브리크는 2003년에 보호 문화재로 지정된 수직 소방 호스 건조탑을 포함하는 원래 건물의 특징적인 요소를 보존함과 동시에, 내부 공간을 현대적인 사용에 맞게 개조했습니다. 내부에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공간들이 갖추어져 있는데요. 주민 모임과 이벤트가 열리는 소셜 레스토랑 미니-보르크(Mini-VORK), 옛 소방차 차고 공간들을 활용한 공유 프로그램 공간들, 건물의 높은 탑에 설치한 암벽 등반 시설 클림 옵 마트(Klim op Maat), 탑 꼭대기에 설치된 오스트리아 예술가 산드라 E. 블라터러(Sandra E. Blatterer)의 조명 예술작품 ‘THERE’S SOMETHING IN THE AIR’ 까지. 이 밖에도 소규모 회의실과 상담실 등이 마련되어 있어, 주민 모임이나 사회복지 상담 등의 용도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기능이 복잡하게 섞여 있는 공간을 유기적으로 풀어낸 디자인의 완성도도 눈여겨볼만 합니다. 특히 어디부터 새로 만든 부분인지 알아채기 어려울 정도로 기존의 건물과 새로운 공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세심함이 돋보이는데요. 이에 대해 델파브리크를 설계한 건축사사무소 ATAMA(Atelier for Transformative Architecture & Masterplanning)의 공동대표 브람 아르츠(Bram Aerts)는 NAV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건물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써 내려가는 것이 매우 보람 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가치 있다면 보존하려고 노력합니다. 건물에 특정한 특징을 부여하려는 야망은 전혀 없습니다. 기존 건물과 싸우는 것은 거부합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입니다. 이는 우리가 사실상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훈련된 눈만이 옛것이 끝나고 새것이 시작되는 곳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독특한 공간 구성만큼이나 델파브리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18개의 공유 프로그램은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교환-대여-수리-재분배-교류로 이어지는 공유의 순환 체계를 기반으로, 실제로 생활에 필요한 세부 항목들로 나누어서 구성되어 있는데요. 지역에 화재가 났을 때에 지체없이 달려가는 소방차의 차고 공간을 리모델링해서 지역의 유휴 자원이 모이는 공유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1. 교환 분야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가져오면 필요한 다른 물품으로 바꿀 수 있는 교환 상점들이 운영됩니다.
2. 공유(대여) 분야
라이브러리형 대여 서비스를 통해 각 가정이 가끔씩만 사용하는 물품들을 함께 소유하는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3. 수리 분야
고장난 물건을 수리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4. 재분배 분야
사회적 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물자 재분배 서비스를 운영합니다.
5. 교류 및 공동체 활성화 분야
물품 나눔 이외에도 주민들 간 소통과 역량 강화를 위해 센터 내 만남 공간에서는 정기적으로 워크숍, 교육, 이벤트가 열리고 있습니다.
델파브리크는 누가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요?
델파브리크는 초기 구축 단계에서는 공공 재정투자로 마련되고, 운영 단계에서는 시 예산과 소규모 자체 수입, 민간 기부 등으로 꾸려지는 구조입니다. 리노베이션 및 인프라 구축을 포함한 초기 투자비용은 코트레이크(Kortrijk) 시를 포함한 공공 부문의 다양한 재원에서 충당되었습니다. 총 투자비는 약 625만 유로로, 이 중 60% 가량(약 385만 유로)을 코트레이크 시 자체 예산에서 투입하였고 나머지 40% 정도(약 240만 유로)는 상위 정부 및 EU에서 지원받았습니다. 여러 공공 부문의 협조로 분산 투자가 이루어졌기에 시 재정 부담도 완화되었고, EU 기금을 활용하여 국제적인 모범사례로서 위상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복합적 펀딩 방식은 델파브리크의 공공성을 담보하면서도 재정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고 있는데요. 현재 EU와 정부의 추가 지원 없이도 시와 지역사회 힘만으로 굴러갈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 운영궤도에 올라섰습니다.
재정적인 부분과 마찬가지로, 운영에 있어서도 코트레이크 시 당국이 주도하고 여러 파트너가 협력하는 형태로 운영됩니다. 프로젝트 소유 및 총괄은 코트레이크 시청(Stad Kortrijk) 산하에 있으며, 시는 건물 관리와 행정 지원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특히 코트레이크 공공사회복지센터(Openbaar Centrum voor Maatschappelijk Welzijn, OCMW / Public Centre for Social Welfare, PCSW)는 델파브리크 운영에 긴밀히 참여하는 주요 공공기관 파트너인데요. OCMW는 취약계층 발굴과 지원이라는 공통 목표를 갖고 시와 공동으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며, 예산 확보와 프로그램 설계 단계에서부터 주도적 역할을 했습니다. 현재 델파브리크 내의 일자리체험 프로그램과 가족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델파브리크의 운영 조직에는 시를 중심으로 공식·비공식으로 연결된 여러 사회적 경제 조직과 비영리 단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델파브리크 내의 식당 미니 보르크(Mini-VORK)는 코트레이크 시의 로컬 음식점인 보르크(VORK)에서 운영하는데요. 보르크는 원래 요리훈련과 저렴한 식사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델파브리크에 작은 분점을 열어 방문객들에게 건강한 식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지역 환경 NGO는 정기적으로 식물 모종 교환행사를 열고, 지역 도서관은 책 교환 코너와 오디오북 녹음실 운영을 돕고 있습니다.
이렇듯 운영 주체들이 각자 전문성에 따라 역할 분담을 하고 시가 이를 아우르면서 필요한 자원을 배분하는 구조를 통해, 공공과 시민사회가 동반자 관계를 맺어 서비스를 공동 생산하는 사례로, 지역사회 중심의 지속가능한 운영 방식을 보여준다는 데에 의의가 있습니다.
델파브리크에서의 나눔은 ‘누군가를 돕는다’는 일방적인 구조가 아니라, 서로 빌리고 돌려주며 함께 책임지는 공동의 울타리인 셈인데요.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은, 언젠가 자신이 쓰지 않는 것을 다시 내놓을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렇게 순환하는 흐름 속에서 개인의 경제적 부담은 줄고, 물건의 수명은 길어지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는 동네라는 물리적인 연결 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간다’는 느슨하지만 의미 있는 마음의 끈으로 연결됩니다.
지구 반대편의 이 작은 공간은 우리에게 소유의 안전함에 머무를 것인지, 아니면 공유의 불확실성 속에서 더 풍요로운 삶을 모색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우리가 사는 집에서 무엇을 조금 더 나눌 수 있을지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