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은 음식을 준비하는 기능적인 공간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실보다 덜 공식적이고, 침실보다 공식적인 대화가 일어나는 완충 영역이자 전통적인 사회적 역할의 변화를 그대로 수용하는 시험대이며, 인류의 생존에 필요한 음식을 하나의 문화로 승화시킨 장소임과 동시에 상하수도나 가스, 전기와 같은 문명의 존재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 접시에 담긴 음식은 단순히 미각을 즐겁게 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깊은 상호작용의 산물임을 일깨워줍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조화로 이뤄지듯,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음식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반영하는 하나의 작품이 아닐까요?
이번 주에는 주방이라는 공간을 재정의하고, 음식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계를 제안하는 트랜스스피시스 키친(Transspieces Kitchen)을 소개합니다.
요리의 탈탄소화를 실현한 주방인 트랜스스피시스 키친(이하 TS 키친)은 2022년 탈린 건축 비엔날레에서 처음 시작되어, 2024년 여름부터는 벨기에 앤트워프에 위치한 미들하임 미술관의 정원에서 정식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뉴욕과 마드리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회사 OFFPOLINN(Office for Political Innovation)가 2001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식문화를 생태정치적 관점에서 조사하기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TS 키친에는 전기와 가스 설비가 없습니다. 모든 요리 과정은 박테리아와 균류를 활용한 발효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인데요.
TS 키친을 기획한 안드레스 자크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주방은 물리적인 것보다 생태적이고 정치적입니다. 주방은 집단 생활의 영역이며, 개인 생활의 불가능성에 대한 증거입니다.
이 주방은 신진대사가 독립적인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집단적 창자로 작동합니다. 신진대사는 인간 이상의 동맹에 의존하는 집단적으로 구성된 과정입니다. 서로 다른 생명체 간의 동맹인 셈이지요.”
TS 키친의 주된 목적은 인간과 다른 생명체들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접하지 않던 생물들과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이를 요리라는 행위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입니다.
예를 들어, 곤충 요리를 시도하는 워크숍에서는 우리가 자연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새롭게 조명합니다. 곤충을 먹는 행위는 단순한 미식적 실험이 아니라, 자연과 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경험입니다. 이는 곧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대화를 여는 행위로 이어집니다.
곤충 요리를 접하는 순간은 마치 다른 문화권의 새로운 음식을 처음 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낯설지만, 그 낯섦 속에 깃든 호기심과 신비로움이 우리의 시야를 넓혀줍니다. ‘자연을 먹는다’라는 비유가 어색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 경험은 우리가 자연을 더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게 만드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가 식탁 위에서 선택하는 작은 한 조각이 곧 자연과의 상호작용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주방은 단순한 조리 공간을 넘어 관계의 중심으로 변모합니다.
TS 키친에 사용된 대리석은 석재 회사 M-Marble Project와의 협업을 통해, 채석장에서 폐기된 석재를 사용해 제작되었는데요. 일반적으로 채석장에서 채굴된 돌의 30%만 산업적으로 사용되고 품질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나머지 석재는 폐기된다는 것에서 착안했습니다.
채석장에서 가져온 돌은 재료의 발효에 최적화된 형태로 최소한만 가공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5개의 구멍이 연결된 모양은 티벳의 승려들이 먹는 케피어(Kefir) 발효유를 만들기 위한 형태로 디자인된 것입니다.
TS 키친은 주방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식재료의 선택에서부터 조리 과정까지 우리가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TS 키친이 제안하는 지속가능한 식생활이란 단순히 생태계를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자연과 공생하는 방식을 찾는 과정입니다. 이를테면 TS 키친에서 사용되는 식재료는 곤충이나 야생 식물 같은 우리가 흔히 소비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 재료들은 단지 새로운 미식적 도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자원을 보다 책임감 있게 활용하는 방법을 보여줍니다. 마치 자연이 우리에게 다양한 음악적 악기를 제공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조화롭게 연주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죠.
TS 키친은 단순한 디자인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그것은 주방이라는 공간을 통해 인류가 자연과 맺는 복잡한 관계를 재조명하고, 그 안에서 보다 나은 공존을 모색하는 철학적 실험입니다. 그리고 그 실험은 매일 우리가 접시에 담는 그 작은 한 조각의 음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식탁 위의 한 끼는 우리가 자연과 맺는 지속적인 대화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이 대화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지는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자, 오늘은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