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밥은 편하지만, 기억에 남는 식사는 대부분 누군가와 함께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누군가의 집에서 함께 찌개를 끓여 먹거나, 여행지 골목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커피 한잔을 나누는 일처럼요. 한 그릇의 음식은 그렇게 순간을 함께 살아낸 기억이 되고, 낯설었던 사람과도 마음을 열게 만드는 자리가 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불 앞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일은 생존을 넘어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방식이었고, 온갖 먹거리가 넘쳐나는 지금의 시대에도 여전히 한 그릇의 식사에는 여전히 관계를 시작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주에는 사무실과 식당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레스토랑 사식당(社食堂)을 소개합니다.
‘사식당(社食堂, Shashokudo)’은 일본의 건축 스튜디오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가 2017년 4월 도쿄 시부야에 오픈한 독특한 복합공간입니다. 29년 된 주택 지하를 개조하여 만든 이곳은 건축사무소와 카페 겸 레스토랑이 하나로 융합된 장소인데요. 사식당이라는 이름은 ‘사원(社員)과 사회(社会)를 위한 식당(食堂)’이라는 뜻으로, 직원을 위한 구내 식당인 동시에 동네 주민에게 개방된 공공 식당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Suppose Design Office)는 타니지리 마코토(Tanijiri Makoto)와 요시다 아이(Yoshida Ai)가 공동으로 설립한 건축 스튜디오인데요. 낫어호텔(Not A Hotel), 오노미치 U2(Onomichi U2), 블루보틀 다이칸야마 등 디자인 업계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공간들을 디자인했습니다.
특히 공동창업자인 타니지리 마코토는 건축을 중심으로 여러가지 분야로 비즈니스를 확장하는 기업가이기도 한데요. 건축과 디자인을 전문으로 다루는 웹 미디어 ‘텍처 매거진(Tecture Magazine)’을 비롯해, 여행지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담은 주택 브랜드 ‘야도 하우스(Yado House)’, 자연과 결합된 복합체류시설을 통해 지역을 브랜딩하는 회사 ‘다이치(Daichi)’,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의 가치를 담아 부동산 개발의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절경부동산(絶景不動産, Zekkei Properties)’과 현대 기술을 활용해 토지의 미래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미에텔(Mietell)’까지. 단순히 영역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 뿐만 아니라, 고객의 관점에서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가치를 참신한 기획으로 풀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입니다.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는 분야에 상관없이 늘 ‘왜 당연히 그래야하지?’ 라는 의문들에 정면으로 도전해왔습니다. 타지니리 마코토는 ‘건축가인 동시에 기업가’라는 벤처 정신으로 기존 관습을 혁신하려는 태도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좋은 것은 계승하되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가능성은 적극 수용해야 합니다. ‘레스토랑은 이래야 한다’는 틀에 갇힌 사람은 결코 새로운 레스토랑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항상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눈을 돌려야 발전할 수 있어요.”
사식당 프로젝트도 건축 업계의 전통적인 업무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건축 스튜디오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야근과 과로, 편의점 도시락이나 인스턴트 음식에 의존하는 생활로 건강을 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타지니리와 요시다는 바쁜 직원들이 즉석 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다 건강을 잃지 않도록, 몸에 좋은 것을 먹게 해주고 싶다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동시에 직원이 아닌 사람도 부담 없이 사무실에 와서, 우리가 하는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볼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아이디어도 이전부터 꾸준히 제시되고 있었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직원들이 함께 식사할 기회가 확연히 줄어들었다는 이야기가 사식당을 본격적으로 오픈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소수 인원이 자연스럽게 같이 점심과 저녁을 먹으면서 일과 무관한 대화도 나누고 편안하게 소통이 이루어졌지만, 직원 수가 늘어나면서 모두가 한 식당에 모이기 어렵고 예약이나 일정 조율에 번거로움이 생겼습니다. 타지니리와 요시다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차라리 오피스 안에 식당을 만들어버리자’
결론적으로 사식당이라는 이름처럼 ‘직원과 사회의 건강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핵심적인 기획 의도가 되었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일하는 것인데 정작 직원들이 소모되고 불행해진다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맛있는 식사와 쾌적한 작업환경으로 팀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선순환을 만들고자 했는데요. 건강한 식사가 건강한 세포를 만들고, 건강한 세포가 건강한 사고를 디자인한다는 철학 아래, 회사 내부에 식당을 들여와 직원들의 식생활을 개선하고 업무 효율과 창의력을 높이는 것이 사식당의 목표입니다.
동시에 이 실험적인 공간을 통해 ‘우리 회사는 이런 생각으로 이렇게 일한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명확히 드러내는 것도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다시 말해 사식당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의 포트폴리오이자 매니페스토 역할을 하는 공간인 셈인데요. 젊은 사람들이 근무 환경과 조직 문화에도 눈을 돌리는 시대에, 회사가 추구하는 바를 공간으로 보여줌으로써 업계 인재들에게도 어필하고자 했습니다.
사식당은 풀타임 셰프와 바리스타, 스태프들에 의해 실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타니지리의 지인이 메인 셰프로 합류했고, 공모를 통해 고용된 직원들이 주방과 홀을 맡고 있습니다. 평일 낮에는 주변 직장인들과 주민들이 점심을 먹으러 오고, 저녁에는 간단한 주류도 즐길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의 공간입니다.
대표 메뉴는 매일 바뀌는 정식으로, 신선한 제철 재료를 활용한 건강한 가정식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합니다. 직원들과 손님들의 영양을 고려해서 메뉴 구성에는 항상 야채 위주의 균형 잡힌 요리를 넣는 것이 원칙인데요. 예를 들면 고기와 생선 중 선택할 수 있는 일일 정식에는 세 가지 반찬과 밥, 국이 함께 나오는 식입니다. 이러한 식단은 직원들이 바쁜 업무 중에도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 먹으며 건강을 유지하도록 돕는 동시에, 지역 주민들에게도 집밥 같은 영양식을 제공한다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한편 대형 책장 옆에는 핸드드립 커피 스탠드가 있어, 스페셜티 원두로 내린 향긋한 커피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원두는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가 사식당으로 본사를 옮기기 전에 위치하고 있었던 히로시마 미야지마 지역의 유명 로스터리와 협업해 만든 “Suppose Coffee” 블렌드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온라인을 통해서 시그니처 원두 뿐만 아니라 사식당의 메뉴로 만든 밀키트, 요리에 사용되는 식재료도 판매하고 있습니다.
사식당의 공간은 사무실과 식당을 철저히 구분하지 않고 섞여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직원 전용 구역에 ‘출입 금지’ 딱지가 붙어있는 딱딱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데요. 오히려 일반 손님들 옆에서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점심을 먹고, 동료나 협력사가 바로 옆 테이블에서 도면을 펼쳐두고 미팅을 진행하는 풍경이 펼쳐집니다. 실제로 ‘외부인이 있어 식사 소리, 커피 향이 나는 편이 오히려 딱딱한 오피스보다 출근이 즐거워진다’는 직원들의 반응이 있었다고 합니다.
중심에는 사각 형태로 배치된 대형 아일랜드 키친이 있어 쉐프와 직원들이 음식을 준비합니다. 이 주방을 경계로 입구 측 앞부분에는 식당 좌석과 카페 테이블, 서점과 갤러리, 물품 판매 공간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벽 한 면을 가득 채운 대형 책장에는 건축계 큐레이터 하바 요시타카(幅允孝, Haba Yoshitaka)가 선별한 건축 서적부터 잡지, 동화책까지 폭넓은 분야의 책들이 꽂혀 있습니다. 손님들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좌석으로 가져가 볼 수 있고, 책장 너머 벽에는 사진작가 와카기 신고(若木信吾, Wakagi Shingo)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에서 자체 개발한 가구나 제품도 비치되어 있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식당은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의 다른 사업과 커뮤니티 활동의 거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 공간에는 앞서 소개한 신사업 중 하나인 ‘절경부동산(絶景不動産)’의 사무실과 사진작가 와카기 신고의 크리에이티브 오피스 ‘영트리 프레스(Youngtree Press)’도 이곳에 함께 있는데요. 한편으로 일반 손님을 위한 이벤트나 워크숍, 전시도 활발히 열고 있습니다. 출판사 북 페어, 현지 식재료 생산자를 초청한 팝업 마켓, 지역 예술인의 소규모 전시회 등이 열리는 동네의 문화 플랫폼으로도 기능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유명 드라마나 매체의 촬영지로 쓰이며 대중에게 알려지기도 했는데, 인기 드라마「고독한 미식가」의 에피소드 촬영지로 등장하여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식당을 매개로 지역 사회 주민, 타 업계 크리에이터, 방문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교류하는 것이 사식당이 추구하는 중요한 사회적 역할이기도 합니다.
사식당은 지역 사회와 관계 맺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무실이 빌딩의 위층에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길가에 면한 반지하 공간을 밝은 식당으로 꾸며 이웃들에게 여는 것만으로도, 동네 주민들이 직원들을 친숙하게 느끼고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브루투스(Brutus) 매거진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사식당이라는 열린 공간으로 인해, 회사 내부 뿐만아니라 거리와의 관계도 확실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음식에서부터 일하는 방식, 지역 사회와의 접점까지 사식당의 틀은 확장되고 있다”
다시말해, 일하는 공간과 지역이 경계없이 어우러지는 새로운 모델이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2017년에 사식당이 오픈한 후에 2018년 가마쿠라시에 지역 직장인을 위한 ‘거리의 직원 식당(まちの社員食堂)’이 문을 여는 등 커뮤니티형 식당에 대한 아이디어가 일본 각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사식당이 이러한 흐름에 직접 영향을 주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직원과 사회 모두를 위한 식당’이라는 컨셉은 현대 일본 사회에서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타니지리와 요시다는 업무와 생활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동거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전망하며, 앞으로도 사식당과 같은 실험을 계속하고자 합니다. 직원들이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하는 모습에서 출발한 이 공간은 어느새 회사 안팎의 사람들을 잇는 식탁이 되었습니다. 한 그릇의 식사가 만든 여유는 긴장감이 낮은 분위기를 만들고, 도시의 고립된 관계에 작지만 분명한 균열을 냅니다. 말 대신 식사를 건네는 방식으로 말이죠.
오늘은 누구와 식탁을 나누고 싶나요?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