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

 

종종 브랜드를 소개하는 글에서 ‘~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과 같은 표현을 발견하곤 합니다. 특정한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브랜드의 매장이 위치하고 있다거나, 지역의 지명이나 상징을 활용한 제품을 생산한다면 그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떤 방식이든 사람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더 나아가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지자체와 주민 모두에게 지지를 받는, 진정으로 지역을 기반으로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번 주에는 호주 브리즈번의 피쉬 레인(Fish Lane) 지역의 변화와 그 중심에 있는 아리아 그룹(Aria Group)의 이야기를 통해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비즈니스를 탐구합니다.  

피쉬 레인 ⓒ DAVID CHATFIELD

 

피쉬 레인(Fish Lane)은 호주 브리즈번의 남부에 위치한 작은 골목입니다. 과거에는 탄산수 제조 공장이 있어서 소다 레인(Soda Water Lane)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공장이 폐업하면서 소다 레인이라는 이름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후 브리즈번의 성장과 함께 사우스 브리즈번(South Brisbane)이 현지 어업 산업의 중심지로 변화하면서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습니다. 어부들은 인근 항구에서 잡은 물고기를 시장으로 운반하기 위한 최적의 경로로 이 골목을 이용했습니다. 1906년에 정식으로 등록된 피쉬 레인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1988년 호주 건국 200주년을 기념해 브리즈번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World Expo)는 도시 전체를 송두리째 바꿔 놓기에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흥행이 지나간 도시는 텅 비어버렸습니다. 강에 인접한 지역에 설치되었던 전시장 부지에는 거대한 공원과 예술-문화 시설이 들어섰지만,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인프라도 부족하고 동네에서 접근하기도 어려워 주민들도 이용하지 않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자연스레 인접한 피쉬 레인 지역도 점점 낙후되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 브리즈번 시의회는 피쉬 레인에 대한 첫 번째 개발 계획을 의뢰하여 중심 업무 지구(CBD)와 문화 구역(Cultural Precinct)을 연결하는 핵심 지역으로서의 잠재력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시의 의지만으로 모든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에, 피쉬 레인의 개발은 오랜 기간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피쉬 레인 지역의 변화에 비로소 불을 붙인 건 아리아 그룹(Aria Group)이었습니다. 아리아 그룹의 창업자인 팀 포레스터(Tim Forrester)는 부동산 경제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2003년에 학교 동창들과 함께 아리아를 설립하고 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자신의 고향인 호주에서 리조트와 주택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성했습니다. 

에덴 레인 ⓒ SCOTT BURROWS PHOTOGRAPHER
에덴 레인 ⓒ SCOTT BURROWS PHOTOGRAPHER

아리아의 포트폴리오에는 주목할만한 몇 가지 전환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2010년에 글로벌 브랜드 에르메스(Hermes)를 직접 유치한 것인데요. 이를 계기로 주변의 거리가 활기를 띄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개발한 부동산의 자산 가치가 상승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 아리아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건물의 하드웨어 뿐만 아니라 건물을 애정하는 사람들과 브랜드들이 모여 거리의 고유한 분위기를 만들고, 더 나아가 건물이 들어선 동네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장기적으로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두 번째 전환점은 4단계에 걸쳐 4개의 블럭을 함께 개발하는 에덴 레인(Eden Lane) 프로젝트입니다. 주거와 업무 공간, 여러 개의 상점들로 이루어진 작은 단지를 만드는 프로젝트인데, 핵심은 모든 블럭을 가로지르는 골목길인 에덴 레인웨이(Eden Laneway)입니다. 자칫 삭막하고 어두컴컴한 뒷골목처럼 느껴질 수 있는 공간이지만, 아리아 그룹은 사람들이 늘 지나다니는 골목길의 잠재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답답한 담장을 가릴 풍성한 나무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길을 밝히는 조명, 누구나 앉을 수 있는 화단과 상점의 테라스가 어우러진 활기찬 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전환점이 바로 피쉬 레인(Fish Lane) 프로젝트입니다. 전신격인 에덴 레인 프로젝트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서, 도시의 버려진 유휴 공간을 중심으로 의미 있는 장소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피쉬 레인 타운 스퀘어 ⓒRichards & Spence

아리아 그룹의 피쉬 레인 프로젝트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적인 콘텐츠, 여러가지 콘텐츠를 담는 그릇의 역할을 하는 플랫폼, 그리고 콘텐츠와 플랫폼을 하나로 연결하는 서비스가 그것입니다.

콘텐츠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동네에서 사람들이 자주 찾고 오랜 시간 머무르는 장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와 식물, 눈치 보지 않고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의자, 산책하기 좋은 골목길과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거리 예술과 공연, 적절한 가격의 커피와 제법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과 아기자기한 상점들. 이런 요소들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리아 그룹은 콘텐츠를 직접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콘텐츠를 직접 만들 수는 없겠지만, 역설적으로 매력적인 콘텐츠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매력적인 콘텐츠가 먼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먼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던 고가 도로의 밑을 ‘피쉬 레인 타운 스퀘어(Fish Lane Town Square)’라는 일종의 공원으로 바꾸었습니다. 주차장을 모두 걷어내고, 호주 토착 식물들로 가득 채워진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공원의 한가운데에서 노상 점포처럼 편하게 들를 수 있는 ‘키키 키오스크(Kiki Kiosk)’를 직접 운영합니다. 출근길에 필요한 커피부터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샌드위치와 퇴근 후에 즐길 수 있는 칵테일까지, 가볍지만 넓은 범위의 메뉴를 다루고 있습니다. 공원을 둘러싼 상점들의 건물도 직접 개발하여, 직접 투자하거나 운영하는 레스토랑들과 와인바를 입점시켰습니다. 상점이 들어선 골목길의 담벼락과 건물 사이의 공간들은 지역 예술가와 협업한 작품들로 채우고, 주변의 상점들과 크리에이터들이 모이는 마켓과 페스티벌도 정기적으로 개최합니다. 

키키 키오스크 ⓒ SCOTT BURROWS PHOTOGRAPHER
키키 키오스크 ⓒ Markus Ravik
브루터스 바ⓒ Markus Ravik
브루터스 바ⓒ Markus Ravik
피쉬 레인 마켓 2022 ⓒ Fish Lane

스튜디오 블랑드(Studio Bland)가 주도한 브랜드 디자인과 비주얼 아이덴티티도 흥미롭습니다. 단순한 사각 형태를 기본으로, 공원의 벤치와 입간판 뿐만 아니라 상점의 개성을 담은 사이니지를 모두 아우르는 디자인 시스템을 구상했습니다. 거리의 바닥은 실용적인 정보과 더불어 지역의 역사를 새긴 돌로 장식했습니다. 

피쉬 레인 타운 스퀘어의 사이니지 ⓒ David Chatfield
상점의 간판 ⓒ David Chatfield
상점의 간판 ⓒ David Chatfield
타운 스퀘어의 사이니지 ⓒ David Chatfield
타운 스퀘어의 사이니지 ⓒ David Chatfield
하역장 사이니지 ⓒ David Chatfield
피쉬 레인의 역사가 새겨진 바닥 ⓒ David Chatfield

다채로운 콘텐츠 만큼이나 콘텐츠가 모인 플랫폼의 역할을 하는 공간과 건물 자체도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부동산 개발을 업으로 하는 아리아 그룹에게는 건물과 토지가 주요한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직접 개발하고 운영하는 브랜드, 그러니까 일종의 소프트웨어에 최적화된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관점으로 공간을 기획했습니다. 애플의 생태계를 빗대어 이해한다면, iOS를 구동하기에 최적화된 제품을 만들고, 제품군 사이의 상호작용과 시너지를 고민한 것입니다. 피쉬 레인 주변에 상가와 주거 단지를 함께 개발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아리아 그룹은 동네의 광장 역할을 하는 피쉬 레인 타운 스퀘어를 중심으로, 상점과 사무실이 들어선 건물과 20층 높이의 고급 주택인 멜버른 레지던스(The Melbourne Residence)를 함께 개발했습니다. 타운 스퀘어와 상점 건물의 설계는 호주의 건축가 리처즈 앤 스펜스(Richards & Spence)가 맡았습니다. 주변 건물에서 흔하게 사용된 벽돌을 아치 형태의 디자인 요소와 결합해서 피쉬 레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건축을 만들어냈습니다. 타운 스퀘어에 사용된 재료와 동일한 마감 재료를 사용하고, 필요에 따라 완전히 열릴 수 있는 큰 창문을 만들어 공원과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멜버른 레지던스는 20층 높이의 120세대로 구성된 고급 주거의 형태로 개발되었습니다. 브리즈번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 옥상의 수영장과 집의 거실에 연결된 야외 테라스가 인상적입니다.  피쉬 레인에서 도보로 3분 거리에 위치한 옆 블럭에 위치하고 있고, 1층에 위치한 상점들 역시 아리아 그룹이 직접 개발한 아시아 음식점, 브런치 카페, 와인 상점과 젤라또 가게로 채워졌습니다. 피쉬 레인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 길은 아리아 그룹의 F&B 브랜드가 늘어선 자신만의 거리인 셈입니다. 

피쉬 레인의 상점 ⓒ DAVID CHATFIELD
피쉬 레인의 상점 ⓒ Aria Property Group
멜버른 레지던스의 수영장 ⓒ Aria Property Group
멜버른 레지던스 1층에 위치한 젤라또 상점 ⓒ Dale Harper

피쉬 레인 프로젝트를 계기로 아리아 그룹은 주거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자산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고객들과의 소통을 위한 서비스인 아리아 리빙(Aria Living)을 런칭했습니다. 지금은 아리아 그룹이 개발한 24개의 레지던스를 중개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머지 않아 아리아 그룹의 콘텐츠와 플랫폼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리아 그룹은 피쉬 레인과 에덴 레인을 중심으로 거의 모든 카테고리의 F&B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호주와 브리즈번 곳곳에 요가, 피트니스, 명상 센터도 개발해 운영하고 있어요. 주거 서비스의 일환으로 식단과 운동을 포함하는 양질의 개인 맞춤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리아 그룹의 이야기를 토대로 처음의 질문을 떠올려봅시다.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아리아 그룹의 방식이 정답은 아닐 수는 있지만 적어도 동네의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길에 이름을 부여하는 일이라는 측면에서 무수한 -로수길의 등장과 유사한 측면도 있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리아 그룹은 ‘한번 가보고 싶은 거리’가 아니라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상점이나 주거 시설만큼 골목길과 공원을 공들여 만드는 이유입니다. 우리 동네에 자랑거리가 될 만한 멋진 공원과 근사한 식당을 만들고, 마켓과 축제를 열어 멀리서도 사람들을 끌어와 동네에 활기를 가져오고, 일상적인 삶의 질과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열심인 브랜드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나요?

 





EVERY WEEK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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