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딩이 하나의 업태로 자리 잡으면서 브랜딩에 대한 정의와 브랜드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논의도 다양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브랜딩이라는 용어가 내포하고 있는 전제는 브랜드를 일련의 생산활동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어떤 대상을 ‘브랜딩 한다’고 가정하면, 언제부터 그것을 브랜드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브랜드는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삶의 방식부터 조직의 철학, 제품과 비즈니스가 표출되는 방식과 이면의 구조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무엇보다 소비자와 사용자 그리고 그들이 속한 사회 혹은 커뮤니티의 인식이 브랜드를 구축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때로는 사람들의 생활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일들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여 지역에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기도 합니다. 이번주에 소개하는 동네의 이야기는 ‘눌라보 링크(Nullarbor Links)’ 입니다.
서호주와 남호주를 잇는 에어 하이웨이(Eyre Highway)는 호주에서 가장 긴 직선 구간을 가진 고속도로입니다. 유럽의 탐험가 에드워드 존 에어(Edward John Eyre)의 이름을 따서 1941년에 건설되었습니다. 전체 길이는 1,600킬로미터에 이르고, 직선의 도로를 따라 똑같은 풍경이 수백킬로미터씩 이어지는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장 많은 사고가 발생하는 악명높은 도로 중 하나입니다.
데스 밸리(Death Valley)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위험한 도로임에도 불구하고, 해안가를 따라 호주 서부와 남부를 최단 거리로 잇는 주요한 고속도로라는 특성상 화물 운송 차량의 통행량이 많아 사고 건수가 줄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에어 하이웨이가 관통하는 지역은 끝없는 오지의 풍경이 펼쳐지는 천혜의 자연인 아웃백(Outback) 지역이어서 이렇다할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트럭 기사들이 쉬어갈 수 있는 커피 하우스와 작은 호텔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대규모 리조트나 관광지를 조성하는 것도 일반적인 관광객의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져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2004년, 도로변의 호텔을 운영하는 밥 본지오르노 (Bob Bongiorno)와 에어 하이웨이 운영자 협회의 알프 카푸토(Alf Caputo)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작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고속도로를 따라 펼쳐진 평원에 골프 코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운전자들이 꼭 커피를 마시거나 하룻밤 묵지 않더라도 잠깐 차를 세워 놓고 몸을 풀면서 졸음을 쫓을 수 있는 소일거리를 제공하자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과적으로 파 72에 18홀 규격의 골프 코스가 완성되었습니다. 코스 사이의 거리가 워낙 멀어 전체 코스의 길이가 1,365킬로미터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긴 골프장이 된 것입니다.
눌라보 링크는 세련된 클럽하우스에서 출발해, 잘 다려진 골프웨어를 입고 잔디 위를 여유롭게 산보하며 즐기는 전통적인 골프 코스와는 정반대의 경험을 선사합니다. 모래가 섞인 거친 바람과 불규칙한 지형,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캥거루와 오소리를 상대하며 로드 트립과 함께 즐기는 골프 코스는, 항상 새로운 경험에 목말라 있는 탐험가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지만 눌라보 링크의 모든 코스를 통과하는 것을 일종의 시험으로 받아들이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도로변의 모텔과 주유소들이 골프 코스의 거점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모이는 활발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각 코스의 이름은 고속도로를 따라 놓여진 지역들의 지명과 역사에서 유래하고 있습니다. 지역 협회와 호주관광청의 협업으로, 스윙을 하며 밟고 있는 땅에 얽힌 과거를 읽어가는 독특한 방식으로 관광 상품의 기획을 전개합니다. 기후와 지형의 특징 뿐만 아니라, 손수 지역을 일궈온 사람과 장소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눌라보 링크에 속한 몇 개의 홀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Hole 5
1947년에 눌라보 지역으로 이사한 코랄와 비티 가족은 원래 있던 목재 건물에 딩고(Dingo) 올가미와 고철을 덧대 작은 모텔을 시작했습니다. 휘발유, 담배, 비스킷, 사탕, 맑은 음료와 물을 판매하는 모텔의 별명을 딴 5번 홀의 이름은 ‘딩고의 은신처(Dingo’s Den)’ 입니다. 티 이름은 처음 모텔을 시작한 가족의 이름을 딴 ‘코랄 & 비티’ 입니다. 딩고를 덧댄 수수한 모텔은 여전히 트럭 운전자들의 아늑한 쉼터로 남아있습니다.
Hole 7
유클라 모텔에는 지역 주민들이 맥주를 마시러 즐겨 찾는 바가 있습니다. 1971년 어느 날, 바를 찾는 주민들 사이에 캥거루와 함께 사막을 내달리는 벌거벗은 처녀를 보았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친구와 가족들에게 전화로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했고, 지역의 미디어에 오르내리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제는 전세계에 눌라보의 요정으로 알려진 미지의 인물의 이름은 딴 7번 홀 ‘눌라보의 요정(Nullarbor Nymph)’ 입니다.
Hole 12
당시 서호주 최고의 아마추어 골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팻 프렌디빌(Pat Prendiville)은 돌연 1965년에 자신의 지위를 포기하고, 에어 하이웨이 근처의 작은 마을 발라도니아(Balladonia)의 현대화 사업에 참여합니다. 이후 45년간 모텔을 경영하며 지역을 개척해왔습니다. 그의 이름을 딴 티를 가진 12번 홀의 이름은 ‘스카이랩(Skylab)’ 인데, 팻이 모텔을 운영하며 겪은 에피소드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스카이랩은 미국 항공 우주국(NASA)가 1979년에 발사한 미국 최초의 우주 정거장으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는 임무를 완수한 스카이랩이 지구로 떨어지는 위치가 정확히 팻이 운영하던 발라도니아 모텔이라는 점을 다급하게 알렸습니다. 다행히 큰 피해는 없었지만, 지역을 순찰하던 어업 순찰관이 떨어진 잔해를 발견하고 NASA에 쓰레기 벌금 티켓을 발행했고, 결국 벌금은 면제되어 평화로운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동네를 오가며 일하는 트럭 운전수들의 안전과 주민들이 고속도로 변에 운영하는 작은 가게들을 살리기 위해 시작된 아이디어에서, 전세계의 사람들이 찾는 지역의 고유한 문화가 되기까지의 과정은 성패를 논하기 전에 계속해서 곱씹어 볼만한 것입니다. 자칫 구태의연할 수도 있는 동네의 과거를 발신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백과사전이나 박물관에서 볼 법한 정제된 이야기가 아니라 지역 내부의 사람들과 사건들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끄집어낸 어떤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붙여진 이름의 오래된 감성에서 느껴지는 진심도, 눌라보 링크의 비주류의 날 것에서 오는 매력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눌라보의 시작처럼, 건조한 일상에 가장 가까이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튀어 나올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