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하다못해 동네의 카페에 부러 몸을 앉히는 일에서도, 자신만의 범위를 벗어나서야 비로소 느슨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사람은 자신의 이익에 영향을 끼칠 만한 대상이 자신의 생활 반경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갖는다.

소위 님비(NIMBY)로 명명되는 현상은 이러한 거부감이 집단화되면서 표출된다. 님비의 대상이 되는 일련의 공간들은 일반적으로 동네의 토지 또는 주택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이 정당화된다. 문제는 혐오의 시선이 공간 자체가 아니라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맺혀 있다는 점이다. 비슷한 소득 범위, 의식 수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에서 얻어지는 가치를 다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펼쳐지는 일들에 양보하고 싶지 않은 본능이다.

하지만 저성장, 고령화, 양극화 그리고 도시의 고밀화가 지속됨에 따라서 사회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은 더 이상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취향이나 가치관의 문제를 벗어나고 있다. 이제는 다양한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 모여 사는 것을 전제로, 어떻게 지속가능한 공존의 방식을 만들어 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번 주에는 다양성의 사회의 상징과도 같은 동네의 장소 ‘디콘리 베타니안(Deaconry Bethanien)’ 을 소개한다.

디콘리 베타니안 ⓒ Pablo Casals Aguirre

개신교의 사회 사업(Social Work)을 의미하는 디아코니(Diakonie)는 유럽 전역에 걸쳐 사회적 약자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을 영위하고 있다. 특히 독일의 디아코니는 독일 내 비영리 민간복지재단 중 가장 큰 규모로, 복지 강국으로 평가받는 독일을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상징 중 하나다. 독일의 복지 시스템의 출발과 역사를 같이 하고 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1874년에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기반으로 시작한 디아코니 베타니안(Diakonie Bethanien, 이하 DB)은 1911년에 독립하여 스위스 취리히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DB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취리히에서 ‘현대의 집사’를 모토로 어린이 데이 케어, 아동 보호 및 부모 교육, 노인 요양 주택과 같은 사회 돌봄 서비스부터, 외식과 호텔 사업까지 전개하고 있다. 오랜 시간동안 여러 사업부가 사회와 취리히 시의 요구에 따라 개별적으로 확장하다 보니 취리히 전역에 걸쳐 파편화 되었다. 자연스레 데이 케어 센터는 어린이들, 노인 요양 주택은 노인들만을 위한 장소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이에 DB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간이 고립된 시설이 아니라 도시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다양한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거처를 찾기 시작했다. 2010년에 개인 클리닉을 매각한 자금으로 취리히 알트슈테텐(Altstetten) 지역의 부동산을 매입해 새로운 복합 공간을 기획하게 되었고, 2016년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집사들(Deaconry)을 위한 공간이라는 뜻의 디콘리 베타니안(Deaconry Bethanien)이 탄생했다.

디콘리 베타니안 ⓒ Pablo Casals Aguirre
디콘리 베타니안 ⓒ Pablo Casals Aguirre
디콘리 베타니안 ⓒ Pablo Casals Aguirre

DB는 디콘리 베타니안을 그들의 철학을 발신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다양한 문화를 위한 기반’이라는 개념을 구현하기 위해, 완전히 다른 성격의 공간들을 간결한 구조에 압축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열린 공간을 만들었다. 호텔, 레스토랑, 데이 케어 센터, 노인 요양 주택, 병원, 사무실, 회의실이 단일 건물 안에 모두 들어 있다. 모든 공간은 DB에서 보유하고 직접 운영한다. DB의 정신이 발현되는 오프라인 플랫폼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디콘리 베타니안의 로비 ⓒ Pablo Casals Aguirre

디콘리 베타니안에서 각기 다른 용도를 하나의 건물에서 기능하게 만드는 핵심은 수직적인 동선에 있다. 특히 각각의 용도에 맞는 방문객의 신체적, 정신적 특성이 상이한 경우에는 보다 높은 수준의 디자인을 요한다. 하지만 건물의 구성이 복잡해도 운영하는 주체가 하나라면 전제가 달라진다. 최소한의 디자인으로도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다. 디콘리 베타니안의 1층 로비는 건물을 관통하는 열린 통로와 같다. 걸음이 서툰 아이와 휠체어에 몸을 맡긴 노인,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 여행용 짐가방을 끄는 관광객 모두가 쉽게 오갈 수 있는 적당한 무심함이 있는 공간이다. 닫혀 있는 안내 데스크가 아니라 간소한 테이블에서 방문객을 환대하고, 목적에 맞는 층으로 안내한다. 호텔 투숙객과 사무실 근무자를 위한 엘리베이터, 노인 요양주택과 어린이 보육 시설을 위한 엘리베이터, 평상시 호텔 직원들과 비상시 소방 대원이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모두 별도의 입구로 분리하여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했다.

디콘리 베타니안의 창문 ⓒ Pablo Casals Aguirre
디콘리 베타니안의 창문 ⓒ Pablo Casals Aguirre
디콘리 베타니안의 창문 ⓒ Pablo Casals Aguirre

디콘리 베타니안의 건축에서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점은 창문이다. 모든 층에 있는 창문이 동일한 크기와 재료,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호텔과 노인 요양 주택, 어린이 보육 시설의 창문을 모두 똑같이 만든 건 DB의 의지에서 기인한다. DB의 고객은 이미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DB와 같이 사회 복지 사업을 하는 단체들의 도움이 없다면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디콘리 베타니안에서 만큼은 사회적인 지위에 상관 없이 누구나 동등한 질의 서비스와 공간을 누릴 수 있다.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노인과 호텔의 투숙객이 같은 눈높이에서 도심의 야경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창문 하나로 이야기하고 있다.

밖에서 본 디콘리 베타니안의 창문 ⓒ Pablo Casals Aguirre
안에서 본 디콘리 베타니안의 창문 ⓒ Pablo Casals Aguirre

창문의 시스템도 흥미롭다. 안에서 바깥의 풍경을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각적인 방해 요소가 될 수 있는 창틀의 구조를 뒤집었다. 덕분에 안쪽에 작은 난간을 설치할 수 있는 한 뼘의 공간이 더해졌고, 창문 전체가 옆으로 밀려나면서 완전히 열리는 형태가 완성됐다. 옆집의 창문과 부딪히지 않도록 열리는 방향도 교차하여 설계했다. 창문의 안쪽에는 창을 가로지르는 목재를 걸어 선반으로 쓰거나, 바닥의 턱을 높여 소파 형태로 만들어서 자신에게 맞는 자세와 시선으로 풍경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플라시드 호텔 ⓒ Pablo Casals Aguirre

정교하게 짜여진 디콘리 베타니안의 하드웨어를 채우는 DB의 브랜드들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플라시드 호텔(Placid Hotel)은 ‘디자인 & 라이프스타일’을 모토로 115개의 객실과 5개의 컨퍼런스 룸, 그리고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직접 객실과 부대시설을 디자인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넓은 선택지를 열어두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요양 시설에서 지내는 사람의 가족들, 취리히에 출장 온 사람들, 주말에 호캉스를 즐기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다채로운 객실 상품을 선보인다.

플라시드 호텔 ⓒ Pablo Casals Aguirre

1일, 3일, 7일, 30일 등 머무는 일 수와 인원 규모에 따라 침대의 타입과 객실에 비치된 가구, 어메니티를 세세하게 조정할 수 있다. 여러 개의 방을 예약할 경우에는 그룹 패키지로 가격 할인과 컨퍼런스 룸 예약 등 연계 서비스를 지원한다.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에는 가족들과 주말을 보낼 수 있는 패밀리 스페셜 패키지를 제공한다. DB에서 운영하는 어린이 보육 시설과 연계한 자녀와 부모가 함께 하는 워크샵, 자전거 무료 대여, 플라시드 테디 베어 인형, 취리히 동물원과 취리히의 현대 미술관 쿤스트하우스 입장권을 포함한다. 31개의 객실에는 휠체어 이용객을 위해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전동 침대가 제공된다.

플라시드 호텔 ⓒRasmus Norlander

호텔은 비즈니스를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강력한 업무 지원 시설도 제공한다. 자유롭게 업무를 볼 수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를 호텔의 시설과 결합하여 운영한다. 평일 오전 6시 반부터 10시까지는 비어 있는 객실을 홈 오피스로 대여할 수 있고, 점심 시간에는 객실에서 낮잠을 자거나 화상 회의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어린이 보육 시설에서는 아이가 있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루 단위 위탁 서비스도 제공한다.

디콘리 베타니안 ⓒPablo Casals Aguirre

디콘리 베타니안을 단순히 종교적인 활동의 연장으로 단정하기에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 복지 사업도 멋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 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모두를 위한 공간’을 지향하는 도시의 공간들이 진정 모두를 위하고 있는지를 곱씹어 볼 수 있는 힌트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도심과 달리 물리적인 공간의 한계가 있는 동네 단위의 비즈니스에게는 국지적인 유대의 가능성으로 치환될 수 있다. 어쨌든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감각은 하나의 출발점이다. 구태의연한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기회로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





EVERY WEEK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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