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고,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라는 마더 테레사의 말처럼, 관계의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다. 관계를 잘 맺는 것은 어렵지만, 맺어진 관계를 이어나가는 것은 훨씬 어렵다. 그렇지만 서로의 본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지속가능한 관계라는 말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번 주에는 관계의 미학을 잘 보여주는 동네의 장소 ‘이케선 파크(Ike-sun Park)’를 소개한다.
지역에서 공공과 민간의 이해관계는 표면적으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공공은 공익의 실현이라는 명분 아래, 지역의 소득 일부를 취해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민간은 최대 이윤의 실현을 위해, 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한 가장 유효한 방법을 탐구한다. 이렇게나 다른 두 입장이 만나, 어떻게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를 통해 공익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 중 하나가 ‘민간 자금을 활용한 공원 정비 기법(Park-PFI)’ 이다. 우리나라보다 먼저 도시화가 진행된 국가들, 특히 일본에서는 이미 제도화되어 시행중인 것으로, Park-PFI를 통해 만들어진 공원이 지역 곳곳에서 잘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국토교통성의 주도로 1960년대부터 도시 내에 공원들을 꾸준히 건설해왔다. 반 세기 넘는 시간 동안 체계적으로 만들어진 공원들은 동네의 풍경을 바꿔놓았지만, 한정된 공공의 예산으로 넓은 면적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하는 구조의 한계점도 드러났다. 공공의 힘만으로 높아지는 시민의 의식 수준과 지역의 맥락과 수요에 맞는 매력적인 공원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민간 자금을 활용하여 공원의 개발과 정비를 추진하는 Park-PFI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제도의 핵심은 공모를 통해 선정한 민간 사업자가 공원 내에 수익 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되, 수익의 일정 비율을 공원 정비에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공공의 입장에서는 공원 유지관리비의 부담을 덜면서도, 질 높은 공원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민간의 입장에서는 공원을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을 얻게 된다.
Park-PFI의 흥미로운 점은 ‘더 나은 도시 생활의 영위’라는 정성적인 목표를 아주 구체적인 법령으로 환산해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수익 시설이라고 해서 무작정 가능한 것은 아니다. 민간 사업자가 제안하는 수익 시설이 ‘도시 공원 이용자의 편의성 향상을 도모하는 데 효과적인 시설’인지를 공원 관리 위원회를 통해 검토하여 결정한다. 이를테면 ‘지붕이 달린 광장’이나 ‘높은 개방성을 가진 공간’을 만들면 추가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식이다. 여기에 더해, 각 지역의 실정과 수요에 맞는 공원이 만들어질 수 있게 지자체마다 조례를 추가할 수 있는 여지를 둔 점도 인상적이다. 제도가 단순히 잘 굴러가는 것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효용이 발생할 수 있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는 모양새다. Park-PFI의 대상이 되는 공원이 정해지면, 공모를 열기 전에 공공은 ‘마켓 사운딩(Market Sounding)’이라고 하는 일종의 기획 과정을 거친다. 말 그대로 시장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계층인지,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어떤 형태인지, 어떤 공원을 원하는지, 공원 부지를 통해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시설은 어떤 것인지 등 광범위한 조사를 벌인다. 조사의 결과는 나중에 참여하게 될 민간 사업자가 공원의 컨셉과 방향성을 설정할 때에 중요한 토대가 된다.
2020년 여름, 도쿄 이케부쿠로에 문을 연 이케선 파크 역시 Park-PFI를 통해 탄생한 공원이다. 2014년 도시마구가 도쿄 23개 구 중 유일하게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마을에 대한 본격적인 정비가 시작되었다. 살고 싶은 동네를 만들기 위한 큰 전략 중 하나가 도시마구의 중심지인 이케부쿠로에 공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도쿄 올림픽 개최 전까지 이케부쿠로 역 주변에 총 4개의 공원을 조성하여 예술 극장이 있는 서쪽 지역과 애니메이션의 성지라고 불리는 동쪽 지역을 연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4개의 공원 중에서 3개는 기존에 있던 공원을 재정비한 것이고, 나머지 하나인 이케선 파크는 과거 조폐국이 있던 부지에 새로 조성한 것이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운영을 염두에 두다보니 공원을 기획하고 설계, 관리운영까지 모두 도맡아 할 수 있는 사업자를 선정했다.
이케선 파크의 가장 큰 특징은 방재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마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도 하고, 주택이 밀집된 곳에 면하고 있어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지역의 재난 대피 장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평상시에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잔디밭을 비상시에는 헬기 착륙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뿐만 아니라 소화 용수 확보를 위한 설비를 설치하고, 불이 잘 붙지 않는 나무를 심고, 산책로를 통해 비상 차량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는 등 지역의 핵심적인 방재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공원의 전체적인 테마는 ‘거리를 바꾸는 공원’으로,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문화가 다시 동네의 거리로 퍼져나가, 살기 좋은 도시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는 공원을 비전으로 삼고 있다. 이케선 파크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으로 삼는 것은 ‘풍부한 식음을 체험하는 것’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아침부터 밤까지 휴식 시간 없이 운영되는 카페-레스토랑 ‘EAT GOOD PLACE’와 실험적인 메뉴들을 선보이는 음식 스타트업들이 늘어선 ‘KOTO PORT’, 주말마다 열리는 파머스 마켓과 주민들이 식재료를 직접 재배할 수 있는 커뮤니티 가든까지.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식체험을 추구하는 F&B 콘텐츠들과 광활한 면적의 공원이 만나 지역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EAT GOOD PLACE는 다양한 F&B 브랜드를 운영하는 Epietriz가 이케선 파크의 비전에 맞게 개발한 새로운 카페 겸 레스토랑이다. 잘 먹는 것, 내지는 좋은 것을 먹는 것 정도로 이해되는 “EAT GOOD” 이라는 철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식재료의 질을 중시하는 것도 그렇고, 먹고 마시는 것을 매개로 지역 내의 활동과 교류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아침, 점심, 저녁 뿐만 아니라 평일, 주말, 금요일 저녁, 토요일 밤 등 일주일 내내 각기 다른 메뉴를 제안한다. 활동 시간이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셈이다.
EAT GOOD PLACE는 단순히 먹고 쉬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반공공적(semi-public) 성격을 갖는다. 매장의 일부는 주민들을 위한 체험학습실로 운영한다. 이러한 부분에서도 상생을 위한 제도적인 장치가 적용된다. 전체 공간 중에서 체험학습실로 사용할 수 있는 매장 면적에 해당하는 만큼의 임대료가 면제된다. 공공은 민간의 자본으로 지역에 필요한 공간을 얻을 수 있고, 민간은 더 넓은 좌석을 확보하는 것과 동시에 임대료의 부담을 덜 수 있다. 또한 Park-PFI의 제도에 따라 카페 수익의 일부는 공원의 시설과 조경을 유지관리하는 비용으로 사용된다. 지속가능한 관계의 좋은 힌트가 되는 지점들이다.
도로에 면한 공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선 소형 점포인 ‘KOTO PORT’ 도 거리와 공원에 활기를 더하는 요소다.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메뉴를 실험하고 싶은 소규모의 가게들이 입점하고 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푸드 트럭을 떠올릴 수 있지만, 가게 하나하나의 밀도가 기대 이상이다.
도넛과 과일 음료를 페어링해 서비스하는 ‘HIGUMA Doughtnuts X SOUR’ 의 카스가이 준은 “공원 옆에서 가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은 시작할 때부터 있었어요. 저도 아이가 있어서 알고 있지만, 동네의 공원에서 가족과 단란하게 보내는 시간 만큼 안심하는 때는 없어요. 그 옆에 있는 또 하나의 안식처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라는 말로 자신의 가게를 소개한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상냥한 공원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자, 알고 지내던 SOUR와 협업해 공원에 앉아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과일 주스와 도넛을 세트로 하는 메뉴를 개발했다.
이케부쿠로의 유명한 주점 중 하나인 ‘아마테라스’를 개업해 9년째 운영중인 테츠로는 ‘거리를 바꾸는 공원’이라는 이케선 파크의 비전에 공감해 출점을 결심했다. 공원에서도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전통주를 스파클링으로 서비스하는 ‘아와(거품)테라스’ 를 KOTO PORT에 개점했다. 도쿄에서 제일이라고 평가받는 아마테라스의 시그니처 전통주 ‘이마지마’를 필두로, 연결된 양조장과 협업해 이케선 파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도 개발하고 있다. 술 한잔과 곁들일 수 있는 간단한 튀김류를 함께 내준다. 이외에도 베트남인 거주 비율이 높은 이케부쿠로의 지역성을 더 살리고 싶어하는 반미 전문점과, 남미 여행에서 만난 산장의 풍경을 재현하고 싶어 문을 연 스파이스 커리 가게 등 공원과 음식에 진심인 사람들이 만드는 이케선 파크는 방문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매력으로 가득하다.
건강한 시스템을 발판삼아 공원에 대한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운영하는 공원의 모습을 보고나서야, 우리네 근처에 있는 공원들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케선 파크의 핵심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공원이라는 공공재를 단순히 나무와 산책로, 벤치와 운동기구가 있는 공간이 아니라, 동네에서의 삶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복합적인 장소로 바라볼 수 있는 공감대를 갖는 것. 두 번째는 공원을 잘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잘 관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다지는 것. 두 가지 모두 지속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에서 출발한다. 비단 지역에서 공원을 만드는 일이 아니더라도, 당장의 성과보다 관계를 설정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