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직조하는 기술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화성 탐사선과 모든 질문에 척척 답을 내놓는 인공지능만큼이나, 미나 페르호넨이나 로로피아나의 원단에서도 인류에 대한 경외감이 들곤 합니다. 털 한 가닥을 이리저리 엮어서 마법같은 장면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화된다고 할까요. 서로 다른 굵기, 색깔, 질감을 가진 얇고 가녀린 실들이 교차하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쌓여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입니다. 매력적인 동네를 만드는 것도 비슷한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독자적인 관점으로 지역의 거점을 만드는 가루이자와 커먼그라운즈(Karuizawa Commongrounds) 소개합니다.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 ⓒNacasa & Partners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가루이자와는 일본의 유명한 별장지 중 하나입니다. 세이부 그룹의 창립자와 호시노 가문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스키장과 고급 온천, 아웃렛이 있어 도쿄도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에 즐겨 찾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최근 가루이자와는 ‘후쿠고시 학원’이나, ‘UWC ISAK JAPAN’와 같은 독특한 교육 시설과 교육 정책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이민자와 거주민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커먼 그라운즈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5년을 기점으로 가루이자와는 서점이 없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츠타야 서점(Tsutaya Bookstore)을 중심으로 하는 복합공간 티 사이트(T-Site)나 지역의 공공 시설을 위탁운영하는 사업을 이미 전개하고 있던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ulture Convenience Club, 이하 CCC)는 이것을 가루이자와 지역의 문화적 위기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서점을 출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주민들과 무언가 함께 해나갈수 있는 공간을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8년에 가루이자와 역 근처에 ‘가루이자와 서점(Karuizawa Bookstore)‘이 문을 열었습니다. 

 

가루이자와 서점 ⓒCulture Convenience Club
가루이자와 서점에서 운영하는 이동식 책방 ⓒCulture Convenience Club

가루이자와 서점이 생기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에서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문화 활동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이 자주 찾게 되고, 단독 주택이나 별장이 많은 지역의 특성에 맞게 직접 찾아가는 이동식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하는 등 가루이자와라는 지역에 꼭 맞는 장소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요.

2020년에 가루이자와에 있는 ‘이튼 하우스 국제학교(EtonHouse International School Karuizawa,이하 이튼 하우스)‘와 협업으로 온라인 학원이 오픈하면서 새로운 오프라인 공간의 기획이 본격화되었습니다. CCC의 현지 오피스도 필요했기 때문에 지역의 창작자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나, 동네의 카페나 식당 등 동네에 필요한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면서 방향이 구체화되었습니다.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 ⓒCulture Convenience Club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 ⓒ에브리위크

마침내 2023년에 오픈한 가루이자와 커먼그라운즈(Karuizawa Commongrounds, 이하 커먼그라운즈)는 ‘지(知)식(食)・에너지의 쉐어링’ 을 컨셉으로 가루이자와의 미래를 위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지역 사회의 교류를 촉진하는 커뮤니티 시설입니다. 

가루이자와에 사는 사람들, 주말에 놀러온 주변 지역의 사람들과 관광객 등 누구나 와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커먼그라운즈(Commongrounds) 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기에 오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반대로 혼자 천천히 보낼 수도 있는, 목적이 없어도 온전히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지향하고 있는데요.

예전에 아오야마 가쿠인 여자대학교의 기숙사로 사용되었던 1,200평 부지에 CCC가 운영하는 가루이자와 서점을 중심으로, 국제 학교, 와인 매장, 잡화점, 델리 등 8개의 시설이 숲 속 곳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의 서점 ⓒCulture Convenience Club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의 서점과 편집샵 ⓒ에브리위크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의 카페 ⓒCulture Convenience Club

커먼 그라운즈의 중심이 되는 가루이자와 서점은 츠타야를 통해 쌓아온 CCC의 색깔이 짙게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서점의 컨셉 역시 지역의 특성과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루이자와에는 독특한 방침을 가진 다양한 국제 교육 시설이 있고, 이런 학교들의 철학에 공감하여 육아를 하고 있는 부모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인데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이주해 온 30대 후반부터 40대의 고객을 메인 타겟으로 설정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면서, 자신이 도쿄에 없어도 비즈니스가 성립되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거나, 독립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 맞춰서 서점의 감도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서점의 컨셉을 ‘평생 학습(Life-time Learning)’으로 설정하고,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계속해서 배우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있는 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컨셉에 맞게 「자연과학, 건축, 디자인, 아트, 음식, 아동」 이라는 6개의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도서를 엄선하고 있는데요. 

특히 아동 섹션은 단순히 일본에서 잘 팔리는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두 개 이상의 언어를 배우는 바이링구얼(Bilingual)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가루이자와 지역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했는데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 영어 교육을 위해서 읽어야 하는 양질의 책’을 기준으로, 커먼그라운즈에 입점해있는 이튼 하우스 국제학교의 선생님이 직접 큐레이션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의 서점 2층에 있는 공유 오피스 ⓒNacasa & Partners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의 서점 2층에 있는 공유 오피스 ⓒCulture Convenience Club

커먼그라운즈의 서점은 일상에서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작품의 전시와, 지역 예술가들의 각종 상품 및 식품의 판매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루이자와 지역 특유의 기념품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가노의 식재료를 고집해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식품을 판매하는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오프라인 점포를 가지지 않는 로컬 브랜드를 발굴해서 유통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CCC에 1997년에 입사해 츠타야를 거쳐 커먼그라운즈를 담당하고 있는 마츠모토 사토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먹고 ‘맛있다! 누군가와 같이 먹고 싶다!’라고 생각한 것을 손님에게도 꼭 알리고 싶습니다”

가루이자와 서점의 2층에는 다양한 업무 스타일을 제공하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습니다. 부지 내의 푸른 나무들과 아사마산을 바라보며 혼자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여러 사람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옛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CCC가 도쿄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공유 오피스 쉐어 라운지(Share Lounge)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커먼 그라운즈 내에 있는 이튼하우스 국제학교 ⓒEton House Japan
커먼 그라운즈의 잡화점 RK DAYS ⓒCulture Convenience Club
커먼 그라운즈의 소바 가게 OSOBAR ⓒ에브리위크
커먼 그라운즈의 와인 가게 ⓒ에브리위크

커먼그라운즈에는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이튼 하우스입니다.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과 자연 기반 학습을 추구하는 싱가포르 기반의 국제 학교인데요. 도쿄 도심에 있는 이튼 하우스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프로그램과 연계한 커리큘럼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커먼그라운즈 내에 있는 숲과 텃밭 뿐만 아니라, 가루이자와 지역의 천혜의 자연을 하나의 학교로 삼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튼 하우스 만큼이나 커먼그라운즈의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가게들이 있습니다. 주중에는 정통 신슈 소바 국수를, 주말 저녁에는 간단한 안주와 술을 판매하는 소바 가게 오소바(OSOBAR)와 일년 내내 낮은 기온을 유지하는 가루이자와의 기후에서 영감받은 저온 훈제 전문점 가루이자와 이부루(Karuizawa Ibulu)는 단연 눈에 띄는데요. 

이외에도 ‘학교에 가기 전후에, 출근 하기 전의 한때에, 여행지에서의 추억에 남는 아침에’ 를 모토로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만 문을 여는 아침 전문 식당 퍼블릭 식당(Public Restaurant), 계약된 지역 농장에서 공급되는 제철 식재료와 신선한 야채로 만든 요리와, 직원이 신중하게 선택한 잡화를 판매하는 아르케이 데이즈(RK DAYS)야생 효모로 양조한 맛있는 와인을 제공하는 아뱅 바이오 와인샵(aVin Bio Wine Shop Karuizawa)도 커먼 그라운즈에 들려야 할 이유를 만드는 중요한 콘텐츠입니다.

다이칸야마(Daikanyama) 츠타야의 점장을 거쳐 가루이자에 합류햔 토몬 타이토(土門 泰人)는 커먼 그라운즈의 앞으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손님이 온다고 하는 것은, 역시 ‘거기에 가면 즐거운 일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품은 물론, 이벤트나 공간 만들기,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집약해 나가는 것이 큰 미션인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루이자와에서는 정말 ‘좋은 것’이 잘 팔립니다. 그래서 보다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과 여러가지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태어난 기획을, 전국의 우리의 거점에 전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 ⓒNacasa & Partners

‘지(知)식(食)・에너지의 쉐어링’ 이라는 컨셉에 따라, 커먼그라운즈의 모든 건물에는 태양광 발전이 가능한 설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전력은 부지 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기차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커먼그라운즈의 주차장에 있는 급속 충전소와도 연결되어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커먼그라운즈 내에 있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로 만들어 이튼 하우스 국제학교의 텃밭 키우기 교육 프로그램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커먼그라운즈는 여러 가닥의 실들이 한데 모여 더 큰 직물의 일부가 되듯, 특정한 목적이나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필요에 따라 부드럽게 엮이고 확장되는 기반이 됩니다. 작은 로컬 브랜드가 다른 공간과 연결되며 성장하고, 교사와 요리사가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죠. 

양품계획의 가나이 마사아키 회장은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로컬이란 ‘지방’이 아니라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관계성과 유대감’입니다”

좋은 지역이란 단순한 교류나 거래를 넘어,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EVERY WEEK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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