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한 접시씩 들고 오는 저녁 식사에는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누가 뭘 가져올지 미리 정하지 않아도, 다들 식탁 전체가 근사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기 몫을 채워오니까요. 누군가의 요리가 유독 반응이 좋으면 다 같이 기뻐하고, 다음엔 무얼 준비할지 서로 묻게 되고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접시가 모여야 비로소 완성되는 식탁인 셈입니다. 동네도 비슷한 것 같아요. 그 동네에 살면서 필요한 걸 사고파는 관계만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그 지역의 먹거리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어지는지에 자기 몫을 보태는 순간, 그 동네와 맺는 관계는 한층 더 깊어집니다.
이번 주에는 지역의 경제 문제를 새롭게 풀어낸 주식회사 ‘레기오날베어트 프라이부르크(Regionalwert AG Freiburg-Südbaden)’를 소개합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시민주식회사 ‘레기오날베어트 프라이부르크(Regionalwert AG Freiburg-Südbaden)’의 시작은 은행에서 거절당한 대출 하나였습니다. 크리스티안 히스는 독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유기농으로 전환한 농가 중 하나였던 아이히슈테텐의 집안에서 자랐고, 스무 살에 자기 유기농 채소 농장을 차렸습니다. 1990년대 말, 그는 화학비료 의존을 줄이려고 채소 농장에 젖소를 들이는 순환농법을 계획했지만, 은행은 대출을 거절했습니다. 토양을 건강하게 하고 생물다양성을 지키고 직업훈련에 투자하는 농가일수록 단기 수익률은 낮아지고, 그래서 은행의 신용평가에서는 오히려 불리해진다는 걸 그는 몸소 겪은 거죠. 사회는 바로 그런 농사를 원하는데 말입니다. 히스는 이 역설을 이렇게 압축해서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존재하는 겁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그는 농민과 소비자, 정치인, 학자들과 지역 농업의 미래를 두고 대화를 이어갔고, 2006년 마침내 아이히슈테텐에서 이 회사를 세웠습니다. 그가 그리던 그림은 단순했어요. 은행 대출이 아니라, 시민들이 낸 돈을 오래 묶어둘 수 있는 자기자본으로 지역 농식품 기업에 투자하는 것. 이 아이디어로 그는 2010년 독일 지속가능성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레기오날베어트(Regionalwert)는 독일어로 ‘지역의 가치’라는 뜻이에요. 그는 이 회사의 이름에 담긴 뜻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지역 주민들을 지역의 생태적 농식품경제에 더 직접 끌어들이는 것.”
방식은 이렇습니다. 시민 누구나 한 주에 500유로짜리 주식을 사서 이 회사의 주주가 될 수 있어요. 이렇게 모인 돈은 농장뿐 아니라 가공업체, 유통, 식당까지, 먹거리가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여러 단계에 나눠 투자됩니다. 회사가 투자를 결정하는 기준도 남다릅니다. 대상 지역은 프라이부르크시 하나가 아니라 콘스탄츠, 뢰라흐 같은 주변 9개 지역을 아우르는 훨씬 넓은 권역이에요. 그래서 2023년에는 이름 자체를 ‘프라이부르크-쥐트바덴(Freiburg-Südbaden)’으로 바꿨습니다. 유기농 인증은 필수 조건이고(아직 인증이 없다면 4년 안에 전환한다는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토양비옥도와 생물다양성, 동물복지, 공정한 임금, 취약계층 고용 같은 기준도 함께 봅니다. 투자를 원하는 기업은 사업계획서를 내고 현장 방문을 거쳐, 이사회 앞에서 직접 발표까지 해야 해요. 이 모든 과정에 보통 3~6개월이 걸립니다.
투자를 받은 뒤에도 관계는 계속됩니다. 2~3개월마다 파트너 기업들이 모여 원재료와 고객, 경영 노하우를 나누고요. 초기 파트너 기업 인터뷰에서 한 사업자는 이 네트워크의 의미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완전히 혼자 서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 회사가 정말 특별한 지점은 다른 데 있어요. 이들은 돈으로 잡히지 않는 성과까지 굳이 숫자로 바꾸려 했습니다. 토양이 얼마나 건강해졌는지, 생물다양성이 얼마나 늘었는지, 지역 안에서 거래가 얼마나 순환했는지를 자체 방법론으로 계산해 ‘레기오날베어트 보고서’라는 이름으로 발표해온 거예요. 2022년 보고서는 17개 파트너 기업의 이런 성과를 화폐 가치로 환산해 약 222만 유로라는 숫자를 내놓았습니다. 다만 이건 감사받은 자산 가치도, 검증된 투자수익률도 아닙니다. 회사 스스로 개발한 방법으로 “이 정도의 사회·생태적 가치를 만들어냈다”고 환산한 자체 평가치예요. 회사 자신도 농업 이외 단계의 지표는 아직 부족하고, 이 가치 중 얼마가 정말 네트워크 덕분인지는 명확히 가르기 어렵다고 인정합니다. 이 조사 부담이 너무 커서, 2023년부터는 이 보고서 작성 자체를 중단한 상태고요.
회사는 2006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배당을 준 적이 없어요. 앞으로도 가까운 시일 안에는 어렵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쌓인 손실부터 먼저 메워야 하니까요.
2021년, 회사는 37만 유로의 흑자를 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흑자의 대부분은 실제 사업에서 번 돈이 아니라, 회사가 자체 개발한 지속가능성 회계 기법(농업의 숨은 가치를 계산하는 노하우)을 자신들이 만든 계열사에 150만 유로에 팔면서 장부에 잡힌 141만 유로짜리 회계상 이익이었어요. 문제는 이 매각대금이 5년에 걸쳐 나눠 들어올 예정이었다는 겁니다. 자기 자신에게 외상으로 판 셈이었던 거죠. 그리고 이후 이 돈을 받을 권리(채권) 상당 부분이 부실화되면서, 그 여파가 고스란히 다음 해들의 손실로 되돌아왔습니다. 2022년 86만 유로 손실, 2023년에는 242만 유로 손실까지 불어났고, 2023년 말까지 쌓인 누적 결손은 약 460만 유로였습니다. 2024년에는 간신히 3천 유로의 흑자를 냈지만, 이마저도 실제 사업으로 번 게 아니라 전년도 회계 오류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생긴 착시에 가까웠어요. 본업만 놓고 보면 이 해에도 약 21만 유로의 손실이었습니다.
이 결과 2024년 말 회사의 총자산은 80만 유로. 2021년 378만 유로에서 4년 만에 약 79%가 사라졌습니다. 회사가 지금까지 시민들에게서 받은 명목 자본금은 492만 유로인데, 여기서 누적 손실을 빼고 나면 장부상 남은 자기자본은 약 48만 유로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회사가 없어진 건 아니에요. 지금도 주주총회가 열리고, 네트워크 사업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됐을까요. 근본적인 이유는 이 회사가 투자하는 소규모 유기농 기업들이 애초에 자본 수익률이 낮다는 데 있습니다. 이 기업들이 내는 배당과 이자, 임대료만으로는 심사와 모니터링, 네트워크 운영에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회사는 라이선스 수수료(파트너 기업 전년도 매출의 0.1%), 후원 파트너십(연 1,500~1만 유로), 컨설팅과 워크숍, 연구비 같은 다른 수입원을 계속 찾아왔습니다. 2023년에는 새 서비스 상품까지 몇 개 개발했지만, 정작 이걸 제대로 시장에 내놓을 유동성조차 부족해 상당수는 중단됐어요. 지역의 여러 기업을 연결하고 돌보는 일은 분명 가치를 만들어내는데, 정작 그 가치를 누가 현금으로 지불할 것인가는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은 문제인 셈입니다.
그럼에도 이 조직이 지역 프로젝트로서 남긴 것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2026년 있었던 ‘쿠어베트’ 농장의 승계가 좋은 예예요. 이 생물역동농법 채소농장은 후계자가 필요했고, 마침 히스 가문의 농장은 변전소 확장 때문에 상당한 농지를 잃을 처지였습니다. 네트워크가 이 두 문제를 하나로 엮어, 히스의 아들 부부인 마티아스와 이자벨이 쿠어베트를 이어받아 농사를 계속할 수 있게 됐어요. 돈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문제, 그러니까 땅의 연속성과 다음 세대로의 승계를, 이 네트워크가 실제로 풀어낸 순간이었습니다. 회사가 최근 재정을 정리하며 일부 투자 지분을 매각한 경우에도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츠베르겐퀴헤, 프리셰키스테 같은 기업들의 지분을 각각 경영자와 다른 주주에게 팔았는데, 이 기업들은 지분 관계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네트워크의 일원으로 남았습니다. 소유는 끝나도 관계는 남을 수 있다는 걸, 이 회사는 위기 속에서 오히려 증명한 셈이에요.
이 모델은 프라이부르크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함부르크, 라인란트, 베를린-브란덴부르크 같은 다른 지역에도 각자의 레기오날베어트 주식회사가 생겼고, 중앙 조직 레기오날베어트 임풀스가 브랜드와 노하우를 나눠주며 이 확산을 돕고 있어요. 다만 이건 자본을 한곳에 모으는 방식의 확장이 아니라, 지역마다 독립된 법인을 새로 복제하는 방식의 확장입니다. 프라이부르크가 겪은 재정적 어려움이 다른 지역에도 그대로 반복될지, 아니면 각 지역이 스스로 다른 답을 찾아갈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고요. 2024년 기준으로 프라이부르크 조직 자체는 상근 직원 6명, 주주 1,107명, 파트너 기업 28곳 규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2026년에는 독일의 유명한 시민 에너지협동조합 EWS와 새 협업도 시작했어요. 몸집은 크게 다치고 줄었지만, 완전히 멈추지는 않은 셈입니다.
다만 이 이야기를 순전히 돈의 문제로만 읽으면 정작 중요한 걸 놓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역을 살린다고 하면 우리는 대개 몇 가지 익숙한 방법을 떠올립니다. 관광객을 끌어모으거나, 새 주택을 짓거나, 공장이나 기업을 유치하거나, 태양광 발전소를 세우는 것처럼요. 이런 방법들은 대개 지방정부의 예산과 정책을 통해 진행되고요. 레기오날베어트가 보여준 건 이 익숙한 목록 바깥에도 전혀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지역의 먹거리가 만들어지고 이어지는 방식, 그러니까 이미 그 지역에 있는 농장과 가공업체, 가게들이 서로 연결되는 구조 자체를 누가 소유하고 책임지느냐를 바꾸는 것. 이건 새 건물을 짓거나 외부 자본을 끌어오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던 관계의 소유권을 지역 주민에게 돌려주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것도 지방정부의 지원을 기다리지 않고, 순전히 시민들 스스로의 자본과 의지로요.
이 프로젝트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생태적, 사회적 가치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가치를 만들어내는 조직 자체가 재정적으로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사실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것. 토양은 실제로 더 건강해졌고, 농장은 실제로 다음 세대에게 넘어갔고, 사업자들은 실제로 혼자가 아니라고 느꼈다는 것.
무엇보다도 이 프로젝트가 신선했던 이유는 따라갈 전례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민이 지역 먹거리 체계 전체에 장기 자기자본을 대는 모델은 어디에도 정해진 매뉴얼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들은 심사 기준부터 수익 구조, 성과 측정법까지 전부 스스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무모함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정책도 쉽게 만들어내지 못했을 돌파구를 우연히 발견하기도 했죠. 땅의 소유와 그 땅에서 농사짓는 일을 분리해둔 구조 덕분에, 상속받을 땅이 없는 젊은 농부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은퇴하는 농부의 자리를 낯선 투자자가 아니라 다음 농부가 자연스럽게 이어받을 수 있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쿠어베트 농장의 승계가 그랬듯이 말이죠. 지방정부의 승계 지원 정책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라, 이 네트워크가 스스로 만든 구조가 그 역할을 대신한 겁니다.
그러니 레기오날베어트의 의의는 재무제표 한 장으로 정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역을 살리는 일이 반드시 외부의 돈이나 사람을 끌어오는 방식이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 오히려 이미 그 자리에 있던 사람과 관계, 땅의 소유 구조를 다시 짜는 것만으로도 전에 없던 돌파구가 생길 수 있다는 것. 그 시도가 재정적으로 값비쌌다는 사실이, 이 시도 자체의 의미까지 잃게 만들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이토록 집요하게 추구하고 싶은 가치가 있나요.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