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벼려지는

물건을 사고 나면, 우리는 때때로 그 물건을 더 이상 눈여겨보지 않습니다. 문고리도, 타일도, 조명 스위치도 한 번 자리를 잡고 나면 있는 듯 없는 듯 지나치죠. 그러다 그 물건이 벽에서 뜯겨 나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잔해 더미에 섞이면, 우리는 더더욱 관심을 거둡니다. 지저분해 보인다는 이유로, 어딘가 낡고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요. 그런데 이 편견은 정말 그 물건 자체 때문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그저 눈길을 주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일까요.

이번 주에는 건물의 잔해를 지역의 자원으로 바꾸는 벨기에 브뤼셀의 협동조합 ‘로터 디씨(Rotor DC)’를 소개합니다.

로터 디씨가 철거한 문들 ⓒPascal BROZE

로터 디씨(Rotor DC)는 2005년 브뤼셀에서 만들어진 비영리 연구조직 ‘로터(Rotor)’에서 갈라져 나와, 2016년 독립 협동조합으로 정식 출범했습니다. 이름의 ‘디씨(DC)’는 ‘해체’를 뜻하는 영어 단어 디컨스트럭션(Deconstruction)의 줄임말이에요. ‘로터’ 는 계속 돌아가는 기계 부품을 가리킵니다. 한 자리에 멈추지 않고 계속 돌고 도는 것. 이들이 오랫동안 다뤄온 순환이라는 개념과 잘 어울리는 이름인데요.

로터 디씨의 이야기는 한 사람에게서부터 출발합니다. 공동 창립자 마르턴 힐런(Maarten Gielen)은 열다섯 살 때부터 고물상과 벼룩시장에서 장식품과 소품을 주워다 옷가게와 꽃집에 되파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관심사는 2005년, 힐런이 트리스탕 보니베르(Tristan Boniver), 리오넬 드블리허(Lionel Devlieger), 미아 슈말렌바흐(Mia Schmallenbach)와 함께 ‘로터’라는 연구 모임을 만들면서 하나의 실천으로 이어졌어요. 로터는 스스로를 건축사무소가 아니라 물질 환경이 조직되는 방식을 연구하는 협동적 디자인 프랙티스라고 설명합니다. 건축가 미카엘 기요(Michaël Ghyoot)는 로터 디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해요.

“로터에 있는 모든 사람을 이끄는 가장 큰 동력은 아마 호기심일 거예요.”

로터 디씨의 팀원들 ⓒRotor DC

로터는 초기 몇 년간 150곳이 넘는 공장을 찾아다니며 기업들이 생산 부산물과 폐기물을 실제로 어떻게 다루는지 조사했습니다. 이걸 조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2008년, 브뤼셀 정부가 던진 질문 때문이었는데요. 이 도시에서 건축자재를 재사용하는 것이 실제로 사업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답하려고 로터는 벨기에에 이미 있던 중고 건축자재 거래상들을 지도로 만드는 ‘오팔리스(Opalis)’ 프로젝트를 2011년부터 시작했습니다. 이때 로터는 이미 벽돌과 목재, 기와를 전문으로 다루는 숙련된 업체들로 이루어진 중고 자재 시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브뤼셀 정부는 모든 걸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브뤼셀이라는 좁은 행정구역만 보지 않고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이미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예요. 다만 이들은 대부분 도심 밖에 있었고, 전쟁 이전에 지어진 오래된 주택에서 나온 자재를 시골 주택시장에 공급하는 데 특화되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건, 기록을 뒤져보니 50~100년 전만 해도 이런 중고자재 거래상들이 도시 한복판에 있었다는 사실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며 땅값이 오르자 도시 밖으로 밀려난 거죠. 그리고 정작 브뤼셀 도심에서 대량으로 철거되던 1950년대 이후 은행과 사무실 건물에서 나오는 타일, 조명, 문, 가구를 다루는 중고 자재 업체는 없었죠. 이게 로터 디씨를 만든 진짜 계기였어요. 있는 것도 다루지 않는 시장에서 기회를 발견한 거죠.

2014년, 힐런은 리오넬 빌리에(Lionel Billiet), 르노 하얼링헨(Renaud Haerlingen)과 함께 로터 디씨를 정식으로 조직하기 시작합니다. 같은 해 BNP 파리바 포르티스(BNP Paribas Fortis) 은행이 브뤼셀 도심의 옛 본사를 철거하기로 하면서 결정적인 프로젝트를 맡게 됩니다. 유명 디자이너 쥘 바브(Jules Wabbes)가 작업한 천장과 크리스토프 게버르스(Christophe Gevers)가 설계한 650석 규모 구내식당이 있었거든요. 은행은 헤리티지 단체를 통해 당시 아직 실험 단계였던 로터 디씨와 연결됐고, 이들은 천장재와 화강석 바닥, 문, 하드웨어까지 230톤이 넘는 마감재를 회수했습니다. 워낙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다보니, 문 한짝에 900유로 가치가 경우도 있었어요. 비슷한 시기 브뤼셀 세계무역센터에서도 카라라 대리석을 통째로 회수한 적이 있는데, 이런 프로젝트들 덕분에 로터 디씨는 처음으로 매장을 열 수 있을 만큼의 자본을 손에 쥐었고, 2016년 12월 정식 협동조합 법인이 됐습니다.

BNP 파리바 포르티스 은행에서 철거 중인 천장 ⓒRotor DC
BNP 파리바 포르티스 은행에서 철거한 천장을 정리하는 모습 ⓒRotor DC
BNP 파리바 포르티스 은행에서 철거한 천장을 사용한 브뤼셀의 가게 Gaston ⓒRotor DC
BNP 파리바 포르티스 은행에서 철거한 천장재 Gaston ⓒRotor DC
BNP 파리바 포르티스 은행에서 철거한 천장을 사용한 브뤼셀의 가게 Gaston ⓒRotor DC

로터 디씨가 실제로 하는 일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건물주가 철거나 리모델링을 결정하면, 로터 디씨는 먼저 현장에 가서 무엇이 있는지 조사합니다. 집 한 채라면 몇 시간이면 끝나지만, 150동을 한꺼번에 철거하는 도로 확장 공사라면 전수조사 자체가 불가능해서 접근 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짜야 해요. 회수하기로 한 자재는 조심스럽게 분리해 운송하고, 세척과 수선을 거쳐 치수와 상태, 수량, 출처를 기록하고, 매장이나 온라인에 등록해 판매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원칙이 하나 있어요. 완전 철거 프로젝트는 원칙적으로 맡지 않습니다. 건축사학자 올리비아 노엘(Olivia Noël)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완전 철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저희는 정중히 거절 의사를 전합니다. 원칙적으로 철거 프로젝트에는 관여하지 않는다고요. 그 한마디에 상대방이 ‘어쩌면 이러면 안 되는 거였나’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이 모든 과정은 네 개 팀으로 나뉘어 돌아갑니다. ‘IN팀’은 새로운 자재를 찾아내고 공급 파트너십을 맺는 일을 맡고, ‘프로세스팀’은 현장에서 회수한 자재를 실제로 손질하고 수선하고 상태를 기록하는 일을, ‘매장팀’은 마케팅과 고객 응대, 창고 관리와 배송을 맡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원팀’이 회계와 인사, 보조금 신청 같은 살림을 챙기고요.

초기에는 로터 디씨 직원이 직접 현장에서 해체까지 도맡았지만, 지금은 세 갈래로 자재를 확보합니다. 자체 팀이 일반 철거업체가 들어오기 전에 먼저 현장에 들어가 조심스럽게 해체하는 경우, 철거업체가 스스로 해체해 로터 디씨에 직접 파는 경우, 그리고 개인이나 회사가 물건을 직접 가져와 판매하거나 위탁하는 경우입니다. 기요는 이 전환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문 설치를 할 줄 아는 철거업체라면, 대개 그 문을 손상 없이 떼어내는 법도 이미 알고 있어요. 이들에게 없었던 건 기술이 아니라 물류에요. 살 사람, 시장, 보관할 창고 말이에요.”

철거 후 쌓여있는 대리석 ⓒRotor DC

로터 디씨가 그 판매망과 창고를 제공하자, 도시 곳곳의 철거업체 자체가 잠재적인 공급자로 바뀌었습니다. 지금은 로터 디씨 인력이 로터 전체 인력의 3분의 2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어요. 두 조직은 지금도 같은 부지를 쓰고 자원을 나누며, 직원들이 어느 쪽 소속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함께 일하기도 합니다.

자재를 확보할지 말지는 ‘회수 감정(reclamation audit)’이라는 절차로 정합니다. 철거가 예정된 건물에 방문해 재사용 가능성이 있는 모든 품목을 목록으로 만들고, 수량과 상태를 기록한 뒤, 항목마다 별점을 매겨 회수 난도와 예상 시장가치를 함께 평가해요. 떼어내기 쉽고 잘 팔리는 물건은 건물주에게 돈을 주고 사들이고, 손이 많이 가는데 수요는 적은 자잘한 품목은 그냥 넘겨받는 식입니다. 재고 자체도 규격화된 도록으로 정리해 건축가와 시공팀에 미리 배포하는데, 브랜드와 모델, 치수, 색상, 상태까지 적혀 있어서 설계 단계에서부터 지금 창고에 무엇이 있는지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의외의 지점도 있습니다. 기둥이나 보 같은 구조재가 가장 까다로운 인증을 필요로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카펫 타일처럼 평범한 마감재가 훨씬 복잡한 기준을 통과해야 합니다. 마모도와 유해물질 배출, 현행 기준 충족 여부까지 확인해야 하거든요. 반면 집성목 보는 기본적인 강도와 내구성 기준만 맞으면 됩니다.

철거 후 세척한 타일 샘플 ⓒRotor DC

이들이 모든 걸 다 회수하는 건 아닙니다. 재판매 예상 가격이 해체·운송·세척·보관 비용을 감당해야만 매입해요. 한때 중고 변기를 세척까지 해서 팔았지만, 손이 너무 많이 가서 결국 새 변기보다 비싸지는 바람에 이 품목을 포기했습니다. 반대로 조명이나 자연석 바닥재, 카펫 타일, 가구처럼 품질이 좋고 수량이 많고 다시 쓸 수요가 있는 품목은 잘 맞아요.

오래된 타일이 좋은 예입니다. 타일 자체는 수십 년을 더 써도 되지만, 바닥에서 떼어낸 뒤 뒷면의 시멘트를 손으로 긁어내는 인건비 때문에 새 제품보다 비싸질 수 있어요. 실제로 알록달록한 ‘임페르모’ 시멘트 타일 400제곱미터가 이 문제 때문에 거의 4년 동안 창고에 잠들어 있었습니다. 세라믹 타일에 쓰던 화학 세척 방식은 산에 약한 시멘트 타일에는 쓸 수 없었거든요. 로터 디씨는 이 타일 전용으로 모르타르를 기계적으로 제거하는 설비를 새로 개발했고, 완성되자 자기네 사무실 방 한 칸에 시험 삼아 시공까지 해본 뒤에야 정식으로 판매를 시작했습니다. 해체 현장에서 나온 자재가 다시 시공 가능한 상태가 되기까지, 때로는 이렇게 몇 년이 걸리기도 하는 거예요. 지금 이 설비 가동 시간의 절반가량은 다른 회사의 타일을 대신 세척해주는 데 쓰이고요. 조명 기구는 배선을 새로 하고, 굵은 집성목은 못을 뽑아내고 다시 재단해서 파는 식으로, 품목마다 저마다 다른 손질 공정을 갖추고 있습니다. 기요는 재사용이 기술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재사용은 단순히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에요. 문화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철거한 ERCO 조명 ⓒRotor DC
철거 현장에서 회수한 미사용 식기 ⓒRotor DC
철거한 옷걸이 ⓒRotor DC
철거 후 세척한 세면대 ⓒRotor DC

건물 하나를 통째로 보존할지, 철거할지를 두 갈래로만 나누는 대신, 프로그램을 건물에 맞추는 유연함이 더 많은 걸 지켜낸다는 게 이들의 경험입니다. 로터 디씨는 건물의 약 80% 정도를 남기는 게 이상적이라고 말합니다. 완전 철거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조심스러운 회수가 끼어들 틈이 없거든요. 로터의 프로젝트 매니저 세실 기샤르(Cécile Guichard)는 이걸 짧게 정리합니다. 제네바 예술디자인대학(HEAD – Genève)을 나온 그는 10년 넘게 로터 디씨의 커머셜 디렉터로 일하다가, 최근 모조직 로터로 옮겨 건물주와 발주처의 재사용 전략을 돕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재사용에는 시간이 필요해요. 그런데 도시에서는 시간이 곧 돈이죠.”

우에스트 아키텍처(Ouest Architecture)가 설계한 지네케(Zinneke) 오피스 프로젝트가 이 유연함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건물주가 새 용도를 기존 건물에 억지로 끼워 맞추는 대신, 건물이 이미 할 수 있는 것부터 파악하고 그 위에 필요를 얹었어요. 그 결과 기존 건물의 약 89%를 그대로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흥미로운 규제 실험도 있었어요. 재사용할 창문을 쓰기로 했지만, 건축 허가를 신청할 시점에는 정확히 어떤 창문이 쓰일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인허가 부서는 에너지, 방화, 채광 기준을 확인하려면 정확한 창문 치수가 필요했어요. 로터 팀은 정확한 규격 대신 최대·최소 치수 범위를 제시했고, 실제로 쓰일 창문이 그 범위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되는 방식으로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지자체가 이 방식을 받아들였고, 지금은 다른 여러 프로젝트에도 이 전략이 쓰이고 있어요. 건축 당국도 이걸 아예 일반 원칙으로 규정에 넣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같은 프로젝트에서 환기 설비 하나를 재사용하는 데는 여덟 개의 서로 다른 당사자가 동시에 합의해야 했습니다. 원래 그 설비가 있던 건물의 소유주, 철거업체, 새 현장의 시공사, 상태를 검증하는 유지보수 업체, 승인하는 엔지니어, 책임 문제 때문에 관여하는 운송회사, 발주처, 그리고 로터까지요. 부품 하나를 옮기는 데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 테이블에 모여야 한다는 사실이, 재사용이 왜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기요는 이런 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프로그램이 기존 건물에 어떻게 들어맞을지를 유연하게 생각할수록, 그 건물을 지킬 기회는 더 많아집니다.”

로터 디씨의 철거 과정 ⓒRotor DC
로터 디씨의 철거 과정 ⓒRotor DC

에베레에 있는 로터 디씨 매장은 4,000제곱미터 규모로, 일주일에 엿새 문을 엽니다. 재고 대부분은 온라인 카탈로그에서도 그대로 확인할 수 있고, 결제와 배송 신청까지 웹사이트에서 바로 처리할 수 있어요. 고객층도 인테리어 디자이너나 시공업체 같은 전문가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집을 고치다가 문 하나, 손잡이 하나를 사러 오는 개인 고객도 흔해요. 문 하나만 해도 짝수(외짝, 두짝, 세짝, 네짝)로 나뉘고, 바닥재는 시멘트 타일과 원목마루, 자연석, 오래된 세라믹, 테라코타, 테라조까지 세세하게 분류돼 있어서, 마치 잘 정리된 편집숍에서 물건을 고르는 느낌에 가깝습니다.

흥미로운 건 일부 품목을 원래 있던 자리로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1974년 준공된 제네랄 은행 본사에서 나온 것’, ‘1960년대 밀라노의 한 스튜디오에서 나온 것’처럼 출처 자체가 하나의 검색 카테고리가 됩니다. 개인이 물건을 맡기면 대신 팔아주는 위탁판매 서비스도 있고, 회수한 자재를 관리하는 데 필요한 천연 세정·보존 제품도 함께 팝니다. 재사용 자재를 브뤼셀산으로만 한정하지도 않아요. 브뤼셀 밖에서 들어오는 자재도 있고, 반대로 여기서 산 자재가 브뤼셀 밖의 다른 도시 프로젝트에 쓰이기도 합니다. 

매장 한켠에는 브뤼셀의 또 다른 순환경제 기업 BC 머티리얼스(BC materials)가 만든 점토 페인트 ‘레엠(LÉÉM)’도 진열돼 있어요. 건물을 지으려고 땅을 팔 때 나오는 흙으로 만드는 이 페인트는 크림, 회색, 갈색, 붉은색 네 가지 기본색을 섞어 서른다섯 가지 색을 낼 수 있고, 재활용 원료가 65% 들어가며 휘발성 유해물질도 없습니다. 로터 디씨는 이걸 네 가지 색 시험용 소포장과 밑칠제, 붓까지 담은 체험 키트로 팔면서, 나중에 정식 대용량을 살 때 쓸 수 있는 할인권도 함께 끼워줍니다. 회수한 자재를 파는 매장이 동시에 같은 도시의 다른 순환경제 기업을 위한 진열장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에요.

몇 해 전에는 안트베르펜시가 1600년대에 지어진 옛 관공서 건물을 복원하면서, 그사이 덧붙었던 19세기 목공 장식을 전부 떼어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복원하려는 시기보다 너무 최근 것이었거든요. 그렇게 로터 디씨의 창고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목재와 오래된 참나무가 한꺼번에 들어왔고, 이 소식을 들은 안트베르펜 시민들이 일부러 이걸 구경하러 브뤼셀까지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기요는 이 일을 하면서 건물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졌다고 말합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는 마치 유령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이 돌바닥을 누군가 깔았겠구나, 이 돌은 제가 가본 적 있는 채석장에서 왔겠구나 하는 게 갑자기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 연결고리를 하나씩 발견할수록, 우리가 사는 도시는 훨씬 풍성하고 생생해집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작업을 흔히 ‘도시 광산’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기요는 광산이라는 비유 자체가 채굴 산업에서 온 말이고, 도시를 그저 이익을 위해 파먹는 자원으로 보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광산은 대개 하나의 채굴권과 하나의 소유주가 있지만, 도시는 그 반대라는 거예요. 수많은 다른 주체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유하고 있고, 훨씬 예측 불가능하고 다양하니까요. 완벽한 대체어를 찾지는 못했다고 하지만, 이러한 생각 자체가 이들이 지역과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로터 디씨의 매장 ⓒRotor DC
로터 디씨의 매장 ⓒRotor DC, Pascal BROZE
로터 디씨의 매장에서 판매하는 점토 페인트 ⓒRotor DC

로터 디씨는 기본적으로 노동자가 소유한 협동조합입니다. 주주에게 배당을 최대화하는 회사가 아니라, 벌어들인 돈을 다시 성장과 재고에 투자하는 구조예요. 기요는 이걸 이렇게 표현합니다.

“돈은 수단이에요. 필요하긴 하지만,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재정 구조는 두 조직이 꽤 다릅니다. 로터 디씨의 수입은 약 90%가 회수한 자재 판매에서 나오고, 나머지 10%는 현장 실사와 강연, 자문에서 나옵니다. 반면 비영리 조직이자 로터 디씨의 모체인 로터는 수입의 약 40%가 공공 자금인데, 이마저도 유럽연합의 국경 간 협력 프로그램인 인터레그(Interreg)처럼 프로젝트 단위로만 들어옵니다. 나머지는 공공·민간 발주처를 돕는 일, 그러니까 철거 전 실사나 설계팀의 재사용 자재 소싱, 시방서 조정 같은 자문에서 나오고요. 2025년 기준 16.3명 규모의 상근 인력을 유지하고 있고, 최근 몇 해 로터 디씨의 손익은 2022년 적자, 2023년 흑자, 2024년은 사실상 손익분기, 2025년은 다시 소폭 적자였습니다. 큰돈을 버는 사업이라기보다, 손익분기 언저리에서 노동집약적 조직을 유지해온 셈이에요.

 

철거 전 건물의 외관 ⓒRotor DC
철거 중인 건물 ⓒRotor DC
철거된 건물의 유리창 ⓒRotor DC

앞서 인용한 기요의 말처럼 철거된 건물의 자재에 대한 재사용이 활발하지 않은 건 의외로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오래된 관습의 문제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럽의 폐기물 규정에서 회수한 자재는 ‘제품’과 ‘폐기물’ 사이 애매한 위치에 있어요. 타일 세척 기계 하나를 설치할 때도, 당국은 그 타일이 폐기물로 분류되는지 제품으로 분류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똑같은 타일, 똑같은 공정인데도 분류에 따라 필요한 행정 절차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세금도 비슷한 문제예요. 벨기에에서 낡은 구두를 수선하면 부가가치세가 6%인데, 회수한 타일을 세척하면 21%가 붙습니다. 둘 다 이미 한 번 쓰인 물건을 다시 쓸 수 있게 손보는 일인데도요. 기요는 이렇게 말합니다.

“새 제품 가격이 진짜 문제예요. 대량생산되는 자재는 환경 비용을 가격에 반영하지 않으니까요. 반면 재사용은 노동집약적이고, 유럽에서 노동은 비쌉니다. 재사용이 경제적으로 안 맞는다면, 그건 대부분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문제예요.”

한편 로터 디씨는 기본적으로 자재를 보관하고 정리할 넓은 공간이 필요한데 도심 땅값은 비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2014년 물이 새는 낡은 창고에서 시작해, 2017년에는 곧 철거될 예정이던 옛 초콜릿 공장으로, 2022년에는 브뤼셀 지역정부 산하 기관 시티데브(citydev.brussels)가 소유한 에베레의 다빈치 부지로 옮겨 다녔어요. 그리고 2026년 8월, 마침내 이 부지에 대한 30년짜리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었습니다. 소유주는 시민이 쓸 산업용지가 부동산 투기로 흘러가지 않도록 지키고, 로터 디씨는 몇 년 뒤 쫓겨날 걱정 없이 장기 투자를 계획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이 흐름에는 브뤼셀 지역정부의 정책 변화도 있었습니다. 전 브뤼셀 시티 아키텍트 크리스티안 보레트(Kristiaan Borret)는 재임 기간 동안 “철거를 기본값으로 삼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철거는 충분히 정당화될 때만 허용되는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기요는 이 변화를 이렇게 평가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브뤼셀에서는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었어요. 지금은 철거보다 리노베이션이 점점 기본값이 되고 있습니다.”

철거된 자재를 사용한 식당 ⓒRotor DC
폐기된 기차의 테이블을 재사용한 의자 ⓒRotor DC
철거된 체육관의 바닥 패널 ⓒRotor DC

로터 디씨가 만든 가장 중요한 변화는 물건의 이동이 아니라 관점의 이동입니다. 브뤼셀에는 1950~70년대 경제성장기에 지어진 대형 은행·사무실 건물이 유독 많이 쌓여 있었고, 이 건물들이 최근 몇십 년 사이 한꺼번에 철거·리모델링 주기에 들어섰습니다. 로터 디씨 이전에는 이 건물들에서 나오는 자재가 그냥 흙과 함께 묻혔어요. 아무도 그걸 상품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요. 로터 디씨가 한 일은 새로운 자재를 발명한 게 아니라, 이미 도시 안에 있던 것을 지역의 자원이자 상품으로 다시 이름 붙인 것에 가깝습니다.

그 결과 철거업체는 폐기물 처리업자에서 잠재적 공급자로, 부동산 회사는 철거 비용만 걱정하던 입장에서 회수 가능한 자산을 셈하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이 회수한 목재를 세척하는 일자리를 얻었고, 지역 목공소가 그 목재로 가구를 짜는 일감을 얻었어요. 돈의 일부가 해외 원료 채굴 대신 도시 안의 해체와 세척과 목공 노동에 지불되기 시작한 겁니다.

이들이 낸 길 뒤로, 브뤼셀 안에는 비슷한 방식으로 사업을 벌이는 후발주자들이 여럿 생겨났습니다. 로터 디씨는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이들에게도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눠줘요. 시장점유율보다 재사용이라는 산업 자체를 정상적인 것으로 만드는 게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이 모델을 향한 관심은 이제 브뤼셀 바깥에서도 이어지고 있어요. 그렇다고 기요와 기샤르가 이 모델을 다른 도시에 그대로 옮겨 심을 수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로터 디씨가 지금처럼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건, 상업 조직이기 전에 비영리 연구조직 로터가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와 인맥 덕분이었으니까요.

철거중인 바닥 타일 ⓒOlivier Beart

“신뢰와 인맥이 핵심이에요. 어느 도시에 가서 곧바로 이런 식으로 사업을 시작할 수는 없어요. 그 지역에 대한 지식과 오래 쌓은 관계가 필요하거든요.”

기요의 말처럼 로터 디씨는 그동안 쌓아온 것들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2026년 확보한 다빈치 부지의 30년 임대차를 발판으로, 지금의 4,000제곱미터 매장을 넘어 재사용과 수선, 목공 같은 다양한 순환경제 기업들이 함께 입주하는 14,000제곱미터 규모의 복합 거점을 계획하고 있어요. 기존 건물을 헐고 새로 짓는 대신 있는 건물을 고쳐가며, 재사용 자재와 바이오 기반 자재로 채워갈 예정입니다. 기요는 콘크리트 산업이 지금 방식대로 돌아가는 한 재사용이 아무리 커져도 진짜 승부는 어렵다고도 말합니다. 재사용은 더 커져야 하고, 콘크리트 같은 산업은 오히려 지금보다 작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진단이에요.

결국 이들이 증명한 건 특별한 기술이 아니라, 낯익은 동네를 낯설게 다시 보는 새로운 관점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어떤 이유로, 눈에 잘 안 띈다는 이유로 아직 아무도 값을 매기지 않은 무언가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걸 알아보는 데는 아마 새로운 기술보다, 신뢰와 시간을 들여 그 동네를 오래 지켜보는 눈이 먼저 필요하지 않을까요. 


EVERY WEEK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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