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다들 알아주는 것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일들은 의외로 후자 쪽에서 자주 벌어지는 것 같아요. 남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것에 오래도록 마음을 쏟는 사람, 그런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궁금해지고요.
이번 주에는 영국의 유리 브랜드 ‘템스 글래스(Thames Glass)’를 소개합니다.
‘템스 글래스(Thames Glass)’는 영국의 유리 연구자 루루 해리슨(Lulu Harrison)이 만든 유리 브랜드이자 연구 프로젝트입니다. 옥스퍼드셔의 템스강변에서 나고 자란 해리슨은 처음부터 유리를 공부한 건 아니었어요. 2011년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Central Saint Martins)에서 예술·디자인 파운데이션을 마치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는 팰머스 대학교(Falmouth University)에서 사진을 전공했습니다. 유리와 인연을 맺게 된 건 더 나중이었는데요. 콘월(Cornwall) 해안에 살던 시절, 어부들에게 얻은 조개껍데기를 여러 접착제와 섞어보는 실험을 하다가, 조개껍데기의 탄산칼슘 성분이 유리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안정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본격적인 연구를 위해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의 머티리얼 퓨처스(Material Futures) 석사 과정에 들어갔고, 2022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면서 다시 고향인 템스강 프로젝트에 전념했습니다. 지금도 스스로를 ‘독학으로 유리를 배운 사람’이라고 소개하는데요. 2022년 인터뷰에서 그는 이 연구를 시작한 계기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자재를 캐내는 일이 점점 더 심각한 환경 문제가 되고, 운송 비용과 탄소 배출도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 저는 유리 제조에 흔히 쓰이는 고도로 가공된 유한한 원료를 대신할 대안을 찾는 데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템스강은 빅벤과 타워브리지를 끼고 흐르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입니다. 그런데 해리슨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건 그 풍경의 뒤편이었습니다. 강바닥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모래가 그냥 쌓여 있었고, 상수도관 안쪽에는 원래 이 강에 없던 침입종 조개가 다닥다닥 달라붙어 골칫거리 취급을 받고 있었죠. 강변에 있던 오래된 술집과 여관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요. 해리슨이 영감을 받은 건 중세 유럽의 ‘포레스트 글래스(Forest Glass)’ 같은 오래된 제조법입니다. 그 시절 유리 장인들은 지금처럼 정제된 규사와 소다회, 석회석을 먼 곳에서 실어오는 대신에 주변 숲의 재와 모래로 유리를 만들었어요. 지역마다 원료가 달랐으니 유리의 색과 질감도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해리슨은 이걸 와인의 ‘테루아(terroir)’ 개념에 빗대어 설명합니다. 포도밭의 토양과 기후가 와인 맛을 결정짓듯이 유리도 어느 강, 어느 숲에서 재료를 가져왔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표정을 갖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이 방식을 ‘지오 스페시픽 글래스(geo-specific glass)’, 굳이 옮기면 ‘장소 특정적 유리’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 템스 레시피의 원리는 비교적 단순해요. 모래는 유리의 뼈대가 되는 규사 성분을, 목재나 식물을 태운 재는 유리의 녹는점을 낮춰주는 알칼리 성분을, 탄산칼슘이 풍부한 조개껍데기는 유리를 단단하게 잡아주는 안정제 역할을 합니다. 다만 정확한 배합 비율은 회차마다 조금씩 달라서 레시피마다 배합이 계속 바뀌는 지속적인 연구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레시피에 들어가는 콰가 홍합(quagga mussel)입니다. 이 조개는 원래 이 강에 없던 침입종이에요. 상수도관 안쪽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배관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수도 회사 템스 워터(Thames Water)는 이걸 정기적으로 제거해야 하는데요. 해리슨은 템스 워터의 생물다양성 담당자 레베카 엘리엇(Rebecca Elliott)과 협업하면서 어차피 막대한 비용을 들여 치워야 하는 이 골칫거리 조개껍데기를 가루로 빻아 유리 배합에 넣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어차피 없애야 했던 생태계 관리 폐기물에 다른 쓸모를 찾아준 셈이에요. 완성된 유리는 철분 함량 때문에 청록색을 띠는데, 해리슨은 이 색이 마치 강물 그 자체를 닮았다고 말합니다.
템스 글래스가 만들어지는 과정도 인상적입니다. 채취한 모래와 재, 조개껍데기를 씻고 말리고 태우고 곱게 갈아 가루로 만든 뒤, 작은 도가니에서 시험 배합을 해봅니다. 여기서 성공한 배합만 좀 더 큰 가마로 옮겨 규모를 키우고, 숙련된 유리공예가가 이걸 불어서 모양을 잡거나 틀에 부어 성형한 다음에 가마 안에서 천천히 식혀 마무리해요.
유리공예가 사샤 들라브르(Sacha Delabre)와 로지 파워(Rosie Power), KT 로테(KT Rothe)가 실제 용융과 성형을 담당하고, 셰필드핼럼대학교(Sheffield Hallam University)의 유리·세라믹 연구센터가 성분 분석과 강도·내구성 실험을 지원합니다. 영국 지질조사국의 사이먼 체너리(Simon Chenery) 박사와 유리고고학자 이언 프리스톤(Ian Freestone), 줄리언 헨더슨(Julian Henderson) 같은 학자들도 이 연구에 힘을 보탰고요. 제품 디자인은 히어 디자인(Here Design)이 맡아 카라페와 텀블러 프로토타입, 브랜드 로고 스탬프를 함께 만들었습니다. 2023년에는 위스키 브랜드가 후원하는 QEST 장학금으로 뉴캐슬대학교(Newcastle University)의 고대유리 전문가 클로이 덕워스(Chloe Duckworth) 박사에게 6개월간 원료 조달과 배합법을 배우며 서른 개가 넘는 레시피를 시험했습니다.
이 소재를 건축으로 확장하려는 아이디어도 흥미로운데요. 건축 스튜디오 뷰로 드 샹주(Bureau de Change)와 함께 19세기 런던의 위생 인프라를 만들었던 로열 덜튼(Royal Doulton)의 오래된 수도관과 굴뚝 장식 무늬를 가져와 유리 타일로 재해석했고, ‘사라진 템스강변 펍 세 곳을 빛나는 유리 파사드로 되살린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뷰로 드 샹주의 빌리 마브로풀로스(Billy Mavropoulos)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공정은 버려지는 조개껍데기를 활용할 뿐 아니라, 기존 유리 제조보다 필요한 모래의 양도 줄여줍니다.”
템스 글래스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고민하는 지점이 ‘이 동네의 특산물이 뭘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침입종 조개껍데기, 강가의 흔한 모래, 런던의 오래된 배관 산업사, 사라진 강변 술집. 원래 서로 아무 상관 없던 것들이 유리라는 매개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엮는 데에 집중하고 있죠. 2025년 디자인뮤지엄 심사위원단은 이 점을 특히 높이 평가했습니다.
“해리슨이 템스 글래스를 개발하는 방법론은 놀랍습니다. 원료가 어디서 오는지를 지도로 그리고, 이를 관객이 이해하기 쉽게 시각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연구자이자 커뮤니케이터입니다.”
이 단계에서 템스 글래스가 보여주는 진짜 가치는 완성된 비즈니스 모델이라기보다 지역의 폐자원을 문화·디자인 자산으로 바꾸는 방법론을 실제로 증명해 보였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네덜란드의 아틀리에 엔엘(Atelier NL)은 지역마다 다른 모래로 유리를 만들어 “지질이 곧 디자인이 된다”는 접근을 가장 먼저 보여준 선례입니다. 스튜디오 플라스틱(Studio Plastique)과 스뇌헤타(Snøhetta)가 협업한 포라이트(Forite)는 폐가전 유리를 모아 건축용 타일로 만드는 데까지 나아갔고요. 스페인 사르데냐 지역의 조개껍데기를 3년간 연구해 실제 스포츠 트랙 소재로 공급망까지 구축한 몬도(Mondo)와 니에디타스(Nieddittas)의 사례는 템스 글래스의 다음 단계를 미리 보여주는 좋은 참고점입니다.
해리슨의 실험은 템스강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잉글랜드 남서쪽 끝 콘월의 작은 어촌 포위(Fowey)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벌였어요. 이곳 조개잡이 어장 포위 피셔리(Fowey Fishery)에서 나오는 가리비 껍데기 폐기물을 가져다가 이탈리아 베네치아 무라노(Murano)의 유리공예가 벤저민 린텔(Benjamin Lintell)과 손잡고 유리 원반 시리즈를 만들었습니다. 곱게 부순 가리비 껍데기 위에 뜨거운 유리를 굴려 질감과 기포를 만들고, 이걸 다시 불어서 큰 원반으로 만든 뒤 작은 조각으로 잘라낸 결과물이에요. 흰색부터 짙은 청색, 금색까지 색깔마다 대여섯 개씩만 만드는 한정판이고요. 해리슨은 콘월의 어업이 수백 년째 이 지역의 문화와 정체성을 지탱해 온 산업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포위 피셔리 프로젝트는 템스강에서의 시도를 완전히 다른 조건과 환경을 가지고 있는 마을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하나의 강에서 검증한 방법론이 이렇게 다른 바다, 다른 산업, 심지어 이탈리아의 오랜 유리 전통과도 만날 수 있다는 건 이 방식이 템스강이라는 한 장소에 묶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어디로든 옮겨 심을 수 있는 적응가능한 방법론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강바닥의 흔한 모래와, 배관을 막던 골칫거리 조개껍데기, 그리고 이제는 사라진 강변 술집의 기억. 사실 수면 아래에는 아무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것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해리슨이 한 일은 새로운 무언가를 발명한 것이 아니라 그 수면 아래에 처음으로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닐까요?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