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최전선에서
모든 것은 정치적입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 거리를 걷는 것, 침묵하거나 말하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조차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로 인식되죠.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이란 단어는 단순히 이념이나 투쟁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삶을 지키고,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각자의 목소리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때로는 함께 모여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측면에서, 정치적이라는 건 어쩌면 가장 따뜻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요?
이번 주에는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에서 새로운 방식의 연대를 탐구하는 복합문화공간 원더 캐비닛(Wonder Cabinet)을 소개합니다.
원더 캐비닛(Wonder Cabinet)을 이야기할 때에 AAU 아나스타스(AAU Anastas)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AAU 아나스타스는 형제 건축가인 엘리아스 아나스타스(Elias Anastas)와 유서프 아나스타스(Yousef Anastas)가 공동으로 설립한, 팔레스타인 베들레헴과 프랑스 파리에 기반을 둔 건축 스튜디오인데요. 건축을 ‘건물을 짓는 최종 결과물이 아닌 하나의 과정’으로 정의하는 아나스타스 형제의 프로젝트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확장하고 있습니다.
아나스타스 형제는 2011년부터 ‘로컬 인더스트리즈(Local Industries)’라는 이름의 가구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로컬 인더스트리즈는 지역의 장인들이 제작한 기능성 가구를 해외 시장에 소개하고 있는데요. 팔레스타인의 지역 노동력을 전통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역할에서 벗어나, 그 가치를 재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가구를 통해 지역 공동체와의 연대를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아나스타스 형제는 ‘라디오 알하라(Radio Alhara)’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라디오 알하라는 2020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초기에 봉쇄로 인한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이 온라인 플랫폼은 건축가인 아나스타스 형제를 비롯해, 예술가이자 라말라의 칼릴리 사카키니 재단(Khalil Sakakini Foundation)의 디렉터인 야잔 칼릴리(Yazan Khalili),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터보(Turbo)의 사이드 아부 자베르(Saeed Abu-Jaber)와 모타나 후세인(Mothanna Hussein)이 함께 만들었는데요. 단 두 시간 만에 준비되어, 그날 밤 바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격리 기간 동안 라디오 알하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없이도, 전 세계의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를 잇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알하라(Alhara)’는 아랍어로 ‘이웃, 동네(neighborhood)’를 뜻하는데요. 라디오 알하라는 어떤 지리적 경계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웃이자 동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공장소도, 박물관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클럽도 사라진 펜데믹 시기에 그 공백을 메운 것이 바로 라디오 알하라였습니다.
라디오 알하라의 음악은 팔레스타인 드릴, 레바논 트립합, 70년대 모로코 디스코와 이란 팝, 일본 앰비언트, 바레인 웨딩 발라드 등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마이크로장르와 언더그라운드 장르까지 이어지는데요.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에 있을 법한 곡들과 샤잠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곡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는 현대의 알고리즘 큐레이션과는 정반대로,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이 직접 참여하는 상호 협력적인 온라인 공동체의 독특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작곡가 디라르 칼라시(Dirar Kalash)는 라디오 알하라에 대해서 애트모스(Atmos)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라디오 알하라에서 흥미롭게 느끼는 점은, 이 네트워크가 중앙집중형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라디오 알하라의 중심이 어디인지, 방송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죠. 청취자도 마찬가지예요. 지난 석 달 동안 유럽 투어를 다니면서 매번 적어도 두세 명은 라디오 알하라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은 방송국과 직접적인 연결이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분법적인 표현은 좋아하지 않지만, 라디오 알하라를 ‘세계적이면서 지역적이고, 지역적이면서 세계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에요.
로컬 인더스트리즈에서 라디오 알하라를 거쳐 탄생한 원더 캐비닛(Wonder Cabinet)은 베들레헴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아나스타스 형제가 직접 설계한 이 다목적 공간은 작은 전시장과 디자이너 및 예술가들을 위한 실험실, 라디오 알하라(Radio Alhara)의 첫 번째 오프라인 스튜디오가 함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레지던시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지역 아티스트의 제품을 소개하는 소규모 상점 원더샵(Wonder Shop), 영화관, 로컬 인더스트리즈(Local Industries)의 쇼룸, 그리고 아나스타스 형제의 건축 스튜디오 AAU 아나스타스(AAU Anastas)의 사무실 역시 이 공간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가 뒤섞이는 구조 자체가 원더 캐비닛의 핵심입니다. 원더 캐비닛이라는 이름은 박물관의 원형으로 알려진 16-17세기 유럽의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에서 따온 것인데요. 중세 유럽에서는 호기심이 지적인 탐구 정신을 상징했지만, 이곳 베들레헴에서의 호기심은 이국적인 취향과 외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동네에서 매일 마주치는 갈등과 정의 내릴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연대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원더 캐비닛이라는 이름에 대해 공동 창업자 엘리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영역 간의 새로운 만남을 유도하려고 해요. 예상치 못한 놀라움에 열려 있는 상태, 그게 바로 이 공간의 태도입니다. 중동 지역의 여러 곳에서는 원더 캐비닛이라는 아랍어 표현이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동의 장소’, 일종의 반-공공적인 거실(semi-public living room)의 의미로도 쓰이거든요.”
원더 캐비닛이 위치한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로 잘 알려진 성지입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서쪽 경계에 위치하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불과 5km 가량 떨어져 있어서 정치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원더 캐비닛이 베들레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크고 민감한 이슈는 지속적인 이스라엘의 점령입니다. 더군다나 팔레스타인 예술계의 중심이 주로 행정수도인 라말라(Ramallah)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베들레헴을 기반으로 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스타스 형제는 예술가들이 직접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팔레스타인이 지닌 지식과 실험적 생산 방식의 가능성을 몸소 경험할 수 있도록 초대함으로써 외부의 관심을 유도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합니다.
“원더 캐비닛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반응(reaction)이에요. 우리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을 바라보기만 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에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참여하길 바랍니다.”
원더 캐비닛의 계단에는 눈에 띄는 원뿔 형태의 창문이 있는데요. 지역의 콘크리트 사일로 제작자와 협업하여 만든 이 창문은 지역의 기술을 현대적인 건축의 어휘로 풀어내는 실험적인 접근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창문은 단순한 조형적 실험을 넘어, 섬세한 블랙 코미디-정치적 은유를 담고 있는데요. 창문은 정확하게 이스라엘의 하르 호마(Har Homa) 정착촌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밤에 창문을 들여다보면, 어두운 팔레스타인 지역의 마을과는 대조적으로 전기가 충분히 공급돼 환하게 빛나고 있는 이스라엘의 정착촌이 보입니다. 이에 대해 엘리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약간의 아이러니지만, 우리는 지금 그 정착촌의 조명을 활용해 이 계단을 밝히고 있는 셈이죠.”
원더 캐비닛은 단순히 대안적인 미술관이나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점령의 경계선에 놓인 도시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움직임과 말, 음악, 식사, 창작이 교차하면서, 공공성의 감각-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을 다시 회복하는 일종의 기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아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공공 공간은 이제 권력이 힘을 행사하는 장치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공공적인 것’ 자체를 의심하게 됐죠. 우리가 하고 싶은 건, 그 개념을 되찾는 거예요. 이 동네 전체를 하나의 실험적 프레임워크로 삼는 것이죠.”
아나스타스가 형제가 말하는 공공성은 소유나 통제의 개념이 아닙니다. 머무를 수 있고, 섞일 수 있으며, 서로의 감각이 겹쳐지는 상태에 가까워요. 주방에서 구워지는 빵 냄새가 복도를 지나고, 익명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먼 도시로 흘러가며, 지역 아이들이 창 너머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일상의 풍경이자, 동시에 지금 이 자리에서 가능한 가장 조용한 실천이 아닐까요.
이곳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누구와 함께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시작이 어떤 태도로 이루어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감각으로 최전선에 서있는 걸까요?
글
EVERY WEEK Editor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