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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최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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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정치적입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 거리를 걷는 것, 침묵하거나 말하는 것, 그리고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조차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로 인식되죠. 여기서 말하는 ‘정치적’이란 단어는 단순히 이념이나 투쟁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삶을 지키고,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행위에 가깝습니다.

각자의 목소리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때로는 함께 모여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의 측면에서, 정치적이라는 건 어쩌면 가장 따뜻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공동체를 회복하는 일이 아닐까요?

이번 주에는 로컬과 글로벌의 경계에서 새로운 방식의 연대를 탐구하는 복합문화공간 원더 캐비닛(Wonder Cabinet)을 소개합니다. 

엘리아스와 유서프 아나스타스 형제 ⓒJaroslaw Miko

원더 캐비닛(Wonder Cabinet)을 이야기할 때에 AAU 아나스타스(AAU Anastas)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AAU 아나스타스는 형제 건축가인 엘리아스 아나스타스(Elias Anastas)와 유서프 아나스타스(Yousef Anastas)가 공동으로 설립한, 팔레스타인 베들레헴과 프랑스 파리에 기반을 둔 건축 스튜디오인데요. 건축을 ‘건물을 짓는 최종 결과물이 아닌 하나의 과정’으로 정의하는 아나스타스 형제의 프로젝트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확장하고 있습니다.

로컬 인더스트리즈의 투투 라운지 체어 ⓒLocal Industries

아나스타스 형제는 2011년부터 ‘로컬 인더스트리즈(Local Industries)’라는 이름의 가구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로컬 인더스트리즈는 지역의 장인들이 제작한 기능성 가구를 해외 시장에 소개하고 있는데요. 팔레스타인의 지역 노동력을 전통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역할에서 벗어나, 그 가치를 재확인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가구를 통해 지역 공동체와의 연대를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한 아나스타스 형제는 ‘라디오 알하라(Radio Alhara)’ 프로젝트를 통해 국제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라디오 알하라는 2020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초기에 봉쇄로 인한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이 온라인 플랫폼은 건축가인 아나스타스 형제를 비롯해, 예술가이자 라말라의 칼릴리 사카키니 재단(Khalil Sakakini Foundation)의 디렉터인 야잔 칼릴리(Yazan Khalili),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터보(Turbo)의 사이드 아부 자베르(Saeed Abu-Jaber)와 모타나 후세인(Mothanna Hussein)이 함께 만들었는데요. 단 두 시간 만에 준비되어, 그날 밤 바로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격리 기간 동안 라디오 알하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없이도, 전 세계의 크리에이티브 커뮤니티를 잇는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라디오 알하라의 프로그램들 ⓒRadio Alhara, Scene Noise

‘알하라(Alhara)’는 아랍어로 ‘이웃, 동네(neighborhood)’를 뜻하는데요. 라디오 알하라는 어떤 지리적 경계로도 설명할 수 없는 이웃이자 동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공장소도, 박물관도,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클럽도 사라진 펜데믹 시기에 그 공백을 메운 것이 바로 라디오 알하라였습니다. 

라디오 알하라의 음악은 팔레스타인 드릴, 레바논 트립합, 70년대 모로코 디스코와 이란 팝, 일본 앰비언트, 바레인 웨딩 발라드 등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마이크로장르와 언더그라운드 장르까지 이어지는데요.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에 있을 법한 곡들과 샤잠에서는 찾을 수 없는 독특한 곡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이는 현대의 알고리즘 큐레이션과는 정반대로, 음악을 소비하는 사람이 직접 참여하는 상호 협력적인 온라인 공동체의 독특한 사례를 보여줍니다. 작곡가 디라르 칼라시(Dirar Kalash)는 라디오 알하라에 대해서 애트모스(Atmos)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제가 라디오 알하라에서 흥미롭게 느끼는 점은, 이 네트워크가 중앙집중형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라디오 알하라의 중심이 어디인지, 방송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죠. 청취자도 마찬가지예요. 지난 석 달 동안 유럽 투어를 다니면서 매번 적어도 두세 명은 라디오 알하라를 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 대부분은 방송국과 직접적인 연결이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이분법적인 표현은 좋아하지 않지만, 라디오 알하라를 ‘세계적이면서 지역적이고, 지역적이면서 세계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건 정말 흥미로운 일이에요.

원더 캐비닛 ⓒMikaela Burstow

로컬 인더스트리즈에서 라디오 알하라를 거쳐 탄생한 원더 캐비닛(Wonder Cabinet)은 베들레헴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입니다. 아나스타스 형제가 직접 설계한 이 다목적 공간은 작은 전시장과 디자이너 및 예술가들을 위한 실험실, 라디오 알하라(Radio Alhara)의 첫 번째 오프라인 스튜디오가 함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레지던시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지역 아티스트의 제품을 소개하는 소규모 상점 원더샵(Wonder Shop), 영화관, 로컬 인더스트리즈(Local Industries)의 쇼룸, 그리고 아나스타스 형제의 건축 스튜디오 AAU 아나스타스(AAU Anastas)의 사무실 역시 이 공간의 일부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분야가 뒤섞이는 구조 자체가 원더 캐비닛의 핵심입니다. 원더 캐비닛이라는 이름은 박물관의 원형으로 알려진 16-17세기 유럽의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에서 따온 것인데요. 중세 유럽에서는 호기심이 지적인 탐구 정신을 상징했지만, 이곳 베들레헴에서의 호기심은 이국적인 취향과 외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동네에서 매일 마주치는 갈등과 정의 내릴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현실에 저항하기 위한 연대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원더 캐비닛이라는 이름에 대해 공동 창업자 엘리아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영역 간의 새로운 만남을 유도하려고 해요. 예상치 못한 놀라움에 열려 있는 상태, 그게 바로 이 공간의 태도입니다. 중동 지역의 여러 곳에서는 원더 캐비닛이라는 아랍어 표현이 ‘사람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공동의 장소’, 일종의 반-공공적인 거실(semi-public living room)의 의미로도 쓰이거든요.”

원더 캐비닛의 내부 ⓒMikaela Burstow
원더 캐비닛의 내부 ⓒMikaela Burstow
원더 캐비닛의 내부 ⓒMikaela Burstow

원더 캐비닛이 위치한 베들레헴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로 잘 알려진 성지입니다. 동시에 팔레스타인의 서쪽 경계에 위치하고,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불과 5km 가량 떨어져 있어서 정치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 지역 중 하나입니다.

원더 캐비닛이 베들레헴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크고 민감한 이슈는 지속적인 이스라엘의 점령입니다. 더군다나 팔레스타인 예술계의 중심이 주로 행정수도인 라말라(Ramallah)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베들레헴을 기반으로 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스타스 형제는 예술가들이 직접 이곳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팔레스타인이 지닌 지식과 실험적 생산 방식의 가능성을 몸소 경험할 수 있도록 초대함으로써 외부의 관심을 유도하는 계기를 만들고 싶다고 말합니다. 

“원더 캐비닛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반응(reaction)이에요. 우리는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을 바라보기만 하는 대신, 팔레스타인에서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참여하길 바랍니다.”

원더 캐비닛의 상징적인 원뿔 창문 ⓒMikaela Burstow
원더 캐비닛의 상징적인 원뿔 창문으로 바라본 이스라엘 정착촌 ⓒRyan Brand

원더 캐비닛의 계단에는 눈에 띄는 원뿔 형태의 창문이 있는데요. 지역의 콘크리트 사일로 제작자와 협업하여 만든 이 창문은 지역의 기술을 현대적인 건축의 어휘로 풀어내는 실험적인 접근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창문은 단순한 조형적 실험을 넘어, 섬세한 블랙 코미디-정치적 은유를 담고 있는데요. 창문은 정확하게 이스라엘의 하르 호마(Har Homa) 정착촌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밤에 창문을 들여다보면, 어두운 팔레스타인 지역의 마을과는 대조적으로 전기가 충분히 공급돼 환하게 빛나고 있는 이스라엘의 정착촌이 보입니다. 이에 대해 엘리아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약간의 아이러니지만, 우리는 지금 그 정착촌의 조명을 활용해 이 계단을 밝히고 있는 셈이죠.”

원더 캐비닛 ⓒMikaela Burstow

원더 캐비닛은 단순히 대안적인 미술관이나 지역의 커뮤니티 공간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점령의 경계선에 놓인 도시의 한복판에서, 사람들의 움직임과 말, 음악, 식사, 창작이 교차하면서, 공공성의 감각-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은-을 다시 회복하는 일종의 기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리아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공공 공간은 이제 권력이 힘을 행사하는 장치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공공적인 것’ 자체를 의심하게 됐죠. 우리가 하고 싶은 건, 그 개념을 되찾는 거예요. 이 동네 전체를 하나의 실험적 프레임워크로 삼는 것이죠.” 

아나스타스가 형제가 말하는 공공성은 소유나 통제의 개념이 아닙니다. 머무를 수 있고, 섞일 수 있으며, 서로의 감각이 겹쳐지는 상태에 가까워요. 주방에서 구워지는 빵 냄새가 복도를 지나고, 익명의 목소리가 라디오를 통해 먼 도시로 흘러가며, 지역 아이들이 창 너머에서 바깥을 바라보는 것. 그것은 일상의 풍경이자, 동시에 지금 이 자리에서 가능한 가장 조용한 실천이 아닐까요.

이곳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보다 더 중요한 건, 무엇을 누구와 함께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시작이 어떤 태도로 이루어지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어떤 감각으로 최전선에 서있는 걸까요?


EVERY WEEK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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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읽는 창문

거리를 읽는 창문

어떤 도시든, 진짜 표정은 거리에서 드러납니다. 큰 광장이나 유명한 랜드마크보다, 오히려 골목 어귀의 간판이나 자전거 바퀴 소리, 벽에 붙은 포스터 같은 사소한 것들이 그곳만의 분위기를 만들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거리에서 이런 작은 세계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깔끔하지만 어디서 본 듯한 매장들이 그 자리를 채웠고요.

거리마다 고유한 색을 입히던 요소들이 점점 빠져나가면서, 도시의 얼굴도 낯설 만큼 비슷해졌습니다. 어쩌면 요즘 거리들이 자꾸만 닮아가는 건, 이런 ‘작지만 중요한 것들’이 빠져 있기 때문 아닐까요?

이번 주에는 거리의 감각을 만드는 키오스크, 뉴스앤커피(New & Coffee) 소개합니다.

뉴스앤커피 ⓒCarissa Díaz Alemán

뉴스앤커피는 말 그대로 새로운 소식과 커피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어느 거리에서든 현지에서 제작된 독립 매거진이나 소규모 출판물, 혹은 신문을 진열해두고 있는데요. 그것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그 도시의 공기와 정서를 읽는 미디어인 셈입니다.

뉴스앤커피는 4명의 친구인 파블로(Pablo), 다비데(Davide), 야엘(Yaël), 고티에(Gautier)가 공동으로 창업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독립 잡지와 커피에 관심이 많았던 그들은, 거리에 설치된 오래된 키오스크에서 늘 뭔가를 발견하곤 했는데요. 낡고 구겨진 종이 냄새, 마주 오는 사람들과의 짧은 눈빛 교환, 그리고 무심히 들려오는 하루의 이야기들. 그들은 그 감각이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공동 창업자인 고티에는 오픈하우스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뉴스앤커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도시가 가진 가치는 결국 이웃의 가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겉보기엔 전혀 다를 것 같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는 거죠. 매일 에티오피아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마시러 오는 힙스터도 있고, ‘New Aesthetics’나 ‘BranD’ 같은 매거진을 보러 오는 그래픽 디자인 전공 학생도 있어요. 또 한편으로는 신문을 사러 왔다가 날씨나 젊은 세대, 시끄러운 거리 얘기를 하며 툴툴대는 어르신들도 있죠.”

페이퍼하우스 by 뉴스앤커피 ⓒFranz Galo

뉴스앤커피의 철학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지점 중 하나는 런던에 위치한 페이퍼 하우스(Paper House) 입니다. 킹스크로스 지역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켄싱턴 첼시 자치구의 전통적인 신문 키오스크를 재구성하기 위해 2002년에 영국의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디자인했는데요. 런던의 키오스크가 감소하면서 버려진 유휴공간이 뉴스앤커피의 런던 두 번째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페이퍼 하우스는 작지만 소규모 전시, 인쇄 워크숍 등이 유기적으로 열리는 복합 공간을 지향하고 있는데요. 직접 수입하고 로스팅한 최고의 싱글 오리진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23개국에서 발행된 120여 권의 독립 잡지와 서적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뉴스앤커피 ⓒFranz Galo
뉴스앤커피 ⓒCarissa Díaz Alemán

뉴스앤커피의 가장 흥미로운 철학 중 하나는 확장하는 방식에 대한 것입니다. 커피와 잡지를 매개로 도시의 거리를 읽어내고, 각기 다른 지역성과 공존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하나의 ‘거점 네트워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데요. 파리, 암스테르담, 멕시코시티, 그리고 런던까지, 그들은 프랜차이즈라는 말이 지닌 획일적인 이미지를 거부하며, 각 도시의 언어와 미감에 맞춘 장소를 하나씩 쌓아 나가고 있습니다. 공동 창업자 중 한명인 야엘은 뉴스앤커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뉴스앤커피가 특별한 이유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 자연스럽게 다가온다는 거예요. 거리 한복판에 있는 뉴스스탠드라는 형태 자체가 사람들과의 연결을 만들어주거든요.”

 

뉴스앤커피의 지점 소개 ⓒNews & Coffee
뉴스앤커피의 지점 소개 ⓒNews & Coffee
뉴스앤커피의 지점 소개 ⓒNews & Coffee

프랜차이즈 브랜드가 각 지점을 서로 다르게 구성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통일성과 효율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그만큼 감수해야 할 리스크와 손실이 뒤따르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뉴스앤커피는 바로 그 부분이 오늘날의 브랜드가 감당해야 할 윤리적 무게라고 말합니다. 

뉴스앤커피는 언제나 ‘무엇을 더할까’보다 ‘이 동네에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파리 마레 지점은 예술 서적에 특화된 콘텐츠를 다루고, 암스테르담은 지역 커뮤니티 라디오와 협업해 커피 옆에 이어폰을 꽂을 수 있는 청취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뉴스앤커피의 웹사이트에는 각 지점의 위치와 정보를 소개하는 페이지가 있는데요. 도시의 분위기와 거리의 개성을 담아 각각의 매장의 개성을 담은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투박하고 이상한 구석이 있지만, 정말로 어디선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매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뉴스앤커피가 지역을 존중하는 방식이고, 브랜드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이야기하는 멋진 대답이 아닐까요.

뉴스앤커피의 라이브 세션 ⓒNews & Coffee
뉴스앤커피 웹페이지 ⓒNews & Coffee

뉴스앤커피가 오프라인 지점을 확장하는 방식만큼이나, 온라인을 통해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식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경계없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이웃과 동네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는데요. 

뉴스앤커피는 매장에서 라이브 세션을 열고, 이를 촬영해서 전 세계 누구나 함께 감상할 수 있는 형태의 콘텐츠로 만듭니다. 그렇게 완성된 세션 영상은 웹사이트와 SNS에 차곡차곡 기록해서, 지구 반대편에서도 세션이 열리는 거리의 현장감과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뉴스앤커피의 웹사이트의 상단에는 각 지점의 분위기에 맞는 장르의 플레이리스트가 재생되는데요. 마치 뉴스앤커피 매장 한쪽에 앉아 음악을 듣는 듯한 감각이 듭니다. 이 방식은 물리적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어느 도시에서든 누군가의 일상에 조용히 참여하는, 디지털 시대의 이웃이랄까요. 

기술을 통한 이웃의 지평을 넓히는 동시에, 사람을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것의 소중함도 놓치지 않습니다. 각 지점에서 만난 단골 손님들을 인터뷰해 웹 매거진 형태로 발행하고 있는데요. 취향과 직업, 도시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담겨있는 이 콘텐츠들은 단순한 브랜드를 알리는 일을 넘어, 음악과 커피, 책과 도시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뉴스앤커피만의 독특한 커뮤니티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뉴스앤커피 ⓒCarissa Díaz Alemán
뉴스앤커피 ⓒCarissa Díaz Alemán

뉴스앤커피 공동 창업자인 야엘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에 대해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디아고날 뉴스스탠드에서 있었던 일 중, 절대 잊지 못할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매일 신문을 사러 오시던 일본인 어르신이 계셨는데, 말수는 거의 없으셨지만 우리가 항상 스탠드 밖으로 나가 신문을 건네드리고 팔짱에 끼워드리곤 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분이 보이지 않기 시작했어요. 몇 주 뒤, 두 명의 일본 여성분이 뉴스스탠드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더라고요. 다가와서 말씀하시길, 돌아가신 그 어르신의 가족분들이라고 하셨어요. 생전에 매일 통화하셨는데, 저희가 너무 잘 챙겨줬다고, 이 뉴스스탠드에 가는 게 하루 중 가장 큰 기쁨이었다고 늘 말씀하셨대요. 그래서 그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 일부러 바르셀로나까지 오셨다고 하시면서, 사진도 찍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셨어요. 어르신의 마지막 날들을 밝혀줬던 소소한 기쁨이 어떤 것이었는지 기억하고 싶으셨던 거죠. 제게는 이 이야기가 정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에요.”

도시를 진짜 도시답게 만드는 건 그 안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인사, 짧은 대화, 반복되는 일상의 몸짓들이야말로 도시의 개성입니다. 이웃과 나눈 소소한 교감들이 모여 도시라는 것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마주하고 기억하느냐에 따라 도시의 성격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품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로봇과 AI가 일상이 되는 시대에 이웃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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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가게의 비밀

100년 가게의 비밀

일본에서는 매년 약 6만 개의 중소기업이 문을 닫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 경제적 실패가 아니라, 사업을 물려받을 후계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인데요. 2025년까지 후계 문제로 폐업하는 기업이 127만 개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은, 일본 사회가 직면한 인구 감소와 지역 경제 붕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단 일본에 국한된 문제는 아닐텐데요. 

지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보다는 지역의 일과 경제가 지속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당연하지만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번 주에는 지역의 가게들에게 후계자를 찾아주는 사업 승계 서비스 ‘릴레이(Relay)’를 소개합니다.

후계자를 찾는 가게들 ⓒRelay

그동안 일본과 한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 관광지 개발, 랜드마크 건립, 박물관 설립 등의 방법을 활용해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종종 단기적인 효과에 그치거나, 지역 생태계에 이질적인 구조를 만들어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한 동네에 오래된 빵집이 있다고 합시다. 이 빵집은 단순히 빵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의 아침을 책임지고, 아이들의 방과 후 간식이 되며, 동네 주민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장소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고령화되고 후계자가 없으면, 이곳은 문을 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빵집이 사라지면, 동네의 작은 생태계 한 조각도 함께 사라집니다.

릴레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의 기존 사업이 새로운 운영자를 만날 수 있도록 돕습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기업 매각이 아니라, 기존의 사업 철학과 지역 사회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사업 승계를 지원합니다.

3대째를 이을 후계자를 찾은 70년 넘은 오쿠다 혼다 대리점 ⓒRelay
1867년에 창업한 야마모 간장 양조장은 7대째 후계자를 찾았다 ⓒRelay
폐사 직전에 후계자를 찾은 220년된 절 오모리야마 젠젠지 ⓒRelay
마음 맞는 후계자를 찾은 50년된 미야자키현의 장례식장 ⓒRelay

사이토 류타(Saito Ryuta)는 2012년, 지역에 투자할 수 있는 크라우딩 펀딩 플랫폼 ‘파보(Favvo)’를 시작으로 2020년에 ‘라이트-라이트(Light-Right)’를 창업했습니다. ‘지역에 빛을 비춘다’는 슬로건의 라이트-라이트는 릴레이를 운영하는 모회사인데요. 

늘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한 일들에 관심이 많았던 사이토는 지방의 많은 가게와 사업체들이 후계자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폐업의 위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릴 방법 조차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기존의 사업 승계를 도와주는 서비스들은 익명성을 고수하고 있었는데요. 후계자를 찾는 기업들이 어떤 이유로 승계를 원하는 건지, 재무의 건정성이나 핵심 기술은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없다는 것은 후계자를 찾는 일에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사이토는 이것에 착안해서 릴레이의 핵심 가치를 개방성으로 설정하고,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를 구상했습니다. 

“지금, (돈을) 벌고 있는가 벌고 있지 않는가-라고 하는 재무적인 시점 뿐만 아니라, 사업에 대한 마음이나 스토리에 집중해서, 공감을 베이스로 하는 새로운 사업 승계를 실현합니다. 지금까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사업 승계를 긍정적으로 바꿔서, 원하지 않는 폐업을 줄임으로써, 다가올 대폐업의 시대를 대계업의 시대로 대전환시켜 갑니다”

– 릴레이 소개글 중에서

릴레이의 로직 모델 ⓒRelay

릴레이는 기존의 기업 매각 서비스와는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취합니다. 전통적인 M&A 플랫폼은 대기업 중심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수익성과 성장 가능성을 기준으로 거래가 이뤄지는데요. 하지만 릴레이는 지역 소규모 사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운영자의 의지와 지역 커뮤니티의 지속 가능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습니다. 릴레이의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업 등록
    현재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이 자신의 사업을 릴레이 플랫폼에 등록합니다. 이 과정에서 단순한 재무 정보뿐만 아니라, 사업을 운영하며 쌓아온 철학과 지역과의 관계를 상세히 기록하도록 유도합니다.

  2. 승계 희망자 모집
    단순히 ‘사업을 사고 싶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사업을 이어갈 의지가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지원자는 자신의 배경, 사업을 운영하고 싶은 이유 등을 설명해야 하며, 단순한 인수자가 아니라 ‘계승자’라는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3. 매칭 및 협상
    기존 운영자와 승계 희망자가 직접 만나고, 사업 운영의 비전과 철학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릴레이는 이 과정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도록 중재하고,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법적·재정적 지원도 제공합니다.

  4. 승계 이후의 지원
    단순히 사업을 넘기는 것이 끝이 아닙니다. 승계 이후에도 새로운 운영자가 안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네트워크를 연결해주고, 지속적인 컨설팅을 제공합니다.

사업 승계를 통해 지역의 상권과 거리를 바꾸는 프로젝트 Relay the Local ⓒRelay

일본의 국세청에는 사업승계세제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회사나 개인 사업의 후계자가 취득한 일정의 자산에 대해서, 증여세나 상속세의 납세를 유예하는 제도인데요. 회사의 주식 등을 대상으로 하는 법인용 뿐만 아니라, 개인사업자의 사업용 자산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도 별도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사업 승계를 계기로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중소 기업 및 사업 재편, 사업 통합을 수반하는 경영 자원의 인계를 실시하는 중소 기업 등을 지원하는 사업 승계·인계 보조금, 중소기업이 안심하고 M&A에 임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중소기업청에 의해 창설된 M&A 지원 기관 등록 제도 등 국가 차원에서도 체계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릴레이는 이렇게 전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있는 정책적인 방향에 더해, 각 지자체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승계가 필요한 지역의 비즈니스를 발굴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별로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점 위기에 놓인 사업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릴레이 맵(Relay Map)’, 성공적으로 승계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소개하는 ‘릴레이 매거진(Relay Magazine)’, 지역 비즈니스의 승계를 통해 동네의 상권과 거리를 활성화하는 프로젝트 ‘릴레이 더 로컬(Relay the Local)’ 등 B2B와 B2C를 오가는 여러가지 서비스를 꾸준히 만들어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제 3자 사업 승계 커뮤니티 ‘릴레이즈(Relays)’ 입니다. 승계의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친척이 가업을 잇는다거나, 동종 업계에 있던 사람이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인수하는 것만큼이나, 커리어의 연장선에서 사업 승계를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직과 창업 그 사이에 승계라는 선택지가 생겨난 셈인데요. 

“좋아하는 지역으로 이주하고 싶다면, 경력을 변경하고 싶다면, 개업의 꿈을 이루고 싶다면.

기업도 전직도 아닌 제3의 선택지로서
주목을 받고 있는 「제3자 승계」.

릴레이즈는 제3자 승계의 이해를 깊게 하면서 지역이나 커리어, 인생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커뮤니티입니다”

– 릴레이즈 소개글 중에서

어릴 적부터 자주 가던 빵집을 승계받아 창업한 오쓰상 ⓒRelay

창업자 사이토는 릴레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사업을 이어주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삶과 문화를 잇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 가게에는 그곳만의 이야기가 있고, 우리는 그 이야기가 계속되도록 돕고 싶습니다.”

‘릴레이’라는 단어는 이어달리기라는 뜻입니다. 이어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통을 안전하게 넘기는 것이죠. 단순히 빠르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 주자가 제대로 달릴 수 있도록 연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업 승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단순한 매각이 아니라, 기존의 가치를 새로운 운영자가 온전히 이어받는 것 말입니다. 바통이 이어질 때, 비로소 달리기는 계속됩니다. 지역의 작은 가게들이 이어질 때, 그곳의 삶도 지속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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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에도 없는, 어느 곳에나 있는​

어느 곳에도 없는, 어느 곳에나 있는

도시의 흐름은 대부분 예측 가능합니다. 출근길과 퇴근길, 익숙한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 주어진 공간에서 소비하는 일상처럼요. 그러나 가끔 우리는 무언가를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순간을 마주합니다. 콘크리트 사이에 피어난 꽃, 우연히 마주친 옛 친구,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거리의 공연들. 찰나에 가까운 이런 순간들은 대부분 스쳐가서 기억에도 남지 않지만, 마음에 빈 공간이 조금 남아있는 날에는 예상치 못한 의미로 다가오곤 합니다. 꽃을 보고 새로운 취미를 시작한다거나, 오랜 친구 덕에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문득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죠. 

이번 주에는 전 세계를 여행하는 찻집 ‘게릴라 티룸(Guerrilla Tea Room)’을 소개합니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게릴라 티룸 ⓒPierre Sernet

게릴라 티룸(Guerrilla Tea Room)은 뉴욕의 아티스트이자 사진작가 피에르 세르네(Pierre Sernet)가 2003년에 시작한 작품 ‘One‘ 시리즈의 별명입니다. 나무와 금속으로 만든 큐브 모양의 일본식 다실을 세계 곳곳을 돌며 임시로 설치하고, 다양한 문화권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무작위로 초대해서 차 한 잔을 나누는 순간을 기록한 사진 작품입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피에르 세르네는 루브르 박물관의 카루젤 아뜰리에(Ateliers du Carrousel of the Musée du Louvre)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미술 데이터베이스 아트넷(artnet.com) 의 창업자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2003년 1월 1일부터 일본 요미우리 신문의 아트 섹션을 통해 ‘One’ 시리즈를 시작했습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세르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 저는 인터넷에 익명으로 폭력적인 게시물이 퍼지면서 양극화가 심화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중략)

당시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지만, 적어도 예술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 문화, 생활 방식에 대한 무례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얼굴(Faces), 사랑(Love), 죽음(Death), 국적(Nationality), 성(Sex)에 대한 다섯 가지 다른 시리즈를 진행했는데, 모두 장소와 시간에 걸쳐 인류의 공통성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샤를 드골 공항에서 엘리스와 함께 ⓒPierre Sernet

게릴라 티룸이 흥미로운 이유는, 특정한 지역에서 경험한 감각이 다른 곳에서도 동일하게 재현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흔히 지역성을 한정적인 맥락 속에서 바라봅니다. ‘이곳에서만 가능한 경험’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르네는 게릴라 티룸을 통해 한 장소에서 경험한 감각이 전혀 다른 지역에서도 반복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가 열었던 티룸들은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지만, 경험의 본질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손으로 직접 쓴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 조용한 공간에 앉아 느리게 우러나는 차를 기다리는 시간, 낯선 이들과 나누는 짧은 대화,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더 이상 바쁘게 흐르지 않는 도시의 리듬으로 말이죠.

이러한 경험들은 특정한 장소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공통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감각이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게릴라 티룸은 가장 지역적인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공간이 되는 셈인데요. 이것은 게릴라 티룸의 또 다른 이름인 ‘One’ 의 의미와 연결됩니다. 

“일본의 다도는 선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선불교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 사는 것이 근본임을 강조하고 있니다. 19세기 정치가이자 차인이었던 이이 나오스케가 만든 ‘이치고, 이치에’라는 속담에도 이러한 정신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의 이름인 ‘One’은 전 세계 사람들과 한 번 만난 것을 말합니다. 차와 함께 하는 만남의 독특함을 통해 사람들에게 우리가 사는 각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고, 종종 지구의 긴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덧 없는지 잊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고 이것을 깨닫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히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피에르 세르네가 인용한 ‘이치고 이치에( 一期一会, 일기일회)’는 ‘차를 내릴 때에는 일생에 단 한번 있는 만남이라고 생각하고,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 지금 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을 한다’는 뜻으로, 다도에서 유래한 일본의 속담 중 하나 입니다.

하와이 선셋 비치에서 말콤과 함께 ⓒPierre Sernet
후지가와 공장에서 스기모토, 와타나베와 함께 ⓒPierre Sernet
인도 자이살메르에서 케스, 메인데비와 함께 ⓒPierre Sernet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섀넌과 함께 ⓒPierre Sernet
중국 상하이에서 쿠오 춘과 함께 ⓒPierre Sernet
태국에서 파다응과 함께 ⓒPierre Sernet
파리 팔레 드 도쿄에서 다니엘, 실비와 함께 ⓒPierre Sernet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데이비드와 함께 ⓒPierre Sernet
뉴욕 록펠러 센터에서 신야와 함께 ⓒPierre Sernet

게릴라 티룸은 한 도시에서 열렸다가 사라지고, 또 다른 도시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런던, 뉴욕, 도쿄, 베를린—그의 티룸은 어디에서도 열릴 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티룸이 만들어지는 순간, 그곳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 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게릴라 티룸은 지역성과 장소성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하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니다. 우리는 흔히 지역성을 특정한 장소에 국한된 특수한 감각으로 이해하지만, 세르네는 이것을 다르게 바라봤습니다. 그는 차(茶)라는 매개체를 통해 공간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꾸고, 같은 감각을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유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곳과 저곳이 다르지 않음을, 그리고 결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각을 나눌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는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오래된 가게가 사라지고, 새로운 건물이 세워집니다. 그러나 공간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 때문입니다. 게릴라 티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곳에서 차를 마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오래 남아 있습니다.

세르네는 장소성을 단순한 물리적 개념이 아니라, 감각과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바라봅니다. 그의 티룸이 특정한 공간에 머무르지 않으면서도, 어디에서든 같은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게릴라 티룸은 어느 곳에도 없지만, 어느 곳이나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마음만 먹으면 나만의 새로운 게릴라 티룸을 열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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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직조하는 기술

관계를 직조하는 기술

극한의 환경을 견디는 화성 탐사선과 모든 질문에 척척 답을 내놓는 인공지능만큼이나, 미나 페르호넨이나 로로피아나의 원단에서도 인류에 대한 경외감이 들곤 합니다. 털 한 가닥을 이리저리 엮어서 마법같은 장면을 만드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화된다고 할까요. 서로 다른 굵기, 색깔, 질감을 가진 얇고 가녀린 실들이 교차하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쌓여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입니다. 매력적인 동네를 만드는 것도 비슷한 일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주에는 독자적인 관점으로 지역의 거점을 만드는 가루이자와 커먼그라운즈(Karuizawa Commongrounds) 소개합니다.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 ⓒNacasa & Partners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 정도 떨어진 가루이자와는 일본의 유명한 별장지 중 하나입니다. 세이부 그룹의 창립자와 호시노 가문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 스키장과 고급 온천, 아웃렛이 있어 도쿄도 인근에 사는 사람들이 주말에 즐겨 찾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최근 가루이자와는 ‘후쿠고시 학원’이나, ‘UWC ISAK JAPAN’와 같은 독특한 교육 시설과 교육 정책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이민자와 거주민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커먼 그라운즈가 탄생하게 된 배경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5년을 기점으로 가루이자와는 서점이 없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츠타야 서점(Tsutaya Bookstore)을 중심으로 하는 복합공간 티 사이트(T-Site)나 지역의 공공 시설을 위탁운영하는 사업을 이미 전개하고 있던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ulture Convenience Club, 이하 CCC)는 이것을 가루이자와 지역의 문화적 위기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서점을 출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주민들과 무언가 함께 해나갈수 있는 공간을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18년에 가루이자와 역 근처에 ‘가루이자와 서점(Karuizawa Bookstore)‘이 문을 열었습니다. 

 

가루이자와 서점 ⓒCulture Convenience Club
가루이자와 서점에서 운영하는 이동식 책방 ⓒCulture Convenience Club

가루이자와 서점이 생기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에서 작가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문화 활동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이 자주 찾게 되고, 단독 주택이나 별장이 많은 지역의 특성에 맞게 직접 찾아가는 이동식 서점을 운영하기 시작하는 등 가루이자와라는 지역에 꼭 맞는 장소로 자리 잡게 되었는데요.

2020년에 가루이자와에 있는 ‘이튼 하우스 국제학교(EtonHouse International School Karuizawa,이하 이튼 하우스)‘와 협업으로 온라인 학원이 오픈하면서 새로운 오프라인 공간의 기획이 본격화되었습니다. CCC의 현지 오피스도 필요했기 때문에 지역의 창작자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나, 동네의 카페나 식당 등 동네에 필요한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면서 방향이 구체화되었습니다.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 ⓒCulture Convenience Club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 ⓒ에브리위크

마침내 2023년에 오픈한 가루이자와 커먼그라운즈(Karuizawa Commongrounds, 이하 커먼그라운즈)는 ‘지(知)식(食)・에너지의 쉐어링’ 을 컨셉으로 가루이자와의 미래를 위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고, 지역 사회의 교류를 촉진하는 커뮤니티 시설입니다. 

가루이자와에 사는 사람들, 주말에 놀러온 주변 지역의 사람들과 관광객 등 누구나 와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커먼그라운즈(Commongrounds) 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여기에 오면 누군가를 만날 수 있고, 반대로 혼자 천천히 보낼 수도 있는, 목적이 없어도 온전히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그런 장소를 지향하고 있는데요.

예전에 아오야마 가쿠인 여자대학교의 기숙사로 사용되었던 1,200평 부지에 CCC가 운영하는 가루이자와 서점을 중심으로, 국제 학교, 와인 매장, 잡화점, 델리 등 8개의 시설이 숲 속 곳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의 서점 ⓒCulture Convenience Club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의 서점과 편집샵 ⓒ에브리위크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의 카페 ⓒCulture Convenience Club

커먼 그라운즈의 중심이 되는 가루이자와 서점은 츠타야를 통해 쌓아온 CCC의 색깔이 짙게 드러나는 공간입니다.

서점의 컨셉 역시 지역의 특성과 깊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루이자와에는 독특한 방침을 가진 다양한 국제 교육 시설이 있고, 이런 학교들의 철학에 공감하여 육아를 하고 있는 부모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착안한 것인데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이주해 온 30대 후반부터 40대의 고객을 메인 타겟으로 설정했습니다. 아이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면서, 자신이 도쿄에 없어도 비즈니스가 성립되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거나, 독립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는 사람들에 맞춰서 서점의 감도를 정했습니다. 

그래서 서점의 컨셉을 ‘평생 학습(Life-time Learning)’으로 설정하고, 아이들 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계속해서 배우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어디서나 있는 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컨셉에 맞게 「자연과학, 건축, 디자인, 아트, 음식, 아동」 이라는 6개의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도서를 엄선하고 있는데요. 

특히 아동 섹션은 단순히 일본에서 잘 팔리는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두 개 이상의 언어를 배우는 바이링구얼(Bilingual)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가루이자와 지역의 문화를 그대로 반영했는데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 영어 교육을 위해서 읽어야 하는 양질의 책’을 기준으로, 커먼그라운즈에 입점해있는 이튼 하우스 국제학교의 선생님이 직접 큐레이션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의 서점 2층에 있는 공유 오피스 ⓒNacasa & Partners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의 서점 2층에 있는 공유 오피스 ⓒCulture Convenience Club

커먼그라운즈의 서점은 일상에서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작품의 전시와, 지역 예술가들의 각종 상품 및 식품의 판매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루이자와 지역 특유의 기념품이 부족하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가노의 식재료를 고집해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식품을 판매하는 사람들 중에서 실제로 오프라인 점포를 가지지 않는 로컬 브랜드를 발굴해서 유통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CCC에 1997년에 입사해 츠타야를 거쳐 커먼그라운즈를 담당하고 있는 마츠모토 사토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먹고 ‘맛있다! 누군가와 같이 먹고 싶다!’라고 생각한 것을 손님에게도 꼭 알리고 싶습니다”

가루이자와 서점의 2층에는 다양한 업무 스타일을 제공하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습니다. 부지 내의 푸른 나무들과 아사마산을 바라보며 혼자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과, 여러 사람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회의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옛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특징입니다. CCC가 도쿄를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는 공유 오피스 쉐어 라운지(Share Lounge)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커먼 그라운즈 내에 있는 이튼하우스 국제학교 ⓒEton House Japan
커먼 그라운즈의 잡화점 RK DAYS ⓒCulture Convenience Club
커먼 그라운즈의 소바 가게 OSOBAR ⓒ에브리위크
커먼 그라운즈의 와인 가게 ⓒ에브리위크

커먼그라운즈에는 지역 주민과 관광객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건 이튼 하우스입니다.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과 자연 기반 학습을 추구하는 싱가포르 기반의 국제 학교인데요. 도쿄 도심에 있는 이튼 하우스 유치원과 초등학교의 프로그램과 연계한 커리큘럼을 운용하고 있습니다. 커먼그라운즈 내에 있는 숲과 텃밭 뿐만 아니라, 가루이자와 지역의 천혜의 자연을 하나의 학교로 삼는 교육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튼 하우스 만큼이나 커먼그라운즈의 분위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가게들이 있습니다. 주중에는 정통 신슈 소바 국수를, 주말 저녁에는 간단한 안주와 술을 판매하는 소바 가게 오소바(OSOBAR)와 일년 내내 낮은 기온을 유지하는 가루이자와의 기후에서 영감받은 저온 훈제 전문점 가루이자와 이부루(Karuizawa Ibulu)는 단연 눈에 띄는데요. 

이외에도 ‘학교에 가기 전후에, 출근 하기 전의 한때에, 여행지에서의 추억에 남는 아침에’ 를 모토로 아침 7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만 문을 여는 아침 전문 식당 퍼블릭 식당(Public Restaurant), 계약된 지역 농장에서 공급되는 제철 식재료와 신선한 야채로 만든 요리와, 직원이 신중하게 선택한 잡화를 판매하는 아르케이 데이즈(RK DAYS)야생 효모로 양조한 맛있는 와인을 제공하는 아뱅 바이오 와인샵(aVin Bio Wine Shop Karuizawa)도 커먼 그라운즈에 들려야 할 이유를 만드는 중요한 콘텐츠입니다.

다이칸야마(Daikanyama) 츠타야의 점장을 거쳐 가루이자에 합류햔 토몬 타이토(土門 泰人)는 커먼 그라운즈의 앞으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손님이 온다고 하는 것은, 역시 ‘거기에 가면 즐거운 일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품은 물론, 이벤트나 공간 만들기, 양질의 콘텐츠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집약해 나가는 것이 큰 미션인 것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루이자와에서는 정말 ‘좋은 것’이 잘 팔립니다. 그래서 보다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분과 여러가지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태어난 기획을, 전국의 우리의 거점에 전개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가루이자와 커먼 그라운즈 ⓒNacasa & Partners

‘지(知)식(食)・에너지의 쉐어링’ 이라는 컨셉에 따라, 커먼그라운즈의 모든 건물에는 태양광 발전이 가능한 설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생산된 전력은 부지 내에서 뿐만 아니라, 전기차를 이용하는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커먼그라운즈의 주차장에 있는 급속 충전소와도 연결되어 있는데요. 뿐만 아니라 커먼그라운즈 내에 있는 식당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는 퇴비로 만들어 이튼 하우스 국제학교의 텃밭 키우기 교육 프로그램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커먼그라운즈는 여러 가닥의 실들이 한데 모여 더 큰 직물의 일부가 되듯, 특정한 목적이나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서로의 필요에 따라 부드럽게 엮이고 확장되는 기반이 됩니다. 작은 로컬 브랜드가 다른 공간과 연결되며 성장하고, 교사와 요리사가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죠. 

양품계획의 가나이 마사아키 회장은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이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로컬이란 ‘지방’이 아니라 ‘자신과 주위 사람들의 관계성과 유대감’입니다”

좋은 지역이란 단순한 교류나 거래를 넘어, 일상을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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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움직이는 용기

먼저 움직이는 용기

도시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자본주의 체제에서 고도로 발달된 도시에서는 공간을 소유하는 것과 점유하는 것의 가치의 간극이 크게 벌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 지어지지도 않은 아파트를 사서 몇 십년이 지난 후에 다시 팔 때까지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거나, 알 필요도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편 고가도로의 밑을 활용해 공공 체육시설을 만들고, 버려진 공장을 미술관이나 카페로 만드는 일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도시의 문화와 수요는 빠르게 변하고, 동시에 자산으로서 도시의 역할도 영향을 받기 때문인데요. 

최근에는 공간을 소유하거나 점유하는 것을 넘어, 공간을 직접 소비하고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도시를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듭니다. 운영이나 콘텐츠라는 단어가 공간이라는 단어와 점점 더 많이 함께 사용되는 것도 이러한 현상의 반증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도시 공간을 만드는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DVLN 파크(DVLN Park) 소개합니다.

DVLN 파크 ⓒZou Xunkai

DVLN 파크를 이해하려면 이 프로젝트의 기획과 디자인, 설계와 운영까지 맡은 중국의 건축 스튜디오 데볼루션(Devolution)의 철학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데볼루션의 중국어 이름은 열화건물(退化建筑)입니다. 직역하자면 ‘퇴화된 건물’이라는 뜻인데요. 다소 모순적인 이름의 뒤에는 스스로를 건축이나 디자인이 아닌 ‘해프닝 회사’라고 소개하는 다음과 같은 신념이 담겨 있습니다.

” DEVOLUTION은 해프닝 회사입니다. 

우리는 : 

A. 해프닝을 만듭니다.
B. 해프닝이 만들어지거나 발생하는 공간을 만듭니다.
C. 실제 해프닝을 계속 관찰합니다. 

이러한 사항은 다음에 해당합니다.

A. DEVOLUTION의 창의적 방향
B. DEVOLUTION이 전문으로 하는 상업 프로젝트 분야
C. DEVOLUTION의 개념적 기원 및 가치”

DevolutioN 파크, 2017 ⓒXu Xiaodong
DevolutioN 파크, 2017 ⓒXu Xiaodong
DevolutioN 파크, 2017 ⓒXu Xiaodong
DevolutioN Image Corporation ⓒZhang Chao
DevolutioN Image Corporation ⓒZhang Chao
DevolutioN Image Corporation ⓒZhang Chao

데볼루션은 건물의 형태와 디자인보다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를 통해 관습과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의문점을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름대로의 대안을 제시하고 실제로 그것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실천에 옮기고 있다는 점인데요. 

일하는 사무실이 미술관이 될 수 없을까? 
아파트는 꼭 사적인 공간으로만 사용해야 할까?

데볼루션은 가상의 회사와 사무실을 실제로 만들어서 예술 사진이 아주 일상적인 공간에서 전시될 때의 새로운 맥락에 대해 보여주거나, 비어있는 아파트를 작은 공원으로 만들어서 하나의 건물에 모여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웃과 고립된 실상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2024년에 완성된 DVLN 파크는 데볼루션이 지난 몇년간 지속해온 이러한 시도의 연장선에 있는 프로젝트입니다. 다만 팝업 스토어처럼 일정 기간만 한시적으로 운영되었던 이전의 공간들과 달리, DVLN 파크는 데볼루션이 직접 기획부터 운영까지 도맡은 첫 번째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DVLN 파크의 입구 ⓒZou Xunkai
DVLN 파크의 입구 ⓒZou Xunkai
DVLN 파크의 카페 ⓒZou Xunkai
DVLN 파크의 야외 공간 ⓒZou Xunkai
DVLN 파크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시의 풍경 ⓒZou Xunkai

DVLN 파크는 중국 푸젠성 샤먼 지역에 있는 상가 건물인 ‘샹허 플라자’의 옥상에 위치한 복합문화공간 입니다. “지역의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정신적 마을”을 컨셉으로, 6층 높이 1,500평 크기의 옥상에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원과 함께 다양한 상점이 어우러져 있는 독특한 공간입니다. DVLN 파크를 기획한 데볼루션 팀은 공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도시가 편안하고, 친절하고, 즐겁기를 바라며, 주변 커뮤니티에 새로운 요소를 가져다주고, 주제별 목적지, 커뮤니티 허브, 콘텐츠 생성기로 이루어진 활기찬 소우주가 되기를 바랍니다.”

실제로 공원 내에는 루프루트(RoofRoot)라는 지역 특산품 매장에서 수시로 자연 교육 및 예술 체험 활동을 운영하고, 하퍼스 플라워 샵(HARPER’s Flower Shop)은 샤먼 지역의 꽃 시장으로 유명한 시안 로드(Xi’an Road)에서 영감 받은 꽃을 큐레이션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극장에 자리 잡은 작은 선술집 춘화 극장(春花戏院)에서는 연극을 보면서 차와 와인을 즐길 수 있고, 캐주얼한 브런치 레스토랑 임프로비제이셔널 다이닝(Improvisational Dining)에서는 샤먼 시내를 내려다보며 근사한 식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DVLN 파크에 있는 데볼루션의 사무실 ⓒZou Xunkai
DVLN 파크에 있는 데볼루션의 사무실 ⓒZou Xunkai

독특한 점은 데볼루션이 공간 전체를 기획하고 디자인했을 뿐만 아니라, 사무실도 DVLN 파크로 옮겨서 공원의 관리와 운영 과정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무실 뿐만 아니라 직접 다실을 운영하면서 지역의 젊은 사람들과 계속해서 교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출근길에 골목길을 걷거나, 옛 이웃에게 인사하거나, 도시에서 여행하고 일하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보는 것과 같이, 직장에서 삶의 요소를 더 많이 느끼기를 바랍니다. 효율적인 교통 흐름만 있는 지루한 근무 환경이 아니라요.”

DVLN 파크의 입구에 붙어있는 포스터들 ⓒZou Xunkai

멋진 공간을 디자인하고, 입지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임차인을 찾아서 상권을 만드는 일은 전문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네 구석구석 잠재력이 있는 빈틈을 집요하게 찾아내고, 누구도 쉬이 엄두를 낼 수 없는 상상력을 발휘하고, 위험을 무릅쓰고 선두에 서서 그것을 지휘하고 관리하고 지속하는 일이야말로 지역과 도시에 대해 애정과 신념이 없다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변화란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누군가 먼저 움직일 용기를 낼 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길이 열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DVLN 파크의 사례에서처럼, 그런 종류의 일은 한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처럼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시도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서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분명합니다. 어쩌면 다른 사람보다 어떻게 앞서나갈까 하는 경쟁 의식보다는, ‘나’라는 맥락에서 ‘스스로에게 있어서의 최초’를 도전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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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되기 때문에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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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브랜드를 좋아하시나요?

최근 ‘진정성 있는’ 브랜드가 좋다는 답변을 복수의 지인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좋다’라는 표현에 함의된 개개인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을 보류하는 다소 추상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성이 없는 기업이 있겠습니까마는, 막상 선뜻 대답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무의식적으로 진정성이라는 단어 뒤에 도덕성이나 사회에 제공하는 가치 등의 잣대를 세우고 있었던 것일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에는 얼마나 진짜인 것인가 보다 사람들에게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전달하는 것인지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지난 주에는 미국의 전기차 기업 리비안(Rivian)이 각 지역의 특성에 맞는 거점을 통해 동네와 지역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과정을 다뤘습니다. 

이번 주에는 리비안이 진행해온 여러 캠페인을 통해 브랜드의 진심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을 살펴봅니다.

굿 프로젝트를 위한 전기차 R1 ⓒRivian

리비안은 2024년 10월에 굿 프로젝트(The Good Project)를 발표했습니다. ‘긍정적인 지역 사회 영향을 촉진하는 차량 대출 프로그램‘ 이라는 컨셉으로, 리비안의 철학과 부합하는 비영리 단체에게 전기차를 빌려주는 서비스인데요. 덴버, 오스틴, 브루클린, 애틀랜타 4개 도시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리비안의 창립자이자 CEO인 스캐린지는 리비안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매일 우리 각자는 모험을 선택할 기회를 얻습니다. 이른 아침 서핑을 위해 태양과 함께 일어나거나, 퇴근 후 자전거를 타거나, 예상치 못한 우회로로 가족을 데려가거나. 우리는 그 선택을 쉽게 만드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우리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은 그것이 크든 작든 여러분의 다음 모험을 격려하는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는 그 어느 때보다 모험가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적인 모험의 무대가 되는 동네의 생활 반경, 비일상적인 모험을 떠날 자연 환경이 없으면 자동차는 존재 가치가 없다라는 메시지를 일관성 있게 발신하고 있다는 점이 리비안의 매력입니다. 제품의 아주 작은 디테일부터 전국 단위의 공익 캠페인까지, 브랜드의 손길이 닿아있는 모든 것에서 세심하게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새소리를 녹음하는 과정 ⓒRivian

전기차는 내연기관에서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자동차가 전기차로 대체된다고 가정하면, 우리가 사는 도시는 엔진음이나 경적 소리 대신에 대신에 새로운 소리로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소리는 어때야 할까요? 리비안의 UX 디렉터 크리스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차량에 통합한 모든 사운드에 대한 영감의 원천으로 자연을 사용하고 싶었습니다. 전기 자동차가 교통의 미래라면,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연 세계에 섞이게 하는 건 어떨까요?”

리비안은 오디오 생태계를 기획할 때에, 전기차가 실제로 자연 생태계의 일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만약 자동차가 숨을 쉬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소리일까? 자동차가 자연의 일부라면 목소리는 어떨까?‘ 리비안 전기차의 잠금을 해제할 때 나오는 사운드는, 북미 서부 지역에 서식하는 산청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녹음해서 사용했습니다. 

리비안의 사운드 시스템을 함께 만든 Audio UX의 공동 창립자이자 최고 전략 책임자인 덱스터 가르시아는 “처음부터 우리가 달성하려고 하는 모든 것이 한 가지 핵심 아이디어, 즉 미래 세대를 위해 자연 세계를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분명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전기차로 굴 케이지를 운반하는 모습 ⓒRivian
굴 서식지 주변을 청소하는 모습ⓒRivian
1억개의 굴을 복원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 ⓒRivian

다시 굿 프로젝트(The Good Project)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2024년 10월에 시작한 전기차 대출 프로그램은 불과 몇 달만에 흥미로운 성과들을 보여주었습니다. 

굿 프로젝트의 첫 번째 파트너는 뉴욕의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Billion Oyster Project)’입니다. 2014년에 설립된 이 비영리 단체는 2035년까지 뉴욕 항에 10억 개의 굴을 복원하여, 해양 서식지 생물 다양성을 재건하고 폭풍과 해일로부터 도시의 해안선을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생물학자들은 뉴욕 항구가 한때 세계 굴의 절반이 서식하던 곳이라고 추정하는데요. 도시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인해 과도한 어획, 산업화된 오염, 처리되지 않은 하수가 강으로 유입되면서 뉴욕의 굴은 사실상 멸종했습니다.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는 지금까지 1억 2,200만 개의 굴 암초를 복원했습니다. 

빌리언 오이스터 프로젝트는 리비안의 전기차를 굴 복원 활동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굴이 살 수 있는 깨끗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코니 아일랜드(Coney Island) 지역의 해변을 청소하고, 5개 자치구의 물을 정기적으로 채취해서 수질을 모니터링하고, 뉴욕항 주변의 굴 케이지를 점검하고 교체하고 있습니다. 굴이 서식할 수 있는 굴 껍질은 도시 전역의 75개 이상의 레스토랑과 협력하여 제공받고 있는데요. 이것을 통해 지난 10년 동안 250만 개의 껍질이 매립지로 가지 않고, 어린 굴이 정착하고 자랄 수 있는 집이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라이브 네이션(Live Nation)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밴드 U2  투어의 공식 전기 차량으로 선정되었습니다. U2가 라스베이거스의 스피어(Sphere)에서 6개월간 공연을 하는 동안 리비안의 전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공연 기간 동안 탄소 발자국을 줄이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초원 위의 버팔로를 따라가는 모습 ⓒRivian
국립 기념물 캠페인을 위해 촬영하는 모습 ⓒRivian

리비안은 인디지너스 레드(INDIGENOUS LED)에 두 대의 전기차를 기부했습니다. 인디지너스 레드는 북미의 멸종 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보호하고 위해 활동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특히 버팔로나 비버와 같이, 주변 생태계에 연쇄 효과를 미치는 핵심종 역할을 하는 동물을 집중적으로 관리하는데요. 리비안의 전기차를 활용해 험난한 지형에서 동물을 견인하고, 장비를 운반하고, 가축을 모니터링하는 등 현장에서의 활동을 탄소 배출 없이 지원하고 있습니다. 

2023년도에는 보존 연합(The Conservation Alliance)과 함께 미국 남서부를 횡단하는 1주일간의 Mobilizing for Monuments 로드 트립에 참여했습니다. 남서부 지역에 있는 5개의 주요 경관을 국립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하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입니다. 리비안의 전기차를 활용해 배기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긴 거리를 이동하면서 각 지역의 단체들을 만나고, Flickr의 사진 작가들이 각 경관들을 멋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로드 트립을 통해 정리된 자료를 정부에 제출하여 국립 기념물 지정을 추진하게 될텐데요. 

“이 아름다운 풍경이 적절하게 보호되지 않으면 수많은 위협에 직면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야외 공간을 앞으로도 여러 세대에 걸쳐 건강하게 유지하고 싶습니다.”

로드 트립 프로젝트의 취지에 대해 보존 연합의 홍보 책임자 레베카 길리스(Rebecca Gilli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치 리비안의 슬로건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리비안 재단 홈페이지 ⓒRivian

리비안은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미래를 보장하는 비전을 가지고 설립되었습니다. 그 정신에 따라 2021년 11월 자사 지분의 1%를 투자하여 독립 자선 플랫폼인 리비안 재단 (Rivian Foundation)을 설립하였습니다. 리비안 재단의 사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건강한 지구를 보호하여 미래 세대가 풍요, 경이로움, 모험으로 가득한 세상을 영원히 경험할 수 있도록 한다’

전기차를 만드는 수십, 수백개의 기업들이 모두 환경 보호, 생태계 보전과 같은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리비안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들리는 것 같습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의 마지막 장면이 떠올랐는데요. 우리 마음 속에 조심스럽게 숨어 있던 희망을 꺼내서, 먼저 큰 소리로 노래를 불러주는 기업, 괜히 따라 부르게 되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 브랜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동차 업계의 파타고니아’ 랄까요. 단순히 제품을 홍보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는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 지점들이 모여서 무언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중요한 건 그런 지점들이 하나의 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EVERY WEEK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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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뿌리내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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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의 미래는 무엇일까요? 

화석 연료 없이도 수백 킬로미터를 주행하고, 운전자가 없어도 골목길을 자유롭게 다니는 자동차는 이미 현실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공상과학 영화에서 꿈꾸던 하늘을 나는 자동차도 상용화가 멀지 않아 보입니다. 기술은 우리를 빠르게 미래로 이끌고 있지만, 그 미래가 과연 우리가 원하는 모습인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다양한 이동수단의 혁신을 만드는 모빌리티(Mobility) 산업이 지향하는 목표는 ‘더 멀리, 더 빠르게, 더 편리하게’와 같은 기술적 성취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어떻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성찰이 함께 이루어져야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요? 

하늘을 날아 다친 사람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병원으로 이송하거나, 사람이 손이 닿지 않는 깊은 바다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미래의 자동차의 모습이 떠오르는데요. 이렇듯 기술이 단순히 효율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믿고 실천하는 기업이 있습니다. 

이번 주와 다음 주에는 지역과 커뮤니티 기반의 전략을 통해 모빌리티 산업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리비안(Rivian)의 이야기를 2주에 걸쳐 소개합니다. 

리비안의 전기차 R1T ⓒKyson Dana

리비안(Rivian)은 2009년 R.J. 스캐린지(R.J. Scaringe)가 설립한 미국의 전기차 제조업체로, 지속 가능한 이동수단과 환경 보호를 핵심 철학으로 삼고 있습니다. 

리비안이라는 이름은 ‘인디언 강(Indian River)’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Indian River는 플로리다 주의 멜번 지역에 있는 강으로, 스캐린지가 어린 시절 자주 방문했던 장소입니다. 이 강은 그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과 환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곳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지향하는 리비안의 철학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리비안의 첫 번째 차량은 2018년 LA 오토쇼에서 공개된 전기 픽업 트럭인 R1T와 전기 SUV인 R1S인데요. 두 모델 모두 뛰어난 오프로드 성능과 긴 주행 거리를 자랑하며, 최대 800마일에 달하는 방수 성능으로 강을 건너는 것까지 가능하게 설계되었습니다. 또한, 자체 충전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전기차의 장거리 여행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고, 독자적으로 개발한 배터리의 재활용 기술을 통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는 리비안이 단순히 차량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추구하는 ‘탐험’이라는 것의 대상이 되는 자연과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 곧 지속가능한 사업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라는 것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은 리비안이 만드는 차량뿐만 아니라 매장과 서비스, 그리고 커뮤니티 전략에서도 드러납니다. 특히 리비안이 최근 몇년간 선보인 독특한 플래그십 스토어와 미국 각지에서 시행하고 있는 커뮤니티 프로젝트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먼저 캘리포니아 일대에 자리잡은 세 개의 플래그십 매장 ; 오래된 극장을 리모델링한 라구나 (Laguna) 지점, 전설적인 작가의 집을 리모델링한 베니스 (Venice) 지점, 그리고 폐쇄된 주유소를 리모델링한 요세미티(Yosemite) 지점을 통해 지역에서 고객과 만나는 방식을 살펴봅니다.

 

리비안 베니스 허브 ⓒ Rivian

리비안 베니스 허브(Rivian Venice Hub)는 2021년에 오픈한 리비안의 커뮤니티 스토어입니다. 로스앤젤레스 베니스 지역에 위치한 베니스 허브는 미국의 전설적인 소설 작가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가 살았던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입니다. 

리비안은 이미 온라인에서 차량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이상 오프라인 매장이 예전처럼 자동차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기능에 국한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리비안을 좋아하는 팬들이 모여 교류할 수 있고, 더 나아가 고객이 아닌 지역 주민들이 편안하게 휴식하고, 무언가를 배우고 만들 수 있는 유용한 장소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누구나 편하게 들릴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잡는 것이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를 잠재 고객들에게 천천히, 하지만 명확하게 전달함과 동시에, 경쟁자들과 확연한 차별점을 만들 수 있는 전략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베니스 허브의 정원 ⓒ Rivian
베니스 허브의 정원 ⓒ Rivian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 정원과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가 눈에 들어옵니다. 오래된 벽돌 건물 안에는 자동차와 여행을 주제로 하는 도서관, 로컬 브랜드의 제품들을 판매하는 상점, 원예와 미술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함께 가벼운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다목적 공간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베니스 허브에서 진행되는 이벤트 중에서 특히 교육 프로그램은 ‘실용적’인 것을 주제로 합니다. 매장이 위치하고 있는 주변 지역의 기후에 적합한 정원 손질법이나, 해변이나 숲으로 여행을 갈 때에는 자동차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는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베니스 허브의 도서관 ⓒ Rivian
베니스 허브의 기프트샵 ⓒ Rivian
베니스 허브의 기프트샵 ⓒ Rivian

물론 리비안의 자동차와 차량용 제품들도 구매하고, 시승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이 먼저 자동차에 대해 질문하기 전에 먼저 나서서 설명하지 않는 것이 이 매장의 원칙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손님의 입장에서도 꼭 차를 구경하거나 구입하지 않더라도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안심이 드는 장소라고 느끼게 됩니다. 

특히 자동차는 ‘전시’한다기 보다는 놀이터의 옆에 ‘놓여’ 있는 것에 가까운데,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하나의 놀이기구로 보일 수도 있는 미묘한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어쩌면 여기에 종종 놀러오는 아이들이 자라서 리비안의 차를 타고 어딘가로 모험을 떠날수도 있지 않을까요?

리비안 사우스 코스트 극장 ⓒ Rivian
극장의 티켓 부스를 그대로 활용한 안내 데스크 ⓒ Rivian

리비안 사우스코스트 극장(Rivian South Coast Theater)은 로스앤젤레스 라구나 해변(Laguna Beach) 지역의 오래된 극장을 인수하여 리모델링한 첫 번째 플래그십 매장입니다. 사우스코스트 극장은 1935년에 New Lynn Theater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2015년에 폐장할 때까지 약 80여년간 동네의 유일한 극장이었는데요. 리비안은 첫 번째 플래그십 매장은 반드시 지역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릴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에서, 이 극장을 선택했습니다. 이미 동네의 문화 거점으로 오랜 기간 활약한 장소의 역사성을 그대로 계승해서, 극장의 고유한 요소들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리비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즈 게레로(Liz Guerrero)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을 복원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과거와 현재를 하나로 엮는 것이었습니다.”

과거 극장의 모습 ⓒ Rivian
왼쪽: 1935년의 천장, 오른쪽 : 2023년 복원 중인 천장 ⓒRivian
왼쪽: 1976년 리모델링 중 Edgar Payne의 벽화, 오른쪽: 2023년 Ariel Lee의 벽화 ⓒRivian

장소의 역사적인 가치를 존중함과 동시에, 이미 이 공간에 대해 친숙하게 느끼는 동네 사람들에게도 위화감 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타일이 깔린 안뜰, 독특한 수직 탑, 별 모양의 천장 조명기구, 벽화 등 특징적인 요소들을 철저하게 복원했습니다. 복원 과정 전반에 걸쳐 보존 전문가 및 지역 단체와 긴밀히 협력하여, 2023년 3월에 국가 사적지에 등록되어 역사적 명소로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미국의 풍경화가 에드거 페인(Edgar Payne)이 캔버스에 그린 벽화 4개는 리비안이 건물을 매입하기 전에 리모델링을 하는 동안 철거된 후 라구나 미술관으로 이전되었습니다. 리비안은 남부 캘리포니아 예술가 아리엘 리(Ariel Lee)에게 과거 에드거 페인 그림에 대한 헌사의 의미를 담은 새로운 벽화를 의뢰하였고, 아리엘 리의 작품은 화장실을 포함한 극장 곳곳에 그려졌습니다.

 

영화 상영회 ⓒ Parenting OC
사우스코스트의 카페 ⓒ Rivian
사우스코스트의 카페 ⓒ Rivian
사우스코스트 극장 내부 ⓒ Rivian
사우스코스트의 서핑보드 샵 ⓒ Rivian
사우스코스트에서만 판매하는 협업 제품 ⓒAlmond Surfboards

2023년에 문을 연 사우스코스트 극장은 동네의 커뮤니티 거점 역할과 동시에, 지역의 다양한 창작자와 콘텐츠가 모이는 크리에이티브 허브의 역할까지 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극장의 운영은 지역의 비영리 단체인 코스트 필름 파운데이션(Coast Film Foundation, 이하 CFF)과 파트너십을 통해 진행하고 있습니다. CFF는 지역에서 영화 축제,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 등 영화를 통해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비영리 단체인데요. 사우스코스트 극장에서 주 2회 ‘모험’ ‘자연’ 등 리비안이 추구하는 가치에 맞는 독립 영화를 선별하여 상영합니다. 주말에는 라구나 예술 디자인 대학(Laguna College of Art and Design, LCAD)에서 진행하는 가족을 위한 미술 워크숍이 열립니다. 

거리에 면하는 건물에는 20년 넘게 캘리포니아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로컬 커피 로스터리인 이퀘이터 커피(Equator Coffees)에서 운영하는 카페가 들어섰습니다. 영화를 상영하지 않는 날에도 자주 들러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해변이라는 지역적 특징을 고려한 콘텐츠도 흥미로운데요. 로컬 브랜드 아몬드 서프보드 (Almond Surfboards)의 제품을 파는 기어 샵(Gear Shop)을 기획했습니다. 여기에서 아몬드 서프보드는 ‘세상을 영원히 모험으로 가득하게’ 라는 리비안의 철학에서 영감 받은 협업 제품을 선보였는데요. 라구나 해변의 파도와 리비안의 R시리즈 자동차를 모티브로 하는 협업 제품 ‘R-시리즈 서핑보드’는 사우스코스트 매장에서만 판매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24년에는 라구나 해변의 해상 안전 구조대에게 리비안의 전기차를 기부했습니다.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 모두 라구나 해변과 동네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다면 장기적으로 브랜드의 이미지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요. 이에 대해 라구나의 시장 수 켐프(Sue Kempf)는 “공공의 안전과 환경의 지속가능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달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파트너십은 단순한 기부를 넘어서, 우리가 함께할 때에 무엇을 이룰 수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전기 자동차를 통해 라구나 비치는 더 깨끗하고 푸른 미래를 위해 우리가 헌신할 것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선언입니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리비안은 80년에서 멈출 뻔 했던 오래된 극장의 시계를 다시 돌리며, 이를 거점으로 지역의 중심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사우스 코스트 극장의 100주년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됩니다.

리비안 요세미티 충전 아웃포스트 ⓒ Rivian

리비안 요세미티 차징 아웃포스트 (Rivian Yosemite Charging Outpost)는 2024년에 문을 연 복합 충전 시설입니다. 폐쇄된 주유소를 복원한 이 공간은 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서쪽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전기 자동차를 충전할 수 있을뿐만 아니라, 다시 길을 떠나기 전에 휴식을 취하고 활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설계된 독특하고 새로운 종류의 충전 시설입니다.  

리비안은 ‘어드벤처 네트워크(Adventure Network)‘라는 이름으로 미국 각지에 충전 시설을 확장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요세미티의 동쪽 입구와 계곡 내 유명한 관광 명소 근처 11개 장소에 58개의 충전기를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리비안의 경험 디자인 부사장인 데니스 체리(Denise Cherry)는 충전소를 설치할 장소를 선정하는 기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충전 아웃포스트를 어디에 둘지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이 다음 모험을 떠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어디일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요세미티 아웃포스트는 원래 1870년에 대장간이 있던 곳인데,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 시대에 광산 캠프를 시작한 지 20년이 조금 넘은 후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지역 사회의 필수적인 시설이었던 대장간은 일상 생활의 일부였던 금속 도구, 주방 기구, 마차 및 기타 물건을 만들고 수리했습니다. 수십 년 후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이 건물은 자동차 수리점이 되었고, 그다음에는 주유소가 되었습니다.

리비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리즈 게레로(Liz Guerrero)는 이 장소가 항상 지역 사회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교통 허브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리비안이 이 장소를 선택한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충전소 내부의 리비안 제품 매장ⓒ Rivian
간식과 물을 충전할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 Rivian
전기차 충전기 ⓒ Rivian
반려동물을 위한 급수대 ⓒ Rivian

요세미티 아웃포스트는 ‘지속 가능한 정류장’을 컨셉으로 일반적인 주유소와 차별화된 서비스와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충전소 안에는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책을 읽을 수 있는 도서관과 라운지, 리비안의 제품과 직접 만드는 트레일 믹스를 판매하는 매장과, 무료 커피와 물을 채울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외부에는 24시간 이용 가능한 5개의 DC 고속 충전기와 화장실이 있으며, 지속 가능성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교육 게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실내의 가구는 재활용된 중고 침낭과 코트로, 테이블은 압축 톱밥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기존 건물의 복원 과정에서도 폐기물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충전소 주변의 조경은 지역에서 잘 자라는 토종 식물로 구성되었고, 오래된 주차장과 산책로에 깔려있던 자재는 부지의 담장으로 재탄생했습니다. 또, 국가 태양광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기업 US Solar와 협업하여 소비하는 만큼의 전력만을 생산하는 제로 에너지 건물로 만들었습니다. 

2025년 1월에 오픈한 헤이스 밸리 지점 ⓒ Rivian
2025년 1월에 오픈한 헤이스 밸리 지점을 위한 가구를 제작하는 지역 디자이너와 공방 ⓒ Rivian

리비안이 요세미티, 라구나 비치, 그리고 극장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준 것은 지역에 자연스럽게 뿌리내리는 방식입니다. 핵심은 어떤 지역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지역과 ‘함께’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동네의 역사와 맥락을 파악하고, 그것을 세심하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다듬으며, 지역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과 협력하는 것. 여기에 지자체의 비전과 발맞추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는 노력이 더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동네에서 이웃들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방법입니다. 리비안과 새로운 화학 작용을 만들어낼 다음 지역은 밴쿠버, 시애틀, 덴버, 시카고, 브루클린, 애틀랜타, 패서디나, 내슈빌, 오스틴, 보스턴이 될 예정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자동차의 미래는 무엇일까요?

자동차는 본질적으로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리비안은 이동의 목적을 ‘모험’으로 정의하며, 세상을 모험하며 영감을 얻는 사람들을 위해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리비안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모험을 떠날 세상이 남아 있어야 모험이 계속될 수 있지 않을까?”, “모험을 떠나기 위해서는 모험을 끝내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감각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지역과 커뮤니티, 더 나아가 자연과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진심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리비안이 말하는 자동차의 미래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자연을 탐험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그 자연을 보호하고 보존하는 책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다음 주에는 사람과 자연을 연결한다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지역 단위로 문제를 세분화하고 접근하는 리비안의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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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며드는

천천히 스며드는

모든 것이 광고인 시대. 어떻게 알려야 할까요?

매일같이 쏟아지는 개성 넘치는 제품, 서비스, 콘텐츠. 브랜드들은 점점 더 세분화된 소비자의 취향을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좋은 브랜드는 더 이상 고객의 관심을 얻으려 애쓰지 않는 듯합니다. 오히려 고객이 광고로 인식하지 않고, 삶의 필수적인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합니다.

이번 주에는 사람들의 일상과 지역 속으로 녹아드는 지속가능한 방식을 제시하는 파빌리온 S 프로젝트를 소개합니다. 

Ginkgo Chair ⓒSide
Ginkgo Chair ⓒSide

2019년 중국의 가구 브랜드 “사이드(Side)”는 독창적인 디자인의 Ginkgo 의자를 선보였습니다. 제품의 이름처럼 은행나무 합판을 사용해서 만든 이 의자를 알리기 위해, 같은 해 상하이에서 열린 가구 박람회에 특별한 전시 공간을 만들었는데요.

박람회와 같은 단기 행사에서 사용되는 전시 공간은 대부분 일회용으로 설계되고, 행사가 끝난 후 대량의 폐기물을 남기곤 합니다. 최근에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차례 재활용할 수 있는 전시 가벽과 같은 아이디어들이 실제로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데요. 특정한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사이드(Side)가 루이 디자인 앤 리서치(Rooi Design and Research)과 함께 만든 “파빌리온 S(Pavilion S)”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확장하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빌리온 S ⓒSFAP Studio

큰 규모의 박람회는 관람객에게 피로감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곳은 화려한 전시 부스가 아니라, 욱신거리는 다리를 잠시나마 달랠 수 있는 작은 벤치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 착안해서, 파빌리온 S는 단순히 제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아니라 방문객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휴식 장소로 기획되었습니다. 제품보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인 셈인데요. 사람들이 이곳에서 편안하고 차분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밝고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파빌리온 S의 핵심 재료는 Ginkgo 의자와 마찬가지로 가구 제작에 흔히 사용되는 합판입니다. 가공 과정을 최소화하기 위해 표준 크기인 1.22미터의 정사각형 합판 821개를 사용했는데요. 정사각형 합판을 연결해서 만든 하나의 박스는 의자 한 개를 전시하기에 알맞은 크기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의자를 아래, 위, 옆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특히, 박스를 쌓아서 만든 단순한 구조 덕분에 별도의 복잡한 공구나 추가적인 자재 없이 48시간 이내에 파빌리온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파빌리온 S ⓒFeng Shao
파빌리온 S ⓒFeng Shao
파빌리온 S ⓒFeng Shao
파빌리온 S ⓒFeng Shao

파빌리온 S 프로젝트의 핵심은 전시가 끝난 뒤에 시작됩니다. 흔히 전시용 건축물이 해체와 함께 버려지는 것과 달리, 파빌리온 S는 재활용을 너머 새로운 가치로 재탄생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되었습니다. 전시 종료 후 파빌리온을 구성하는 821개의 합판은 철저히 분해되어 410세트의 가구로 다시 조립됩니다. 각 합판에서 버려지는 부분이 전혀 없이 육각형 테이블 한 개나 직사각형 의자 세 개로 전환될 수 있도록 디자인했습니다. 

파빌리온 S를 재활용한 가구 ⓒMing Chen
파빌리온 S를 재활용한 가구 ⓒMing Chen

이렇게 만들어진 테이블과 의자는 YiDu 커뮤니티 센터와의 협업으로 푸칭시(Fuqing) 의 농촌으로 전달되었습니다. 마을의 광장, 놀이터, 식당의 마당 등 지역 주민들이 생활하는 동네 곳곳에 설치되었는데요. 

이는 단순히 자재를 재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브랜드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를 공동체로 자연스럽게 확장하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파빌리온은 사라지지만, 그것이 남긴 가구는 지역 사회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이 가구는 브랜드의 핵심적인 제품도 아니거니와 수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사업도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브랜드가 지역의 공동체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파빌리온 S를 재활용한 가구 ⓒMing Chen
파빌리온 S를 재활용한 가구 ⓒMing Chen
파빌리온 S를 재활용한 가구 ⓒMing Chen
파빌리온 S를 재활용한 가구 ⓒMing Chen

파빌리온 S 프로젝트는 브랜드가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방식과 물리적인 실체가 없어도 고객에게 전달되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자연스럽게 일상에 스며들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그 자체로 특별하게 느껴지는데요. 

결국, ‘어떻게 알려야 하는가’에 대한 힌트는 작은 것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생활 반경과 삶 속으로 번져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습니다. 파빌리온 S 프로젝트는 의자에서 태어나, 전시 공간으로 확장되고, 지역 사회로 녹아드는 여정을 통해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순간의 아름다움을 넘어, 삶과 연결되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깃거리가 되어 오랜 기간 우리 곁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마케팅이 아닐까요? 





EVERY WEEK Editor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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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배우는 교실



생활을 배우는 교실

라이프스타일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자신만의 생활 방식을 찾는 일은 단순히 따라 하기 쉬운 방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섭니다. 스스로의 내면을 탐구하고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발견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여정입니다. 점점 더 빠르게 변하는 세계와는 달리, 나만의 속도와 형태를 찾는 일은 지루한 일상의 반복과 비일상적인 경험의 순간의 사이에서 태어납니다. 특히 나에게는 낯설지만 누군가에게는 익숙한 환경에 스스로를 던지는 경험은 놓치고 있던 생활의 힌트를 다시금 발견하게 해줍니다.

이번 주에는 낯선 지역에서 일상생활의 즐거움을 찾는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MUJI BASE Oikawa)를 소개합니다.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 ⓒMUJI

무지 베이스(MUJI BASE)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지 스테이(MUJI STAY)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MUJI STAY는 ‘생활’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것으로, 숙박 시설이나 주거의 본연의 자세를 재검토해, 라이프 스타일 그 자체를 변혁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중략)
 
지역 환경이나 세계와 보다 깊게 연결되어, 그 땅이 가지는 잠재적인 힘을 지역의 분들과 함께 끌어내는 것으로, 모두가 원래의 모습으로 즐길 수 있는 「지역에 녹아드는 또 하나의 생활」을 실현시켜 갑니다. “
 
– MUJI STAY 비전 선언문 중에서 
 
무지 스테이의 구조 ⓒMUJI
MUJI STAY는 도시와 지방, 국내와 해외 각지의 자산을 활용하여 숙박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입니다. 다음과 같이 4가지의 사업을 전개합니다.
 
무지 호텔(MUJI HOTEL)
「지역 문화의 쇼케이스」를 컨셉으로, 일본 전국의 지역 문화를 집적·발신하고, 여행지에서도 일상생활의 연장과 같은 쾌적함을 제공하는 숙박시설
 

무지 베이스(MUJI BASE) 
– 「지역 문화의 체감기지」를 컨셉으로, 도시에서 떨어진 곳에서의 평온한 일상을 체험하고 지역의 매력을 재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지역의 생활 거점

무지 룸(MUJI ROOM)
-「새로운 생활의 공동 창작의 장소」를 컨셉으로, 호텔·여관·별장 등 기존 시설 안에서 MUJI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역과 공동 창조하면서 만드는 숙박 체류 공간
 
무지 캠프(MUJI CAMP) 
-「사는 힘을 키우는 장소」를 컨셉으로, 조금씩 캠프를 시작해 보고 싶은 사람으로부터, 새로운 시점의 만남을 요구하고 있는 사람, 더 몰입하고 싶은 사람까지. 지역의 특징을 살려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는 캠프장
 
특히 무지 베이스의 경우, 2022년에 에어비앤비 일본 법인과 관광수요 회복에 대비하여 전국의 빈집이나 유휴 부동산, 지자체 소유 시설 등을 공동 프로듀싱하는 포괄 연계 협정을 체결한 이후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2023년에 카모가와 지점, 2024년 4월 테시마 지점에 이어 10월에 오이카와에도 문을 열었습니다. 
무지 베이스 카모가와 ⓒMUJI
무지 베이스 테시마 ⓒMUJI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는 대나무와 온천으로 유명한 지바현 나카보소에 위치한 노가와 초등학교를 리노베이션하여 탄생한 복합공간입니다. 요로 계곡 근처에 자리한 이 초등학교는 학생 수 감소로 인해 2013년에 폐교되었으며, 이후 2017년 5월부터 무인양품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와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공방으로 운영해오다 2024년에 무지 베이스로 새롭게 재탄생했습니다.

학교 건물의 교실은 호텔 객실로, 강당은 도서관으로, 체육관은 미술관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예전의 복도는 지역 공예품 전시와 소규모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새롭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 ⓒMUJI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 ⓒMUJI

방문객들은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 인접한 농장과 공유 텃밭 계약을 맺고 계절에 맞춰 농장을 운영하는 농부로부터 음식과 농업에 대해 배우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방문객들은 수확 시기에 직접 수확한 야채를 가지고 돌아가는 특별한 경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에서만 맛볼 수 있는 조식인 ‘노가와 아침 세트’는 학교 내 부지에서 직접 기르는 벌꿀을 곁들인 베이글과 신선한 커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역의 식당에서 직접 요리하여 제공됩니다. 이러한 섬세한 디테일은 방문객들에게 지역의 풍미와 문화를 깊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처럼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활동이나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요리 체험은 단순히 배우는 것을 넘어, 현대인이 잊기 쉬운 “느린 삶”의 가치를 일깨워줍니다.

주민들은 방문객들에게 자신들만의 특별한 생활 방식을 소개하며, 이를 통해 지역 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나눕니다. 이는 무지 베이스가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지역 사회와 깊이 연결된 장소임을 보여줍니다.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의 식재료 ⓒMUJI
노가와 아침 세트 ⓒnidones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의 어메니티는 무지 스테이를 위해 에어비앤비와 공동으로 기획한 어메니티 브랜드 “무지 룸 에센셜(MUJI ROOM Essential)”이 제공됩니다. 이 브랜드는 무인양품의 노하우를 집약한 B2B 서비스로, 민박과 숙박 시설의 법인 및 개인 운영자뿐만 아니라 기숙사, 직원 숙소, 분양 홍보관 등을 대상으로 합니다. 이 서비스는 숙박에 필요한 식사 세트와 목욕 세트 같은 스타터 키트를 제공하며, 숙박 시설 운영에 필요한 비품과 어메니티를 정기적으로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또한 객실뿐만 아니라 전체 공간의 인테리어와 연출 서비스까지 포함되어 있어, 운영자가 편리하게 고품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무지 룸 에센셜 ⓒMUJI
무지 룸 에센셜 ⓒMUJI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의 전체적인 스타일링과 디렉팅은 이데이(IDÉE)에서 맡았습니다. 「사는 것의 즐거움」을 제안하는 편집샵 이데이는 2006년에 무인양품의 자회사가 된 이후 여러 분야에서 상당히 시너지를 내고 있습니다.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에서는 바람이 빠진 농구공과 망가진 테니스 채를 활용한 벽면의 장식, 버려진 악기를 재사용한 객실의 조명, 폐교되면서 남겨진 책과 어울리는 서적을 큐레이션한 도서관 등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감각을 만들어 냈습니다.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 ⓒMUJI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 ⓒMUJI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 ⓒnidones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 ⓒnidones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 ⓒnidones

무지 베이스 오이카와는 단순히 머무는 장소를 넘어, 지역과 사람, 그리고 시간이 교차하는 “생활의 교실”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여기에서의 체험은 단순한 숙박이나 관광이 아니라, 생활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제공합니다. 방문객들은 이곳에서 느린 삶, 지역의 이야기가 담긴 물건들, 그리고 사람 간의 진정한 교류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할 수 있는 힌트를 얻습니다.

이 교실에서 과거에 삶의 기본기를 배우고 꿈을 키워갔던 아이들처럼,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삶을 배우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학교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학교가 됩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나누며, 각자가 지닌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탐구합니다.

삶이라는 학교는 끝이 없습니다. 과거의 교실이 오늘의 교실로 이어지고, 오늘의 경험은 내일의 새로운 시작점이 됩니다. 

여러분의 교실은 어디인가요?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삶의 이야기를 배워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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